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이미 구원을 확증 받은 자유를 마음껏 ...

패스라 2008. 9. 1. 13:27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역대상11-28, 2 9-17절의 말씀은

 

어제 하나님께서 가장 아름답고 순결한 우리들의 노래가 바로 사랑의 속삭임이며 서로 사랑의 속삭임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이는 우리 인생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사명인 우리 인생을 목적을 이루어 가는 방법임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주신 말씀인내 사랑이여, 일어나 오세요. 내 사랑하는 그대여, 나와 같이 떠나요바위 틈에 숨은 내 비둘기여, 산기슭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내 비둘기여, 그대의 얼굴을 보여 주세요. 그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대 목소리는 감미롭고 그대 얼굴은 사랑스럽습니다라는 말씀은

 

목교세들의 주장처럼 외형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나 부부관계를 벗어난 관계에 적용할 경우 음란이나 음행의 모습을 띠고 있기에 곤욕스러워 하는 것은 결국 생명의 속삭임보다 율법의 잣대로 판단함으로 사랑의 속삭임이 무시된 죽은 관계로 흘러간다는 것을 우리들이 조각바람을 통하여 직접 도전해 보기 전에는 알지 못한 것처럼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신 후

 

오늘 갑자기 보여주시는 역대상의 말씀이 당혹스럽다. 왜냐하면 아가서의 말씀으로 우리 조각바람이 훈련중인 사랑의 속삭임을 좀더 깊이 점검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무너져 이번에는 계속 아가서의 말씀을 듣고 싶지만 결국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묵상해 보기로 한다.

 

그러자 다가오는 것은 아담으로부터 이어지는 지루한 족보의 나열은 결국 목사와 신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세뇌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정말 다윗을 드러내기 위함 일까?

 

그 당시 보기에는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이나 가장 장수한 므두셀라를 비롯하여 노아와 세상의 첫 영걸이란 니므롯를 비롯하여 보아스 등 대부분의 등장한 인물들이 이 세상의 잣대로는 결코 다윗에 조금도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다윗의 칠 형제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을 받지 못한 다윗에게 하나님의 시선이 집중되어 간 것이라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그 동안 목사나 신학 박사들이 말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다 일리는 있지마는 여기서 우리가 묵상해야 하는 것은 9가지 성령의 색깔이나 팔복처럼 어떤 부분에서는 특출하지만 9가지 성령의 열매나 8가지 복이 온전한 조화를 이룬 것처럼 스스로 온전한 의인은 피조물인 다윗을 비롯하여 어느 누구도 절대로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목교세들의 주장과는 달리 세상의 조건으로 성공한 것 같은 다윗을 비롯하여 그 누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인생이 살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진리이고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율법의 요구에 온전히 응함으로 스스로 온전한 의인이 되어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 그 구원을 완성하신 그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여 은혜인 공짜로 구원을 소유할 수 있는 정말 복 받은 우리들임을 알아

 

오늘처럼 비가 오거나 또는 눈이 오거나 바람불어도 이미 구원을 확증 받은 자유를 마음껏 그리고 신나게 누리는 천제 증인의 삶에 충실하게 하기 위하여 확인 하라며 주실 말씀을 사모하는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