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표적
오늘 묵상하는 요한복음 2장1~25절 말씀 중에서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허락된 구원이 얼마나 귀하고 충격적인 감동임을 잘 알아 감사하므로 소유하여 누리는 천국의 증인들이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이를 위하여 먼저 어제 큐티를 다시 정리해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는 것은 천지 만물의 창조자는 여호와 하나님임을 설명하기 위한 몽학 선생으로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오히려 표적이 될 수 있으니 벗고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는 것이 바로 창세기 에덴 동산의 선악과 사건과 퇴출 이후 자유의지에 따른 불가능의 도전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는 것은 바로 세례 요한을 비롯한 구약의 선지들을 말하는데 문제는 증언의 목적이 구약의 선지자는 빛이지만 세례 요한은 빛이 아니라 복음임을 분별하지 못하고 빛을 증언하므로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는 기록과는 반대로 사람들을 그를 복음이 아닌 빛으로 그를 영접하려고 몽학 선생을 따라 많은 표적을 구하였으며
또 복음을 외모로 판단하여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야 함에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므로 지금까지 복음을 가르치는 몽학 선생인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님의 자녀를 붙잡고 있으므로 오히려 복음을 가로 막고 있을 뿐 아니라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복음을 외모로 판단하여 기록함으로 우리의 구원이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께 주권이 있는 것처럼 미혹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란 몽학 선생인 베드로의 고백에 멈춰 있으므로 오히려 이 고백이 표적인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복음을 가리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고 함으로 세례 요한도 창조주와 피조물을 한계를 선과 후로 착각하여 자신과 동일시 할 뿐 아니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하기보다 모세를 통하여 온 율법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하여 회개를 하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복음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데
그것이 바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대체로 잘 기록해 놓고도 창조주와 피조물의 다른 점임을 복음의 무지로 오히려 애매하게 설명하자
이에 유대인들이 바로 알기 위하여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애매하게 회피하다 코너에 몰리자 결국 묵시인 구약을 실제인 것처럼 미혹하여 자신은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고 말하자
오히려 더 혼미하여 뜬구름을 잡기 위하여 다시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고 하자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고 다시 애매한 동문서답을 말하는 것은
결국 세례 요한 자신부터 자신의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모르고 있다는 것으로 이는 정답으로 말한 구약의 묵시인 무엇이 주의 길을 곧게 하는 것임을 모르고 있음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고 하므로 자신의 역할인 주의 길을 곧게 하는 것이 곧 그를 증언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미혹할 뿐 아니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고 복음의 무지로 자신의 착각을 진짜처럼 말하여 지금까지 복음을 가리고 있으며
복음과 별로 상관없는 제자로 착각하고 있는 증인을 택하는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며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하면서 복음이 아니라 구약에서 묵시로 보여준 그림들을 빙자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말하므로 오히려 복음을 가리고 있음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보여주시는 그림을 보면 1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라는 그림처럼
갈릴리 가나에 있는 어떤 혼인 잔칫집에 어머님과 함께 초대를 받은 예수님이 잔칫집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두고 아래의 기적을 위하여 초보처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자 이에 4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초보답게 사실대로 바르게 잘 말해놓고
어떤 목적을 위하여 바로 예수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하고 5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고 하는 참으로 어색한 말을 하고는
6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고 하는 것처럼 물로 먹고 있는 포도주보다 더 좋은 포도주로 변화된 것을 보여주고
11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고 하는 것으로 기록하여 예수의 어머니를 특별한 여자 성모 마리아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표적을 구하므로 지금까지 몽학 선생인 표적의 옷을 벗지 못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비유이든지 사실이든지 상관없이 천국과 우리의 구원은 물이 좋은 포도주로 변화는 것처럼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피조물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것임을 보여주거나 설명한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12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고 하는 것은 그런 예수를 목수 아들의 예수로 표적을 구하여 이해하려고 하다 안되니 미쳤다고 하기 때문에 당연히 당신의 길을 가신 것이며
13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고 하는 것처럼
복음서마다 공통으로 구약까지 빙자하여 예수를 도덕천을 따른 대단한 종교인으로 높이기 위하여 스스로 종교의 표적을 구하지만 결국 종교의 실체가 얼마나 악하고 음란한 것임을 스스로 반증하고 있으며
18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고 하는 것은 보여주는 그림만이 아니라 예수의 지나온 행적에 대하여 자신들의 종교를 위하여 검정을 하려고 하자 1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고 하는 것의 의미가
20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고 하는 것처럼 그들이 구하는 표적을 따라 종교를 위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23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라고 하는 것처럼 택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람이 많이 그리스도 예수로 믿었으나 24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라고 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오히려 당신을 믿고 따르는 무리들을 피하여 간 것은
25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고 하는 것처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역설적으로 반증하려는 이 말이 사실이라면 베드로의 고백을 그렇게 반기는 모습을 비롯하여 복음서의 기록들은 참으로 의미 없고 서로 모순이 됨을 바로 알 때
택한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최고의 종교인 교주가 되길 바라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이 말하고 있는 복음과 천국의 증인으로 세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의 표적을 구하기보다 오히려 그 표적의 옷을 벗으라고 하는 것임에도 오히려 더 입으려고 발악하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소망인 참이고 진리인 영생과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위하여 철학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찾지 못하였고 또 모든 종교는 그 원본인 이데아를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으로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사라질 신기루인 헛되고 헛된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과 천국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하시며
그러나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 보다 보여주시는 모든 도구인 몽학 선생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를 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빈 잔에 영생과 천국을 알 수 있는 성령을 채워줄 뿐 아니라 영생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이 되는 길인 복음으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기 위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나 반대로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이나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그것으로는 절대로 참인 영생을 소유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깨닫도록 주신 지혜인 선악과 즉 몽학 선생으로 바로 깨달아 회개하기보다 오히려 각자의 잔을 가득 채우는 표적으로 삼아 정답을 찾기 위하여 그 자체를 원죄라고 정의하고
에덴 동산에서 퇴출된 후 스스로 영생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에 도덕천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므로 그것이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복음을 가리고 있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임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표적이란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것으로 우상이나 음란이나 악한 것을 비롯하여 갈5장의 성령의 열매나,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요일2장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는 것이 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한편으로 몽학 선생이 되어 복음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역할을 하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종교란 자신의 잔을 채우는 표적으로 도덕천을 구하는 것으로 그 외모는 참으로 멋이고 대단하여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야 하는 올바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루인 헛된 길임을 온 성경을 비롯하여 베드로의 통곡이나 가룟 유다의 자살 등으로 보여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구약은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의 잔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는 길을 주겠다는 것임에도 이를 바로 깨닫기보다 피조물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라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오히려 스스로 그 사실을 반증하게 되었고
회개란 구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움이 절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잔을 완전히 비우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덕천을 따라 잘못된 것만 비우는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란 회개함으로 자신의 잔을 완전히 비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님으로 그 빈 잔을 가득 채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피조물의 잔을 가득 채우신 성령님께서 피조물 스스로 진리와 생명인 영생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게 함으로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신약이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누리고 있으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서로 사랑함이란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누리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있는 길로 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증인이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 신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성령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 회개를 도와줄 뿐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생인 진리와 천국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영으로 이를 요한복음16장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 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령 훼방이란 증인의 삶을 서로 사랑함으로 누리기보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천국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피조물이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그 영생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몸이 말하는 것으로 이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은 구약의 묵시를 따른 십자가의 사건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사건이 있던 없던 어떤 방법이나 모양에 관계없이 인자로 오신 예수가 손가락이 되어 가르치는 복음의 예수인 성령님이 오시면 완성될 뿐 아니라
피조물의 어떠한 수고나 노력을 비롯하여 재물인 희생양이 절대로 필요치 않기에 어떤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지 않고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지금까지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율법을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기도, 예배, 제자, 도덕천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벗으며 온전하게 모두 벗는 천국을 소망하며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