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오늘 묵상하는 빌립보서 4장1~23절 말씀 중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허락된 구원이 얼마나 귀하고 충격적인 감동임을 잘 알아 감사하므로 소유하여 누리는 천국의 증인들이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이미 묵상한 것처럼 복음의 무지로 바울 스스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예수의 종이 되어 여호와로 착각한 도덕천과 표적인 예수의 은혜로 인한 평강을 비는 것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가 아니라 신기루인 이 세상이 주겠다는 불완전한 평안인 구속으로 결국 온전한 복음을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바로 알고 어제 묵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는 그림처럼 주 안에서 기뻐하기 위하여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것이란 그림이 바로
복음의 무지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표적을 구하기 위하여 고정된 죽은 길로가는 이론만 가능한 절대 불가능의 도전으로 온전한 복음에 똥칠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우리가 곧 할례파라”고 정답처럼 제시하는 것이 종교요 선생으로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반하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로 바로 알 때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는 그림처럼 바울 스스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너무나 자랑스럽고 대단한 자신의 자랑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는 그림처럼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표적을 구하기 위하여 잠시 접어두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극도의 교만이 됨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는 그림처럼 복음의 무지로 스스로 착각하여 바울이 말하는 의는 표적과 도덕천인 율법에서 난 것임에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미혹할 뿐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라고 예수님의 말씀 따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복음으로 착각하여 부활의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여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발악을 하고 있지만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는 그림처럼 바울 스스로 그것인 복음을 소유한 증인이 아니라 이론만 가지고 표적을 향하여 달려가는 자임을 고백해 놓고는 다시 스스로를 속이며 이 세상의 방법대로 자신의 이론에 따른 선생이 되기 위하여
이미 잡은 것처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는 그림처럼 복음의 무지로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것을 스스로 착각하여 부름의 상 이라고 미혹함으로 결국 스스로를 속이며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는 그림처럼 예수 믿는 자 또는 교회 다니는 자처럼 참으로 황당한 쇼인 우리 온전히 이룬 자란 벌거숭이 임금님 그룹인 바울교를 만들기 위하여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는 그림처럼 표적으로 구하던 예수를 빙자하여 자신을 본 받으라고 선생을 넘어 스스로 표적이 될 뿐 아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는 그림처럼 복음의 무지로 복음을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하여 심판으로 협박하고 천국 시민권이란 달콤함으로 유혹하여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는 그림처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됨으로 우리 피조물에게 복음의 증인이요 최고의 몽학 선생이 된 예수를 바울 자신의 지혜인 외모로 분별하여 자기처럼 스스로를 속이는 극도의 교만을 겸손으로 미혹하여 찬양하며 심판 자로 미혹하는 것은 온전한 복음을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보여주시는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는 그림은 구하고 있는 표적인 예수를 빙자하여 바울 자신이 구하는 표적을 위하여 바울 자신을 표적으로 구하며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여호와가 아니라 바울 자신이 사랑하고 사모하는 기쁨이요 면류관으로 결국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신기루를 쫓는 것으로 온전한 복음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바로 알 때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고 하면서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는 그림은 복음과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주장에 대한 명분을 위하여 진짜 생명책이 아니라 바울 스스로 표적과 심판관과 선생이 된 그들의 희망사항인 신기루 생명책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고 하면서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는 그림도 복음의 무지에 따른 절대 불가능의 도전으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것일 뿐 온전한 복음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오히려 복음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로 바로 알아야 하고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는 그림도 복음의 무지로 복음을 외모인 도덕천으로 판단하여 표적으로 구하는 것으로 종교를 위한 것일 뿐 복음과는 전혀 무관한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가리는 심각한 악취의 똥칠로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새로운 생명체가 되듯이 서로 하나가 되어 온전한 새로온 피조물인 복음이 됨으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이 세상의 어떠한 조건에도 상관없이 언제나 온전한 영생을 소유함으로 신기루인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편안인 자유를 누리는 것이고
종교는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최고의 조건을 갖춘 표적을 구하여 그 표적에 자신을 의탁하기 위하여 이 세상이 주는 평안인 불안과 자유가 아닌 구속으로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무지로 복음을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하여 복음과 무관하게 죄와 의, 선과 악으로 분별하여 살아있는 길이 아니라 고정된 죽은 길로 안내함으로 결국 온전한 복음을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바로 알지 못하고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는 그림처럼 복음의 장님이 복음인 영생의 길이 아니라 벼랑 끝으로 길을 안내하며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는 그림은 불나비 사랑을 진짜 사랑으로 착각한 것임을 지금의 교회 모습이 스스로 반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만족에 불안한 기쁨인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신기루인 이 세상의 인기와 성공을 참인 것처럼 미혹하여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고 복음의 무지로 복음을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하여 똥칠을 하며
피조물이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됨으로 온전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복음의 무지로 복음을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하여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복음에 똥칠을 하는 불의와 불법의 나팔과 꽹과리 소리를 울릴 뿐 아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는 그림처럼 스스로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위하여 표적을 구하려고 자초한 고난임을 고백해 놓고 회개하기보다 오히려 복음의 무지로 자신을 자랑하며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잘하였다고 하면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의미를 부여하려고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는 그림처럼
여호와로 착각한 도덕천과 표적인 예수를 빙자하여 복음과는 전혀 무관한 온갖 달콤한 감언이설로 유혹하고 미혹하여 바울 자신을 표적으로 구하게 함으로 종교가 되어 지금의 교회와 기독교는 외모는 기독교인데 조금만 깊게 고민하면 바울교임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창세기 1장1절에서부터 이어진 여호와 뜻인 복음의 온전함을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하여 기록한 성경의 무흠 함으로 착각하여 비명소리 조차 제대로 한번 내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모두가 불나비 사랑을 하도록 온전한 복음에 불의와 불법의 똥칠인 나팔과 꽹과리 소리로 미혹하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소망인 참이고 진리인 영생과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위하여 철학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찾지 못하였고 또 모든 종교는 그 원본인 이데아를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으로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사라질 신기루인 헛되고 헛된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과 천국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하시며
이런 사실을 바로 깨달아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그리스도 예수를 비롯하여 모든 도구인 몽학 선생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를 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여호와께서 그 빈 우리의 잔에 영생과 천국을 깨달아 소유할 수 있는 성령을 채워줄 뿐 아니라 영생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이 되는 복음으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고 하시며
이를 위하여 우리 피조물이 해야 할 것은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나 반대로 너무나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을 비롯하여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이를 비우는 회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깨닫도록 주신 지혜인 선악과 즉 몽학 선생으로 바로 깨달아 회개를 하기보다 오히려 각자의 잔에 찬 것을 표적으로 삼아 자신의 잔을 채우는 정답을 찾기 위하여 발악한 그 자체를 원죄라고 정의할 뿐 아니라
에덴 동산에서 퇴출된 후 자유의지를 따라 스스로 영생인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에 도덕천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몽학 선생을 표적으로 구하므로 그것이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복음을 가리고 있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임으로 바로 알 때
표적은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것으로 우상이나 음란이나 악한 것을 비롯하여 갈5장의 성령의 열매나,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요일2장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는 것이 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한편으로 몽학 선생이 되어 복음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양면성이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종교란 자신의 잔을 채우는 표적으로 도덕천을 구하는 것으로 그 외모는 참으로 멋이고 대단하여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야 하는 올바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루인 헛된 길임을 온 성경을 비롯하여 베드로의 통곡이나 가룟 유다의 자살 등으로 보여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구약은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의 잔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는 길을 주겠다는 것임에도 이를 바로 깨닫기보다 피조물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라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오히려 피조물 스스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의 도전임을 스스로 반증하게 되었고
회개란 구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움이 절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잔을 완전히 비우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덕천을 따라 잘못된 것만 비우는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란 회개함으로 자신의 잔을 완전히 비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인 살아있는 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님으로도 표현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그 빈 잔을 가득 채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피조물의 잔을 가득 채우신 그 무엇인 성령님께서 피조물 스스로 진리와 생명인 영생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게 함으로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신약이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누리므로 타인에게 예수처럼 복음의 증인과 몽학 선생이 되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서로 사랑함이란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있는 길로 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증인이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 신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하므로 타인에게 선생이 아니라 몽학 선생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 회개를 도와 줄뿐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생인 진리와 천국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영으로 이를 요한복음16장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 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령 훼방이란 증인의 삶을 서로 사랑함으로 누리기 보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천국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피조물이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그 영생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복음은 구약의 묵시를 따른 십자가의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처럼 온전함 그 자체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있던 없던 어떤 방법이나 모양에 관계없이 그리스도 예수가 복음의 증인과 몽학 선생이 되어 가르치는 그 무엇으로만 가능하기에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도 표현할 수 없는 없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어떠한 수고나 노력을 비롯하여 재물인 희생양이 절대로 필요치 않기에 어떤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거나 분별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또 복음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 사함의 회개에 합당한 도덕천을 따른 선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므로 복음으로 복음인 된 새로운 피조물이 하는 일인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합당한 일이 되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지금까지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예수를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율법,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기도, 예배, 제자, 찬양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모두 벗는 천국을 소망하므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표적을 구하므로 성령훼방을 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