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되어야 할까?

패스라 2008. 6. 18. 11:57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태복음2669-75절의 말씀은

 

어제는 하나님께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는 베드로와 거짓 증거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 그리고 참 진리로 목적을 이루어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들을 통하여 지금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자라에 서 있는지 돌아보라고 하신 후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는 베드로와 이를 통하여 다시 예수님과 자신의 한계를 생각하고 심히 통곡하는 베드로를 보여 주시며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권세는 베드로처럼 우리들이 입으로 고백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몇 번이고 부인하게 할 뿐 아니라 저주까지 하게 할 만큼 위협적인 것으로 그 대표적인 실체가 바로 지금의 목교세들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과 자신을 돌아보고 심히 통곡을 하였지만 이 땅의 목교세들은 통곡은 고사하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사람을 더 교묘하게 미혹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 보여 주시는 우리들의 실상을 보고 돌이키기 위해서는 통곡한 이후의 베드로를 보아야 한다.

 

스스로의 한계를 보고 절망과 좌절에 빠진 베드로를 찾아오신 주님을 영접한 후 오순절 성령님의 이끌림에 따라 산 베드로는 이 세상의 관점에서는 예수님처럼 실패한 것처럼 순교를 했지만 우리 모두 닮고 싶어하는 천제증인의 삶이 아닌가?

 

때문에 우리들도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고 또 모두가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고백을 했다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되어야 할까?

 

지금의 목교세들처럼 이 땅의 것을 더 갖고 지키기 위하여 이미 사건이 종료된 십자가를 아직도 멀찍이 떨어져 보고 있는 것처럼 양다리를 걸치는 외식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이미 성공한 베드로처럼 주와 동행하는 삶으로 절대로 우리들을 죽일 수 없는 허상 뿐인 이 세상에 대하여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목교세들처럼 이 세상과 천국에 양다리를 걸쳐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라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깊이 묵상을 해 보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