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역대상 25장1-17절의 말씀은
어제 하나님께서 주신 “다윗이 엘르아살의 자손 사독과 이다말의 자손 아히멜렉으로 더불어 저희를 나누어 각각 그 섬기는 직무를 맡겼는데” 와 “이에 제비 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으니 이는 성소의 일을 다스리는 자와 하나님의 일을 다스리는 자가 엘르아살의 자손 중에도 있고 이다말의 자손 중에도 있음이라”라는 말씀은
목교세들이 말하는 것처럼 다윗의 행동이 지혜롭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뜻을 빙자하고 왜곡하여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지키겠다는 욕망과 욕심의 어리석은 모습으로
이런 불신의 모습으로는 에베소서 4장에 말하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갈 수 없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교묘하게 빙자하는 불신의 모습으로 괜히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깨어 천제 증인의 삶을 누리기 위하여 사랑의 속삭임을 멈추지 않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해 지는 길이라고 하신 후
오늘은 다윗이 레위 자손의 역할을 분담하며 아주 교묘하게 자신의 뜻을 하나님으로 뜻으로 일치 시켜가는 모습을 통하여 목교세들이 그렇게 앙망하는 다윗도 결국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피조물의 한계를 절대로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하시고 우리 인생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분명하게 고백하게 하시며
이를 위하여 오늘 보여 주시는 “다윗이 군대 장관들로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무대로 일하는 자의 수효가 이러하니라” 와 “저희와 모든 형제 곧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팔십팔 인이라 이 무리의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무론하고 일례로 제비 뽑아 직임을 얻었으니” 라는 말씀을 묵상해 보자
어쩌면 이렇게 오늘날의 목교세들의 모습과 똑 같은가
그렇게 본을 받으라고 하며 진짜로 영생을 소유 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진열해 두고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그리고 똑 같은 죽을 수 밖에 없는 피조물인 다윗을 어쩜 이렇게 똑 같이 따라 가려고 하는 것일까?
그래서 지금 우리들의 실제의 삶이나 예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말을 더 신뢰하며 성경보다 박사나 교수 그리고 목사의 말을 더 신뢰하고 인정하는 이상한 모양을 취하고 있다.
오늘도 다윗이 군대 장관들로 더불어 의론을 하고 또 제비 뽑아 직임을 부여 하는 등 선하고 보기 좋은 정말 하나님께서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처럼 일을 처리 하지만 그렇게 하는 근본적인 본질 즉 핵심은 바로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신의 안녕을 위해서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일련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본일이 알아서 자신들이 보기에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교회처럼 하나님께서 요청하지도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집이라며 하나님의 뜻이라며 자신들 멋대로 미사 어구를 사용하며 결국 자신들의 배와 욕망을 채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를 좀더 깊이 묵상해 보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리들의 입맛에 맞는 하나님으로 왜곡 폄훼하는 불의와 불법과 불경임을 알아야 한다.
이를 수없이 반복하여 점검하고 있는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도 깨어 있지 않으면 개혁을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주체들처럼 결과적으로 조금의 모양을 바꾼 것일 뿐 똑 같은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명심해야 할 것이 바로 우리들이 천제증인으로 희로애락의 모든 것을 편식 않고 누린다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누리 수 있는 자격에 대하여 확실히 알고 그것을 믿어야 한다.
이를 다시 한번 더 복습을 하면 이미 구원받은 내가 없으면 절대로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구원받은 확실한 나를 알고 믿으면 지금 보이는 나의 조건에 결국 크게 의미가 없어지므로 가능해 진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가 있지만 이 세상의 실정법을 다 지켜야 한다.
여기서 우리들이 착각하기 쉬운 것이 바로 실정법을 지킨다는 것인데 이는 법이 금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뜻도 있지만 어긴 경우에 그에 따라 정해진 책임을 지는 것도 지키는 것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법을 어기지 않은 것이나 어겨 책임으로 대가를 지불한 것이나 다 법을 지킨 것이 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이 둘을 구별하여 법을 어겨 대가를 지불함으로 법을 지킨 자에게 자신들만의 잣대로 전과자나 범법자란 이름으로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안위만을 위하여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불의와 불법이 오히려 적법처럼 통용되고 있다.
이에 우리 조각바람 식구들은 이 세상이 그런 잣대를 사용하는 것을 탓하거나 따라가기 보다 우리 안에서는 그 잣대를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믿음 없는 행동이 되어 우리들이 그렇게 훈련하고 있는 한 몸으로 지어가는 천재증인의 삶도 결국 그림자만 쫓아가는 불필요한 허수고나 외식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 몸이 이기에 어느 지체의 일이든지 곧 나의 일이 되어야 하고 또 세상의 잣대로 모두가 손가락질 해도 나는 내가 내 몸을 믿는 것처럼 서로 믿어야 하며 우리의 본질은 증인 임으로 내 손이 내 발을 판단하지 않는 것처럼 서로 판단은 절대 금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몫으로 우리들이 이미 인정하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세상만사가 우리들을 구속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기 하여 온갖 방법으로 유혹하고 위협하며 밀려 오더라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담대하게 모든 것을 신나게 누리며 즐기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 모임이 우리들의 정체성이 더욱더 분명해 져 가도록 하는 멋진 도구요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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