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패스라 2010. 11. 7. 08:16

오늘 묵상하는 디모데전서31-16절 말씀 중에서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고 하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감사하며 이에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 진다.

 

왜냐하면 바울의 말과 행동은 외모인 이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너무나 훌륭한 모습이고 관계 같지만 이것이 오히려 예수와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스스로 중간 역할을 하는 선생이나 또는 스스로 예수님의 자리에 올라가므로 불의와 불법이 될 뿐 아니라

 

바울의 사상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감동을 그의 지나친 열정으로 인하여 그가 알고 있는 외모인 이 세상의 지식과 지혜로 우리들이 알게 쉽게 설명을 하기 위하여 젖으로 만들다 보니 그 본질이 변질되고 왜곡되어 미혹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혹자는 냉정하게 말하면 기독교를 그리스도교라고 하기보다 바울교라고 해야 한다고 하는 말을 감사하게 받아 바울의 지나친 열정이 오히려 그리스도를 예수를 증거하기보다 빙자하여 바울 자신을 증거하고 있음이 됨을 심각하게 고민 할 때

 

그런 바울을 통하여 더욱더 선명하고 분명하게 보여지는 예수를 영접하므로 천국을 소유하여 누리는 참 자유 즉 증인의 삶을 누릴 수 있음을 명심하고 이를 위하여 오늘 주신 말씀을 묵상해 보면

 

사도들이 성령의 권능을 이 세상을 위하여 사용함으로 생겨난 교회를 관리하기 위하여 필요한 직분인 감독/장로의 직분을 얻으려 하는 것을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또 집사의 직분까지 필요한 자격과 조건을 제시하는 바울의 법에 따라 사는 것이

 

이 세상으로부터도 칭찬을 받을 일이 되니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눈에 보이는 이 삶에 자긍심을 가지고 믿음의 본질처럼 착각에 빠져 바울이 요구한 대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섬김과 봉사와 나눔과 감사를 하는 삶을 살려고 발악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한다고 하셨고 또 구원의 자격과 조건을 그렇게 말했단 말인가

 

그럼에도 이로 인한 각자의 자랑이 성경에서는 외모인 이 세상의 것으로 허황된 것이라고 한다고 하면 눈을 뒤집고 입에 거품을 물며 무슨 보물이 빼앗기는 것처럼 목숨을 걸고 발악을 하는데

 

그것은 바로 바울 스스로 증인으로 살기보다 자신의 지나친 열정으로 인하여 이방인의 스승이 되어 결국 외모인 율법과 이 세상의 요구에 따라 바울 자신이 생각하는 바울의 법으로 다시 죄의 멍에를 씌우며 복음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이를 본받은 수많은 목사들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저주 설교를 하며 우리들의 얼굴과 가슴에 있는 음란과 음행을 제거하고 착한 양심을 위한 선한 싸움으로 구원을 이루는 절대 불가능에 도전을 해야 하다고 미혹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며 돌아서서는 오히려 엉뚱한 짓들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따라서 구약 즉 율법은 우리 스스로 의인이 되어 의인의 길로 다니려는 불가능의 도전임을 깨끗이 승복하고 그래서 주신 신약 즉 복음은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므로 예수 즉 의인이 되어 의인의 길로 다닌다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비롯하여 각각의 성경 기자들에게 주신 감동을 이 세상인 외모로 최선을 다하여 판단하여 표현한 것임을 알고 보여지는 문자보다 그 문자를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성령님의 권능을 이 세상을 잘 사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죄와 의와 심판으로 아는데 사용함으로

 

이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너무나 대단한 신앙의 선배들을 본 받아 따르라는 것 이 아니라 그들처럼 대단한 인생도 절대로 피조물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을 온전히 표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누구든지 성령의 권능을 외모로 판단하여 능력 등 이 세상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면 오히려 하나님을 빙자하여 악을 행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고 그들을 본받기 위하여 발악을 하며 악을 쌓기보다 성령님께서 알게 하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달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너무나 감사한 이 복을 누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권능과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의 본질을 외모로 판단함으로 왜곡 변질되어 나타난 결과가 바로 우리들이 이미 경험한 이단이라고 하는 종말론자들의 모습이고 또한 이 세상의 조직이나 공동체보다 더 부정과 부패와 무질서로 오히려 세상의 지탄을 받은 교회와 종교단체임에도 

 

아직도 성령의 권능을 외모로 판단하여 병 고침을 비롯하여 기적과 이적을 위하여 사용하면 이 세상의 착한 일로서 세상의 칭송을 받겠지만 선생이 되지 말고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초능력의 선생과 심판 자로 군림하며 순종을 강요하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뿐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문자대로 판단하여 최후 심판의 공포분위기까지 조성함으로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가 아니라 외모로 판단하여 변질 왜곡된 교회의 모습 일뿐이다
 
때문에 아직도 사람들을 미혹하여 초대 교회로 돌아가지며 나팔을 불며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는 목교세들의 미혹과 유혹에서 빨리 깨어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와 복음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들은 크리스천의 정체성과 초대교회의 허구에서 벗어나 성령님께서 위로하고 인도하시는 교회인 천제증인으로 빨리 회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교회란 틀로 포장하여 세상의 칭송을 받기 위하여 발악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도구로 주었지만 이미 완성되어 빈 껍질이 된 구약의 요소들인 율법, 성전, 십일조, 안식일, 예배, 기도를 비롯하여 스스로 의로워지기 위하여 사랑이나 섬김이나 나눔이나 착함을 비롯하여
 
부부나 혈육의 관계나 제도가 아직도 구원의 조건이나 자격처럼 나팔을 불며 또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는 것이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는 불의와 불법을 멈추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나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은 외모인 그런 세상적인 모양이나 자격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천국의 증인의 삶을 사는 것으로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의 묵상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전인 교회요 예배와 기도와 찬송이며 율법의 완성으로 이미 의인으로 확증된 것이기에 지금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함으로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여 그것을 누리는 천국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 피조물의 사명이요 목적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외모로 판단하여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목교세들의 불의와 불법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빙자하여 이 세상과 자신을 위한 섬김과 꽹과리 소리의 사랑에 미혹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쁨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외모가 아닌 공의로 판단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아무리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도 다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고 서로 사랑함으로 사랑이시고 생명의 본질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살아있는 사랑인 증인의 삶으로 영생과 천국의 소유를 확인하고 누려야 한다.
 
그리고 그 살아있는 사랑의 삶이란 서로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이 모든 조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연합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그 방법도 역시 오직 예수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이 천국을 소유하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확실하게 믿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과 연합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아무리 사실과 현실처럼 그리고 태산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또 하나님을 알아가는 도구로 준 것이기에 아무리 진짜라고 큰소리 쳐도 죽음 즉 심판 앞에는 무용지물인 부부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관계인 지체들과 이미 혼인 잔치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바라보고
 
이 세상을 누리고 즐기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확인하고 감사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행복해 하는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