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늘 묵상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1-12절 말씀으로 먼저 어제 묵상한 말씀 중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하는 것은
그 동안 구약인 에스더서에서 다시 신약인 데살로나가전서로 넘어와 묵상하는데 조금은 혼란스러울 것 같아 구약과 신약을 바라보는 즉 묵상하는 관점을 정리하면
구약은 우리 피조물이 스스로 율법을 완성하여 구원을 이루기 위한 피 눈물 나는 우리 피조물의 도전의 역사를 보여주시며 그 결과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으로 실패의 선언이고
신약은 하나님께서 직접 율법을 완성하신 후 우리 피조물은 그것이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인정하는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승리를 나의 승리로 믿음으로 받아 그것으로 구원을 소유하는 것으로 구약과 달리 과정이 아니라 승리의 열매(새로운 피조물)를 바로 받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은 누구나 고정된 길인 율법이란 하나의 잣대로 평가 함으로 신앙의 모양도 획일되어 우리 스스로 판단하기 용의하여 가면으로 악용하지만 신약은 회개한 후 각자 각각의 믿음으로 구원/승리를 소유하기에 보이는 모양이 획일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삶의 중심이 예수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묵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근거로 오늘 말씀을 묵상해 보면 목교세들의 말처럼 사도 바울이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문제를 지적하기에 앞서서 그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소유한 자들의 대한 기본인 본질에 대하여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다. 즉 그들이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도 본질에서 벗어나면 꽹과리 소리가 된다는 엄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선생이나 지도자가 아니라 증인으로 다가 갔으며
또 너희도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된 것도 우리의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의 증인된 삶의 모습을 보고 된 것이며 너희도 너의 말이 아니라 너의 삶이 바로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정의하며
그 핵심 즉 본질이 바로 장래 노하심(심판)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냉정하고 확실하게 선포함으로 만약 여기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면 그것은 꽹과리 소리란 것으로 결코 칭찬도 격려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이 스스로 의로워져 구원을 받아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율법에 온전히 거하므로 전지전능하고 천지 만물의 주인이시며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알아 온전하게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언약인 당신의 몸을 우리 인생의 살수 있는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주신 복음은 결국 구약은 우리 피조물로서 그림이 떡인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도구로 주신 부부나 혈연이나 재물이나 건강 등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을 복이라고 착각하여 실패한 것임을 고백하고 도구를 도구로 인정하는 회개로 도구가 아닌 진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복음 즉 오직 예수로 구원을 받아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라는 것이다.
또한 이를 확인해 주기 위하여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그렇게 많이 나온 혈연이나 족보를 비롯하여 도구의 중요성이 살아질 뿐 아니라 오히려 모든 도구를 다 버려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세상의 이성과 감성으로 하나님의 뜻인 복을 평가하면 하나님의 뜻인 복을 두고 천국의 배설물이 하나님의 뜻인 복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세상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된 길인 복이 아닌 배설물을 갈망하는 헛된 삶에 도전하게 된다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분별하라고 주신 이성과 서로 사랑하려고 주신 감성의 조화로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으로 의롭고 순결하고 착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모습이 되신 후 그것을 믿음과 은혜로 받아 누리면 그것을 우리의 의와 순결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은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그 고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사역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온 땅에 사랑이 넘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죽여 그저 온 땅에 사랑의 시체들로 인하여 악취와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만 진동을 하고 있으며
정말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죄의 권세 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견디어 최후 승리를 소유할 수 있도록 주신 지침서인 요한 계시록의 말씀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금기하던지 아니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할 뿐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우리 스스로 통과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로 주셨지만 이제는 이미 빈 껍질이 되어버린 제사(형식적인 예배), 성전(교회), 제사장(목사), 십일조, 율법(착하고, 구별된 순결한 삶)을 비롯하여 이 세상이 요구하는 섬김과 나눔과 사랑에 매달리는 고난을 요구하는 삶은 오히려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역을 폄하하는 것으로
에베소서 4장에 말하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절대로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 말세의 기간을 견디어 승리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불가능의 도전으로 이를 극복하는 비밀이 바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천국과 이 세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 누리며 서로 사랑하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이를 위하여 오늘 묵상 할 말씀 중에서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자
바울은 어제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라고 한 후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하는 말을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목교세들이 바라보는 관점인 데살로니가 교회가 처한 여러 어려운 상황 중에 바울이 가장 가슴 아프게 여기며 먼저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바로 바울 자신에 대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불신이었다는 것처럼
바울은 이를 위하여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고 하며 한 말은 결국 다 본인의 자랑이 되어 스스로 그리고 아주 당당하게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라는 억지를 부리므로
결국 스스로 하나의 틀을 만들어 그것으로 인하여 오늘날과 같이 신앙의 본질이 왜곡 변질되어 복이 아닌 배설물을 구하는 신앙이 진짜처럼 미혹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분량대로 오직 예수를 본받는 자가 되어야 온전해 지지 그 대상이 바울이 아니라 누구라도 피조물을 본받기 위하여 달려가면 내가 그가 아니므로 결국 부족할 뿐 아니라 또 하나의 율법 같은 틀을 만들어 불가능에 도전하려고 긍긍 그리다 결국 실족하고 만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목교세들의 불의와 불법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빙자하여 이 세상과 자신을 위한 섬김과 꽹과리 소리의 사랑에 미혹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쁨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아무리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도 다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고 서로 사랑함으로 사랑이고 생명의 본질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살아있는 사랑의 삶으로 영생과 천국의 소유를 확인하고 누리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살아있는 사랑의 삶이란 서로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이 모든 조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연합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그 방법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이 천국을 소유하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확실하게 믿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과 연합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아무리 사실과 현실처럼 그리고 태산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또 하나님을 알아가는 도구로 준 것이기에 아무리 진짜라고 큰소리 쳐도 죽음 앞에는 무용지물인 부부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관계인 또 다른 나 인 지체들과 이미 혼인 잔치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바라보고
종말을 소망하며 담대하게 누리고 즐기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확인하고 감사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행복해 하는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