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패스라 2012. 6. 15. 09:45

오늘 묵상하는 갈라디아서31~29절 말씀 중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허락된 구원이 얼마나 귀하고 충격적인 감동임을 잘 알아 감사하므로 소유하여 누리는 천국의 증인들이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이미 묵상한 것처럼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이란 그림과는 달리

 

바울의 사도 직은 바울 자신의 고백처럼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닐 뿐 아니라 표적으로 구하고 있는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된 것도 아니고 오직 복음의 무지로 스스로 환상과 착각에 빠져 사도가 된 것으로 이는 선생이 되지 말라는 예수님의 경고를 무시한 것으로 바로 알고 어제 묵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그림은 계속된 바울의 신앙 간증을 통한 설교로 사도행전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복음의 무지로 표적을 구하기 위한 자신의 수고를 헛되지 않도록 한 발악에 의미를 부여하여 하나님의 계시로 미혹하는 것이며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는 그림도

 

사도행전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바울이 구하고 있는 표적을 위하여 필요에 따라 표적을 빙자하여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복음과는 전혀 무관한 것임을 디도와는 달리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한 것으로 반증하고 있음에도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는 그림이나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는 그림도 엿장수 마음처럼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하는 이 세상에는 정답이 너무 많아 결국 정답이 없음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며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는 그림처럼 복음의 무지로 도토리 키 재기를 하듯이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분별하며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라고 자신의 외모를 자랑함으로 스스로 최고임을 주장하는 것처럼

 

복음의 무지로 피조물의 구원을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이라고 할 뿐 아니라 회개를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라고 하고 또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것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라고 착각하여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복음을 도덕천을 따라 외모로 판단하여 표적을 구하는 종교로 미혹한 후 이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 표적을 빙자하여 의롭게 되어야 하는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며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재갈을 물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는 것은 이론만 가능한 절대 불가능의 도전으로

 

이는 스스로 구원인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라고 한 자신의 말과는 달리 온전한 율법의 완성을 요구하는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논리로 결국 복음과 전혀 무관한 헛소리로 내 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하면서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복음의 무지에 따른 심각한 착각을 진짜처럼 미혹하여 세뇌하며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달콤한 헛소리로 재갈을 물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아름답게 포장하여 빙빙 돌려 미혹하고 있는 바울의 말을 정리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는 의미가 바로 율법 안에서 산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따라서 복음에 무지한 바울의 주장은 자유를 준다고 하면서 방종이란 이름으로 자유를 속박하여 이론만 자유를 주고 실제는 속박함으로 자유를 주지 않는 것처럼 이 세상 속으로 가라고 하면서 종교의 옷을 입고 스스로 분별하라는 것은 온전한 복음에 똥칠을 하는 불의와 불법으로 결국 온전한 복음을 소유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보여주신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고 하면서 계속되는 설교도 외모인 도덕천를 따라 판단한 것으로 예수가 복음이 아니라 예수를 부활의 예수를 만든 그 무엇이 복음임을 무르는 무지로 오히려 바울 자신이 어리석게도 온전한 복음에 똥칠을 하고 있음과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는 말도 성령과 권능을 분별하지 못한 복음의 무지에 따른 심각한 착각으로 성령은 율법의 행위나 믿음 등 피조물의 조건이나 자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께서 피조물의 구원을 위하여 온 세상에 충만하게 해 놓았기에 이를 은혜라고 하는 것으로 바로 알 때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는 그림이 엄밀하게 구하고 있는 표적을 위하여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기 위해서일 뿐 복음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는 그림도 회개의 도구로 사용한 구약의 도덕천을 여호와로 착각한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는 그림도 복음의 무지에 따른 심각한 착각으로 의인이든 악인이든 누구라도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영생을 소유하여 사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는 레위기를 빙자한 이 말도 아브람에게 복을 주겠다고 한 것처럼 율법을 준행하면 잘 살게 해 주겠다는 여호와로 착각하고 있는 도덕천의 언약을 스스로 폄하함으로 결국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모순으로 이끌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명기를 빙자한 이 말도 죽을 죄를 지어 나무에 달린 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결국은 율법을 잘 지키라는 것으로 복음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고 함으로 결국 바울의 주장은 도덕천이 약속한 복을 복음으로 착각한 것임을 스스로 반증하고 있음으로 바로 알면

 

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 선생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고 하면서 구약을 빙자하고 미혹하여 열심히 보여주는 그림은 온전한 복음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 오히려 복음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로 바로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믿음이 온 후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리고 언제나 우리 피조물은 몽학 선생 아래에 있은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따라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한 발악으로 도덕천을 만들어 율법 안으로 들어간 것이고 이번에는 바울이 다시 부활의 예수를 복음으로 착각하여 예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도덕천을 만들듯이 예수를 표적으로 만들어 발악하는 것으로 바로 알고

 

이에 우리는 도덕천을 따른 율법이나 복은 물론 아브람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하여 모든 것을 복음을 가르치는 손가락인 도구로 바로 알고 잘 사용할 때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로 영생을 소유하여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서로 사랑함으로 확인하고 누리는 증인을 삶을 행복하고 신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소망인 참이고 진리인 영생과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위하여 철학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찾지 못하였고 또 모든 종교는 그 원본인 이데아를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으로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사라질 신기루인 헛되고 헛된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과 천국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하시며

 

그러나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 보다 보여주시는 예수를 비롯하여 모든 도구인 몽학 선생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를 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빈 잔에 영생과 천국을 알 수 있는 성령을 채워줄 뿐 아니라

 

영생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이 되는 복음으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기 위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나 반대로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이나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그것으로는 절대로 영생을 소유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깨닫도록 주신 지혜인 선악과 즉 몽학 선생으로 바로 깨달아 회개하기보다

 

오히려 각자의 잔에 찬 것을 표적으로 삼아 잔을 채우는 정답을 찾기 위하여 부족한 그 자체를 원죄라고 정의하고 에덴 동산에서 퇴출된 후 스스로 영생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에 도덕천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므로 그것이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복음을 가리고 있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임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표적이란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것으로 우상이나 음란이나 악한 것을 비롯하여 갈5장의 성령의 열매나,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요일2장의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는 것이 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한편으로 몽학 선생이 되어 복음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양면성이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종교란 자신의 잔을 채우는 표적으로 도덕천을 구하는 것으로 그 외모는 참으로 멋이고 대단하여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야 하는 올바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루인 헛된 길임을 온 성경을 비롯하여 베드로의 통곡이나 가룟 유다의 자살 등으로 보여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구약은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의 잔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는 길을 주겠다는 것임에도 이를 바로 깨닫기보다 피조물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라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오히려 스스로 그 사실을 반증하게 되었고

 

회개란 구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움이 절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잔을 완전히 비우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덕천을 따라 잘못된 것만 비우는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란 회개함으로 자신의 잔을 완전히 비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님으로도 표현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그 빈 잔을 가득 채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피조물의 잔을 가득 채우신 그 무엇인 성령님께서 피조물 스스로 진리와 생명인 영생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게 함으로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신약이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누리므로 타인에게 예수처럼 복음과 증인의 몽학 선생이 되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서로 사랑함이란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있는 길로 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증인이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 신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하므로 타인에게 선생이 아니라 몽학 선생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 회개를 도와 줄뿐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생인 진리와 천국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영으로 이를 요한복음16장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 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령 훼방이란 증인의 삶을 서로 사랑함으로 누리기 보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천국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피조물이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그 영생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복음은 구약의 묵시를 따른 십자가의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처럼 온전함 그 자체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있던 없던 어떤 방법이나 모양에 관계없이 인자로 오신 예수가 복음과 증인의 몽학선생이 되어 가르치는 그 무엇으로만 가능하기에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도 표현할 수 없는 없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어떠한 수고나 노력을 비롯하여 재물인 희생양이 절대로 필요치 않기에 어떤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거나 분별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또 복음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 사함의 회개에 합당한 도덕천을 따른 선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므로 복음으로 복음인 된 새로운 피조물이 하는 일인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합당한 일이 되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지금까지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예수를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율법,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기도, 예배, 제자, 찬양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모두 벗는 천국을 소망하므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표적을 구하므로 성령훼방을 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