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열왕기하 6장 19-33절 말씀으로 먼저 어제 주신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라는 말씀은
우리 인생들은 항상 가면으로 자신을 가리고 있지만 문제는 가면의 얼굴이 자신의 진짜 얼굴인줄 착각을 하고 진짜 자신의 얼굴로 행한 모든 것을 실수란 이름으로 합리화 하는 인면수심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실체임을 보여 주시며
이런 본질과 실체를 가지고 율법이 요구하는 의롭고 순결하고 착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에 도전해 보지만 그것은 결국 그런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가면을 만드는 것으로 이를 하나님께서는 그저 꽹과리 소리밖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선포한 후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대신하여 율법으로 의롭고 순결하고 착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되신 후 그것을 믿음과 은혜로 받아 누리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을 우리의 의와 순결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이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그 고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사역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온 땅에 사랑이 넘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삶아 죽여 그저 온 땅에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만 진동을 하고 있다고 하시며
정말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죄의 권세 속에서 위로와 소망을 받으며 끝까지 견디어 최후 승리를 소유할 수 있도록 주신 지침서인 요한 계시록의 말씀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금기하던지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구약시대를 통하여 우리 스스로 통과만 하면 구원을 이룰 수 아주 중요한 도구들이었지만 이미 고백하고 선포된 것처럼 우리 피조물로서는 절대 불가능의 도점임을 고백하고 예수님께서 대신 이루어 주시므로
이미 빈 껍질이 되어버린 제사(형식적인 예배), 성전(교회), 제사장(목사), 십일조, 율법(착하고, 구별된 순결한 삶)을 비롯하여 이 세상이 요구하는 섬김과 나눔과 사랑에 매달리는 고난을 요구하는 삶은 오히려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역을 폄하하는 것으로
에베소서 4장에 말하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절대로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 말세의 기간을 견디어 승리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불가능의 도전으로 이를 극복하는 비밀이 바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천국과 이 세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 누리며 서로 사랑하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하시며
오늘도 이를 위하여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말씀 중에서 “왕이 이르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자
어제 예상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으로 제단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자 그들 뿐만이 아니라 지금보고 있는 우리들도 만족할 만큼 먹고 마시며 평화의 무드가 조성되었다고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고 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어 “이 후에” 로 다시 전쟁과 기근과 시기와 질투가 일어나는 것이 또한 이 세상에 가면을 쓰고 살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임을 잊고 불가능에 도전함으로 스스로 힘들어 하지 말라고 하시며
“왕이 이르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라고 하는 것처럼 이 세상의 가치 기준에 따른 법이나 제도나 고정관념에 대하여
“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의 주인의 발소리가 그의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고 하는 것처럼 담대해져
이미 우리의 승리를 확증해주신 그 주님만을 바라보고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본질을 왜곡한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과 연합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아무리 사실과 현실처럼 그리고 태산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또한 아무리 진짜라고 큰소리 쳐도 죽음 앞에는 무용지물인 부부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관계인 또 다른 나인 지체들과 이미 혼인잔치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바라보고
종말을 소망하며 담대하게 누리고 즐기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확인하고 감사하며 사랑함으로 행복해 하는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