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잠언27장1-13절의 말씀은
어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중에 목교세들에 의하여 심하게 본질이 변질, 왜곡된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와 “속임으로 그 미움을 감출지라도 그의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는 말씀은
목교세들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들이 아무리 의롭고 지혜롭기 위하여 발악을 해도 결국 그렇게 될 수 없지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신 후
오늘도 스스로 의로워지고 지혜로워지는 방법들을 보여주시지만 우리들의 한계로 인하여 절대 불가능의 방법임을 고백하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의 우리 인생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이 더욱더 선명하고 분명하게 보여 주시고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오늘주신 말씀 중에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 와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는 말씀을 좀더 깊이 묵상을 해 보자
먼저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 고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묵상해 보자.
쉽게 다가오는 것은 지금까지 목교세들로부터 들어온 것처럼 나를 드러나게 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으니 하나님께서 세워 주실 때 까지 기다리는 겸손을 강조한 것일까?
그것이 사실 이라면 이때 문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들이 멋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 되어 결국 온전하신 하나님을 우리들이 감히 폄훼하는 것이 될뿐 아니라 목교세들은 이를 우리는 겸손이라 했지만 사실 이도 엄밀히 말하면 겸손이 아니라 위선이고 교만이 된다.
그럼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하여 바로 앞에서 하신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를 보자
즉 자랑하지 말라는 이유가 겸손한 모습을 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자랑할 것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것이 아닌가?
따라는 결국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랑 받을 일을 할 수도 없고, 또 알지도 못한다는 알고 그저 예수만 붙잡고 있는 천제증인의 삶만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기억하며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라는 말씀을 보자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라고 하여 그렇게 생각하고 살면서도 실제로는 교묘하게 버려가고 있으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지만 오히려 당연히 찾아 가야 한다고 찾아가고 있으며,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고 하면서도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래도 형제뿐이라고 하면서 형제에게 매달리는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이로 인하여 일어나는 충돌을 그저 세상사로 돌리며 위장하고 포장한 목교세들의 세뇌에 의하여 교회에서 하는 신앙 생활이 항상 당당하지 못하지만 서로 쉬쉬하며 천국이 아닌 이 세상의 삶이라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멋대로 정의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이런 경우에 우리의 사명과 목적만 놓치지 않는다면 어느 쪽이던지 당당하고 자유롭게 누리면 된다는 것을 꼭 명심하길 바라며
이번 부산에 있는 질녀(형 딸) 결혼식에 아내의 불참을 쉽게 받아주었다. 이 세상의 잣대로는 무조건 참석을 해야 하지만 그로 인하여 감내해야 할 아내의 고통을 이 세상 모두가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고 비난해도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우리가 도전하고 있는 사랑의 속삭임이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에 도전하기 위하여
물론 이로 인하여 솟아질 이 세상이 손가락질을 아내와 함께 감수 하면서 기회가 주어지면 외치고 싶다. 바로 그 잣대가 또한 아내를 질녀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말이다.
부족한 나에게 보여지는 이 세상은 아내와 같은 피해자를 점점 양성하며 끝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스스로 지도자라고 목에 힘을 주고 있는 목교세들의 눈에는 도대체 무엇이 보여지고 있는 것일까?
목적이 변질된 교회와 목사도 문제 이지만 촛불을 들고 외치는 목교세들이 원하는 개혁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 결과는 교인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두 번 죽이는 짓임을 정년 모른다 말인가?
이에 우리조각바람 지체들은 이런 저런 제목으로 지금 이 땅에 필요한 것은 천제증인보다 선생과 지도자라고 하는 유혹에 넘어지지 않고 우리는 본문과 역할은 오직 천제증인임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허락해 주신 모든 것을 당당하게 누리며 즐기는 오늘과 오늘 모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