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오늘 묵상하는 고린도후서 12장1~21절 말씀 중에서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허락된 구원이 얼마나 귀하고 충격적인 감동임을 잘 알아 감사하므로 소유하여 누리는 천국의 증인들이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이미 묵상한 것처럼 사도란 칭호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바울 자신의 판단에 따른 주장이고 또 자신의 고백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바울 자신의 하나님 아버지이고 또 복음이 아니라 복음의 몽학 선생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는 것으로 이는 결국 복음이 아니라 예수를 표적으로 하는 종교로 바로 알고 어제 묵상을 다시 정리해보면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는 말에서 어리석음은 스마트함을 능가하는 최고 경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요즘 유행하는 “바보”와 같은 말이지만 이는 복음의 무지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한 심각한 착각으로 정말 바보나 어리석음이 아니면 세상에서 말하는 바보처럼 표적을 구하는 악하고 음란한 것으로 오히려 온전한 복음을 가리는 똥칠로 바로 알 때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는 그림에서
바울의 열심은 결국 똥칠로 중매를 운운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중이 제 머리를 깎을 수 없기에 가능한 말이지만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머리를 깎을 필요가 없다는 온전함을 알지 못한 무지로 바울 자신도 못한 결혼 즉 구원을 타인이 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진짜 바보 같은 어리석음임에도 이런 자신의 주장을 굳세게 펼치는 것은 표적을 구하는 악하고 음란한 생각인 뱀 같은 지혜로 하와를 미혹하듯이 이 세상을 미혹하고 있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하며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 하면서 복음의 무지로 자신의 주장이 참이 아님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주장을 자신처럼 따르지 않는다는 당연한 불가능한 도전을 두고 그들을 질책하며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고 자신의 외모는 부족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 중심은 어느 사도보다 자신이 대단한 최고의 사도라고 복음과 무관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스스로 판단하여 주장하면서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는 진짜 복음의 똥칠을 두고 다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하여 너희들을 위하여 나를 낮추는 어리석은 바보가 된 것이 잘못이고 또 이를 위하여 보여준 그림처럼
연보도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면서 모금하여 너희들처럼 부족한 곳에 사용한 것이 탈취한 것이고, 나를 위하여 사용함으로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조심한 것도 잘못이냐 는 반문은 결국 복음의 무지로 자신의 행위를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하여 정답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고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신이 참임을 거듭 강조하며 그럼에도 너희들이 내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고 질책과 한탄으로 북치고 나팔 불며 “하나님이 아시느니라”고 스스로 복음에 똥칠을 하고 있는 자신의 행위를 정답처럼 합리화 한 후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 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고 분별인 심판의 잣대로 스스로 명분을 세우고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자신만이 참임을 심판까지 사용하여 경고하며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고 하며 내가 이 말을 한다고 어리석은 자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고 하는 것은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는 것처럼 그들의 생각이 바울의 생각과 다르자 또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는 것처럼 그 동안 억지로 온유와 겸손으로 포장하여 숨겨 놓았던 자신의 자랑을 무기로 이 세상의 선생이 되려고 발악하기 위하여 보여준 그림처럼
바울은 자신은 히브리인이요, 이스라엘인이며, 아브라함 후손이며, 그리스도의 일 꾼인 사도로서 누구보다 고난도 많이 받았다는 신앙 간증까지 더하여 스스로 누구보다 대단한 선생인 사도요, 참이라 함에도 만족인 평안은 고사라고 밀려오는 불안과 염려를 극복하기 위하여 발악을 하며 표적을 구하고 있지만
이것이 바로 표적을 구하는 종교의 한계로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는 악하고 음란한 생각으로 온전한 복음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보여주시는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는 말은 스스로 말한 것처럼 복음에는 전혀 무익할 뿐 아니라 오히려 똥칠을 하는 것이 됨에도 자신의 환상과 착각에 의미를 부여함으로 주의 환상과 계시로 착각하여 자신의 주장이 참이라고 미혹하는 것으로 바로 알 때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표적을 구하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는 발악으로 불안하여 날마다 눌리고 있던 바울 자신이 본 환상과 착각에 의미를 부여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여주신 것으로 착각하여 미혹한 것임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며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는 말은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대단히 헌신적인 섬김의 모습으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이 세상에서는 크게 칭송을 받는 대단한 지도자로 추앙 받는 바울처럼 대단한 선생이 되겠지만 그 본질은 복음의 무지에 따른 심각한 착각으로 표적을 구하는 악하고 음란한 생각으로 위선이 됨을 바로 알아야 하고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는 그림처럼
구하고 있는 표적인 종교를 위하여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여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 복음의 무지로 복음과 전혀 무관한 고난이 여호와의 뜻인 것처럼 심각하게 착각하여 미혹함으로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처럼 종교인의 되어야 한다며 온전한 복음에 똥칠하는 불의와 불법으로 복음을 가리고 있음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심각한 착각과 환상으로 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고 스스로 자신의 역할에 의미를 부여할 뿐 아니라 또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고 자화자찬하며
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고 노망이 들거나 자녀에게 실망한 부모들이 그렇게 힘들게 살아 온 것은 다 너를 위해서라고 하는 것처럼 14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고 복음과 무관한 이 세상의 말을하며
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라는 것이 대단한 사랑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구하고 있는 표적을 위하여 오히려 사람들을 도구로 이용한 것임을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고 함으로 너희를 위한다는 명분을 실속을 챙기고 있음을 반증하기에
16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바로 듣고서 깨닫기보다 17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고 심각한 착각에 빠져 오늘날의 세상의 칭송을 받는 대단한 종교 지도자들처럼 복음에 무지한 참담한 헛소리로 본질을 미혹하여
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19 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고
복음의 무지에 따른 심각한 착각으로 불가능에 도전하기 위하여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지만 이는 한치의 앞도 보지 못하는 피조물의 발악임을 그 때는 물론 오늘날 보여주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의 추악한 모습으로 반증하고 있음에도
20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는 것은
피조물 스스로 구하고 있는 표적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악하고 음란한 생각으로 절대 불가능의 도전에 따른 불안과 두려움으로 날마다 눌리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종교인을 비롯하여 정답을 소유하지 못한 이 세상의 모습으로 온전한 복음에 똥칠을 하는 악하고 음란한 생각의 불의와 불법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소망인 참이고 진리인 영생과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위하여 철학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찾지 못하였고 또 모든 종교는 그 원본인 이데아를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으로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사라질 신기루인 헛되고 헛된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과 천국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하시며
그러나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 보다 보여주시는 예수를 비롯하여 모든 도구인 몽학 선생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를 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빈 잔에 영생과 천국을 알 수 있는 성령을 채워줄 뿐 아니라
영생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이 되는 복음으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기 위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나 반대로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이나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그것으로는 절대로 영생을 소유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깨닫도록 주신 지혜인 선악과 즉 몽학 선생으로 바로 깨달아 회개하기보다
오히려 각자의 잔에 찬 것을 표적으로 삼아 잔을 채우는 정답을 찾기 위하여 부족한 그 자체를 원죄라고 정의하고 에덴 동산에서 퇴출된 후 스스로 영생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에 도덕천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므로 그것이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복음을 가리고 있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임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표적이란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것으로 우상이나 음란이나 악한 것을 비롯하여 갈5장의 성령의 열매나,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요일2장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는 것이 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한편으로 몽학 선생이 되어 복음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양면성이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종교란 자신의 잔을 채우는 표적으로 도덕천을 구하는 것으로 그 외모는 참으로 멋이고 대단하여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야 하는 올바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루인 헛된 길임을 온 성경을 비롯하여 베드로의 통곡이나 가룟 유다의 자살 등으로 보여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구약은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의 잔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는 길을 주겠다는 것임에도 이를 바로 깨닫기보다 피조물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라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오히려 스스로 그 사실을 반증하게 되었고
회개란 구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움이 절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잔을 완전히 비우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덕천을 따라 잘못된 것만 비우는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란 회개함으로 자신의 잔을 완전히 비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님으로도 표현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그 빈 잔을 가득 채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피조물의 잔을 가득 채우신 그 무엇인 성령님께서 피조물 스스로 진리와 생명인 영생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게 함으로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신약이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누리므로 타인에게 예수처럼 복음과 증인의 몽학 선생이 되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서로 사랑함이란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있는 길로 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증인이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 신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하므로 타인에게 선생이 아니라 몽학 선생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 회개를 도와 줄뿐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생인 진리와 천국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영으로 이를 요한복음16장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 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령 훼방이란 증인의 삶을 서로 사랑함으로 누리기 보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천국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피조물이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그 영생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복음은 구약의 묵시를 따른 십자가의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처럼 온전함 그 자체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있던 없던 어떤 방법이나 모양에 관계없이 인자로 오신 예수가 복음과 증인의 몽학선생이 되어 가르치는 그 무엇으로만 가능하기에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도 표현할 수 없는 없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어떠한 수고나 노력을 비롯하여 재물인 희생양이 절대로 필요치 않기에 어떤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거나 분별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또 복음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 사함의 회개에 합당한 도덕천을 따른 선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므로 복음으로 복음인 된 새로운 피조물이 하는 일인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합당한 일이 되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지금까지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예수를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율법,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기도, 예배, 제자, 찬양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모두 벗는 천국을 소망하므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표적을 구하므로 성령훼방을 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