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패스라 2011. 3. 26. 08:09

오늘 묵상하는 로마서 1125~36절 말씀 중에서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고 하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허락된 복음이 얼마나 귀하고 충격적인 감동임을 알고 감사하므로 소유하여 누리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묵상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구약인 율법은 우리 피조물이 생로병사의 궤도로 돌고 있는 이 세상의 궤도를 율법인 권선징악의 논리로 완성하여 스스로 극복함으로 구원을 이루어 영원한 생명과 복락을 누리라는 것으로

 

이론은 가능하지만 우리 피조물의 한계로 절대 불가능하기에 결국 구약인 율법으로 우리 피조물의 한계를 확인하고 그로 인하여 각자의 잔에 차 있는 율법이나 구습이나 자아를 온전하고 완전하게 비우는 회개를 통하여 율법이 아닌 복음으로 다시 채워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으로

 

결국 구약인 율법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이 복음이고 또 구약인 율법을 통하여 바라본 복음의 그림자인 묵시로 기록된 다윗의 혈통보다 더 온전하고 완전한 방법인 하나님 자신이 직접 성령으로 잉태되어 피조물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직접 그리고 온전하고 완벽하게 다 이루므로 생로병사의 한계를 극복하여 완성한 구원사역인 복음의 실체가 바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로 우리 피조물의 구원을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뿐 아니라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고 회개하고 그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로마를 비롯하여 어디에 살고 있는 그 누구라도 구원을 받아 하나님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오는 것으로 이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며

 

그런 삶을 위하여 그렇게 구원 받은 후 실족하지 않도록 서로 발을 씻기며 서로 사랑함으로 은혜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며 신나고 행복하게 평강을 누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바울 자신도 율법으로는 절대 자유롭지 못함을 분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보다 좀더 율법적인 자신의 언행과 생각으로 율법을 통하여 바라본 복음의 묵시인 그림자를 본질과 완성으로 착각하여 증인이 아닌 스스로 선생이 되므로

 

율법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법까지 동원한 안타깝고 애절한 부모의 마음을 외모로 보면 존경 받는 이 세상의 대단한 지도자들처럼 아주 합당하고 멋있게 보일 뿐 아니라 잘 설명된 복음 같지만 복음에 율법이 혼합됨으로 오히려 복음의 본질을 미혹하는 불의와 불법이 됨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대단한 용기와 이 세상이 말하는 희생적 사랑으로 바울의 바울 됨이 복음이고 하나님의 뜻인 참인 것처럼 무지함에 따른 참담한 용기를 발하며 

 

바울 자신이 보기에도 스스로 고백한 하나님의 속성과도 도저히 맞지 않아 이해할 수 없는 야곱과 에서의 사건과 출애굽을 위하여 바로에게 행한 사건 등 하나님의 행하심을 두고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께 불의하다고 할 수 없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며 필요에 따라 선하게도 완악하게도 사용하기 때문이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을 높이며 아주 멋있게 설명함으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 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토기장이와 진흙으로 비유하여 설명한 것은 복음으로 이제 포도나무와 가지 사이가 된 사실을 깨닫지 못한 무지에 따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구약의 말씀까지 인용하여 진짜처럼 용감하게 믿음과 복음을  설명한 헛소리를 율법인 외모로 보면 아주 멋있고 합당하여 당당하게 나팔과 꽹과리 소리를 울리고 있을 뿐 아니라

 

아버지와 선생의 심정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간절하게 바라는 바울의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의 열정과 열심은 구원의 무지에 따른 것으로 결국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신의 의를 세우는 것이 되어 하나님의 의에 불복종이 된다고 절규하고 있지만

 

그것이 바로 복음의 무지에 따른 바울의 대단한 열정과 열심히 오히려 복음을 미혹하여 가리는 불의와 불법이 되는 바울 자신의 모습임을 분별할 때

 

모세를 통하여 말한 것처럼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한 말의 의미가 우리 피조물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빨리 깨달아 회개하라는 경고의 메시지임과 

 

또 복음과 믿음이 이미 확인된 사실인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입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이미 확인된 그 사실을 입으로 시인할 때 우리가 바로 살아있는 건강한 포도나무 가지가 복음인 예수를 통하여 됨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임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라고 하면서

 

복음과 전혀 무관한 의무와 책임감의 멍에를 씌우기 위하여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라는 아주 멋있고 달콤한 말로 복음의 본질을 미혹함으로 결국 지금까지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구약의 말씀들을 빙자하며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고 하는 말과는 달리 그 말씀을 들음에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다른 나라를 도구로 사용하면서까지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을 끝까지 감싸려고 하는 대단히 넒은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종일 손을 벌리고 계신 하나님이라고 설명한 후

 

이를 은혜라고 억지를 부리며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고 은혜는 바르게 설명하였지만 

 

그 은혜의 실체가 이스라엘 전체가 아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겨우 칠천 명을 남겨 둔 것이라고 하는 것이나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어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만 구원을 얻게 한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은 은혜나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협하고 불공평한 하나님으로 폄훼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에 무지한 참담한 헛소리로 자신의 말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실족은 이방 민족이 구원의 기회를 얻는 세상과 화목으로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있기에 원 가지인 이스라엘을 넘어지게 하여 이방을 구원한 것처럼 구원받은 이방도 넘어지게 할 뿐 아니라 결국 원 가지를 살리려고 하는 것이니 괜히 교만하여 은혜로 받은 구원이 찍히는 바 되어 실족하지 않도록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며 억지를 부리기 위하여

 

오늘도 계속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복음으로 보면 우리 이방을 위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지만 택하심으로 보면 그들의 조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하면서 하는 헛소리를

 

이 세상의 외모인 율법으로 보면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 승리자가 되는 참으로 합당하고 당연한 바른 말 같지만 사실은 복음의 본질과 율법을 통하여 바라본 묵시인 복음의 그림자를 분별하지 못한 무지에 따른 헛소리로 오히려 불의와 불법임 됨을 바로 알 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허락된 복음으로 구원받아 누리는 것이 너무나 귀하고 충격적인 큰 감동임을 깨달아 감사하므로 신나는 증인의 삶을 행복하게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인 감동을 묵시로 받아 각각의 성경기자들이 자신이 가진 이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표현한 것으로 우리들이 직접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 도구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방편으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으로 착각하기에 기독교를 바울교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일 뿐 아니라

 

불교에서도 깨달음은 언어도단, 불립문자라 하여 이심전심으로만 가능하기에 우리의 언어나 문자를 방편이 아닌 본질로 의지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감동을 절대로 우리 피조물이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때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는 말씀처럼 성경을 통하여 더욱더 선명하고 분명하게 보여지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알고 영접하므로 천국을 소유하여 누리는 증인의 삶을 살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복음을 의지하여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므로 받은 구원이 한편으로는 완성되었지만 또 한편으로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때 까지는 아직 미완이라고 목교세들이 미혹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받지만 성령 훼방하는 것은 절대로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하셨고 또 히브리서를 통하여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고 또 그 사실을 믿음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성령을 훼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을 믿고 인정한다는 것으로 결국 성령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완성된 구원이 계속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어떻게 보면 불완전한 구원 같지만 이것은 구약과 신약을 그리고 믿음을 분별하지 못한 무지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구원을 지키기 위하여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다는 이런 불확실함에 목숨을 걸거나

 

음행 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른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자신을 위하여 음행하고 자신의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믿음을 저버리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돌이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태복음 23장의 예수님의 경고 말씀처럼 외식하는 자가 되어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짓이 될 뿐 아니라 때가 지난 후에는 아무리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이를 갈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역이 이미 완성되었기에 성령님이 오신 것을 분별하지 못한 초대교회라고 말하는 그 당시부터 이미 완성된 최후 심판의 그 날이 곧 일어날 것으로 착각함에 따라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이제는 전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절대 불가능한 것임을 성경을 통해서나 자신의 양심을 통해서 알 수 있음에도 지금도 이런 가짜 복음이 예수의 참 복음보다 더 그럴 듯 하고 달콤하게 보이므로 이 세상으로부터도 칭찬을 받는 짓이 되니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이 가짜 복음에 자긍심을 가지고 믿음의 본질처럼 착각에 빠져

 

바울이 요구한 대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섬김과 봉사와 나눔과 감사를 하는 삶으로 우리들의 얼굴과 가슴에 있는 음란과 음행을 제거하고 착한 양심을 위한 선한 싸움으로 구원을 이루자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바울의 말임을 알아야 한다.

 

때문에 이런 미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성령님의 권능을 이 세상을 잘 사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대로 죄와 의와 심판으로 아는데 사용해야 이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너무나 대단한 신앙의 선배들을 본 받아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처럼 대단한 인생들도 절대로 피조물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을 온전히 표현 할 수 없을 알뿐 아니라

 

누구든지 성령의 권능을 외모로 판단하여 능력 등 이 세상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면 오히려 하나님을 빙자하여 악을 행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고 그들을 본받기 위하여 발악을 하며 악을 쌓기보다 성령님께서 알게 하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달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너무나 감사한 이 복을 누리는 증인의 삶을 살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권능과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의 본질을 외모로 판단함으로 왜곡 변질되어 나타난 결과가 바로 우리들이 이미 경험한 이단이라고 하는 종말론자들의 모습이고 또한 이 세상의 조직이나 공동체보다 더 부정과 부패와 무질서로 오히려 세상의 지탄을 받은 교회와 종교단체임에도 

 

아직도 성령의 권능을 외모로 판단하여 병 고침을 비롯하여 기적과 이적을 위하여 사용하면 이 세상의 착한 일로서 세상의 칭송을 받겠지만 선생이 되지 말고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초능력의 선생과 심판 자로 군림하며 순종을 강요하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뿐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문자대로 판단하여 최후 심판의 공포분위기까지 조성함으로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가 아니라 외모로 판단하여 변질 왜곡된 교회의 모습 일뿐이다 


때문에 아직도 사람들을 미혹하여 초대 교회로 돌아가지며 나팔을 불며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는 목교세들의 미혹과 유혹에서 빨리 깨어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와 복음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들은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초대교회의 허구에서 벗어나 성령님께서 위로하고 인도하시는 교회인 천제증인으로 빨리 회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교회란 틀로 포장하여 세상의 칭송을 받기 위하여 발악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도구로 주었지만 이미 완성되어 빈 껍질이 된 구약의 요소들인 율법, 성전, 십일조, 안식일, 예배, 기도를 비롯하여 스스로 의로워지기 위하여 사랑이나 섬김이나 나눔이나 착함을 비롯하여
 
부부나 혈육의 관계나 제도가 아직도 구원의 조건이나 자격처럼 나팔을 불며 또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는 것이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는 불의와 불법을 멈추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나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은 외모인 그런 세상적인 모양이나 자격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천국의 증인의 삶을 사는 것으로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의 묵상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전인 교회요 예배와 기도와 찬송이며 율법의 완성으로 이미 의인으로 확증된 것이기에 지금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함으로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여 그것을 누리는 천국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 피조물의 사명이요 목적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외모로 판단하여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목교세들의 불의와 불법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빙자하여 이 세상과 자신을 위한 섬김과 꽹과리 소리의 사랑에 미혹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쁨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외모가 아닌 공의로 판단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아무리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도 다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고 서로 사랑함으로 사랑이시고 생명의 본질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살아있는 사랑인 증인의 삶으로 영생과 천국의 소유를 확인하고 누려야 한다.
 
그리고 그 살아있는 사랑의 삶이란 서로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이 모든 조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연합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그 방법도 역시 오직 예수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이 천국을 소유하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확실하게 믿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과 연합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아무리 사실과 현실처럼 그리고 태산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또 하나님을 알아가는 도구로 준 것이기에 아무리 진짜라고 큰소리 쳐도 죽음 즉 심판 앞에는 무용지물인 부부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관계인 지체들과 이미 혼인 잔치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바라보고

 
이 세상을 누리고 즐기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확인하고 감사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행복해 하는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