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예수님께서 받은 세가지 시험이 주는 의미는?

패스라 2009. 1. 14. 20:00

누가복음 4장1-13절은 예수님께서 성령이 이끌려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금식하며 마귀의 시험을 받는 중에 마지막 세가지 시험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하기 위함일까?

 

지금까지 목교세들에 의하여 세뇌된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도 마귀의 시험을 인간의 육신을 입었기에 받아주며 하나님의 아들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당당하게 승리 했으니 우리도 성경공부 열심히 하여 말씀으로 무장하여 마귀의 시험을 이겨라는 것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먼저 요한이 하라는 회개인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나눠주며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고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는 이 말씀을 목교세들이 앞장서서 예수님께서 원하는 회개처럼 왜곡하여 온 세상을 미혹하여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전에

 

우선하여 예수님께서 원하는 회개인지 그리고 요한의 말대로 회개하면 정말 예언한 대로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될 것이지 묵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요한의 회개와 예수님이 원하는 회개가 일치하고 그렇게 하면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된다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나서 할 이유가 없어질뿐 아니라 종말을 비롯하여 성경의 흐름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한의 회개는 지금의 진보처럼 사회 정의를 위한 정의의 칼을 스스로 뽑는 것이고 예수님의 회개는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받으라는 것으로 한마디로 요한은 사회 정의를 위한 심판을 예수는 구원 즉 사랑을 위한 심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을 가지고 다시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시는 그림을 묵상해 보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확인해 보면

 

먼저 마귀가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떡이 되게 하라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줄 아느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가 알고 있지않나 하시며 이 세상의 무기인 떡을 한마디로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셨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은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떡을 먹어야 산다고 생각하거나 그 둘이 다 필요하다고 하고 있으니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자 다시 마귀가 손에 잡힐 것 같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까지 한 이 세상의 권위와 영광을 보여주며 다 줄 테니 마귀에게 절만 하라고 하자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곧 요한일서에서 말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고 하시는 것처럼

 

보여준 그 모든 것이 그저 신기루처럼 곧 사라질 헛되고 헛된 것임을 너가 알고 있자나 하시며 다시 한마디로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셨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은 눈에는 아직도 그것이 너무 좋고 영원할 것 같아 열심이 쫓아가고 있으니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자 다시 마귀가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여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너를 지킬 것이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도 우리의 믿음에 있어 너무 중요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믿음도 곧 마귀의 수준에서 하나님을 신뢰 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켜 주시는 것을 믿음이라고 착각에 빠져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이 세상이나 자신의 잣대로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스스로 절망하고 좌절하여 바닥을 헤매는 것을 신앙의 정식 코스로 서로 인정하는 웃지 못할 헤프닝을 벌리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들 모습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은 마귀의 말이 다 맞는 말이지만 일부이며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여 결과는 알 수 있지만 그 과정은 우리가 원하는 방법이 아닐 수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뛰어 내리던지 말든지 하나님께서는 최후 승리자로 만들어 주심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피조물인 우리의 믿음 안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라고 하는 것처럼 얼마나 신나는 일이 일어 났는가?

 

하지만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는 피조물로서 그 한계를 스스로 극복할 수도 없고  또 본질인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떡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세상은 그저 살아져 갈 허상이며, 꽹과리 소리가 아닌 살아있는 믿음을 소유할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우리들에게 그 복을 주시고 누리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대신하여 율법으로 의롭고 순결하고 착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모습이 되신 후 그것을 믿음과 은혜로 받아 누리면 그것을 우리의 의와 순결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이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그 고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사역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온 땅에 사랑이 넘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죽여 그저 온 땅에 사랑의 시체들로 인하여 악취와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만 진동을 하고 있으며 

 

정말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죄의 권세 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견디어 최후 승리를 소유할 수 있도록 주신 지침서인 요한 계시록의 말씀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금기하던지 아니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할 뿐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우리 스스로 통과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로 주셨지만 이제는 이미 빈 껍질이 되어버린 제사(형식적인 예배), 성전(교회), 제사장(목사), 십일조, 율법(착하고, 구별된 순결한 삶)을 비롯하여 이 세상이 요구하는 섬김과 나눔과 사랑에 매달리는 고난을 요구하는 삶은 오히려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역을 폄하하는 것으로

 

에베소서 4장에 말하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절대로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 말세의 기간을 견디어 승리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불가능의 도전으로 이를 극복하는 비밀이 바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천국과 이 세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 누리며 서로 사랑하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