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오늘 묵상하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1~28절 말씀 중에서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회개하고 복음으로 구원받아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아깝거나 후회하기보다 너무나 감사하고 귀중한 절대 불가능을 통과한 충격적인 변화요 감동임을 잘 알아
그렇게 됨으로 소유한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행복하게 확인하고 신나게 누리기 위하여 서로 발을 씻기며 서로 사랑함으로 살아가는 구원받은 천국 증인들이 어떻게 이 신기루인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주체가 바울 혼자에서 바울을 표적으로 구하는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늘어난 것 외에는 우리들이 이미 묵상한 것처럼 복음의 무지로 바울 스스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예수를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따라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예수의 종이 되어 여호와로 착각한 도덕천과 표적인 예수의 은혜에 평강을 비는 것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가 아니라 신기루인 이 세상이 도덕천을 따라 주겠다는 불완전한 평안인 구속임에도 복음의 무지로 착각하여 스스로를 속이며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바울 자신을 표적으로 구하게 함으로 결국 온전한 복음을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바로 알고 어제 묵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는 그림은 복음이 아니라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표적을 구하는 바울 자신이 주장하는 종교를 따르라는 유혹이요 협박으로 바로 알 때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는 그림처럼 복음의 증인이요 최고 몽학 선생인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며 그 예수를 빙자하여 했다는 명령을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라고 하므로 정말 여호와의 명령이요 뜻인 복음으로 미혹하여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는 그림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됨으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는 자유로 여호와의 뜻인 복음이 아니라 율법 즉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이 세상이 주겠다는 평안인 이 세상을 위한 끝없는 불안과 속박으로 결국 표적인 예수의 종이 되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는 그림처럼 복음의 무지로 본적이 없을 용을 상상으로 그려 용이라고 하듯이 스스로 만들어 부르고 있는 하나님을 여호와로 착각하여 미혹함으로 바울 자신의 주장을 하나님의 뜻인 복음이라고 억지를 부리므로 복음에 똥칠을 하는 것일 뿐 아니라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는 그림처럼 복음의 무지로 중심이 아니라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멋대로 판단함으로 결국 자신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하여 긍정의 힘이란 나팔과 꽹과리 소리에 스스로 착각하여 미혹 됨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불가능에 도전하며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는 그림처럼 칭찬이란 유혹으로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는 것은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는 그림처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됨으로 소유하는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가 아니라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주변으로부터 인정받는 평안인 불안이요 속박으로 결국 온전한 복음에 똥칠을 하는 짓임에도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그림처럼 자신이 상상하는 용을 그리듯이 스스로 복음을 소유하기보다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복음을 상상하여 물이 포도주가 되는 변화인 복음을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는 그림처럼 부활이라고 착각하여 미혹됨으로 스스로 착각에 빠져 표적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을 속이며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는 그림처럼
복음의 무지로 온전한 복음에 똥칠을 하는 불의와 불법인 자신의 주장을 위하여 나팔과 꽹과리 소리를 더 크게 울리듯이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답을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에 용을 그리듯이 바울 자신도 소유하지 못한 상상의 복음을 그려줌으로
진짜 용을 찾기보다 멋있게 그려진 용을 표적으로 구하게 하는 것처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기보다 그려진 복음을 표적으로 구하기 때문에 만약 용이 존재 한다면 실존의 용을 만날 기회를 그려진 용이 박탈하고 있는 것처럼
복음은 증인인 예수가 있기에 만약이 아니라 실존하는 복음이 분명하므로 반드시 만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날 기회를 가로막아 박탈하고 있는 복음을 표적으로 구하는 종교인 선생들의 불의와 불법의 똥칠에서 빨리 벗어나는 회개가 바로 복음을 만나는 구원의 시작이요 완성의 핵심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보여주시는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사도행전에서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 말씀의 의미는 각자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말하는 것임에도 이를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하여 종말인 심판의 때와 시기로 착각하여 미혹하는 똥칠로 바로 알 때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는 그림은 복음과 전혀 무관한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나팔과 꽹과리 소리의 불의와 불법으로 온전한 복음을 가리는 똥칠임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고 하면서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는 그림은
어느 누구도 본적은 없지만 외모를 보면 누구나 진짜처럼 느껴지게 멋있게 용을 그리듯이 복음을 소유하지 못한 무지로 자신이 추구하는 야망과 욕망을 위하여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복음의 증인이요 최고 몽학 선생인 예수를 복음이라고 착각하여
표적으로 구하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명분과 자신의 불안에 대한 확신을 위하여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려고 달콤한 유혹으로 재갈을 물리는 불의와 불법으로 온전한 복음을 가리는 나팔과 꽹과리 소리의 똥칠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소망인 참이고 진리인 영생과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위하여 철학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찾지 못하였고 또 모든 종교는 그 원본인 이데아를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으로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사라질 신기루인 헛되고 헛된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과 천국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하시며
이런 사실을 바로 깨달아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그리스도 예수를 비롯하여 모든 도구인 몽학 선생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인 자기를 부인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여호와께서 그렇게 회개함으로 빈 우리의 잔에 영생과 천국을 깨달아 소유할 수 있는 성령을 채워주실 뿐 아니라 영생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이 되는 복음으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고 하시며
이를 위하여 우리 피조물이 해야 할 것은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며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나 반대로 너무나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을 비롯하여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이를 비우는 회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깨닫도록 주신 자유의지와 지혜인 선악과 즉 몽학 선생으로 바로 깨달아 회개를 하기보다 오히려 각자의 잔에 찬 것을 표적으로 삼아 자신의 잔을 채우는 정답을 찾기 위하여 발악한 그 자체를 원죄라고 엉터리 정의를 할 뿐 아니라
에덴 동산에서 퇴출된 후 자유의지를 따라 스스로 영생인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에 도덕천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몽학 선생을 표적으로 구하므로 그것이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복음을 가리고 있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임으로 바로 알 때
표적은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것으로 우상이나 음란이나 악한 것을 비롯하여 갈5장의 성령의 열매나,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요일2장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는 것이 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한편으로 몽학 선생이 되어 복음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양면성이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종교란 자신의 잔을 채우는 표적으로 도덕천을 구하는 것으로 그 외모는 참으로 멋이고 대단하여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야 하는 올바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루인 헛된 길임을 온 성경을 비롯하여 베드로의 통곡이나 가룟 유다의 자살 등으로 보여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구약은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의 잔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는 길을 주겠다는 것임에도 이를 바로 깨닫기보다 피조물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라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오히려 피조물 스스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의 도전임을 스스로 반증하게 되었고
회개란 구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움이 절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잔을 완전히 비우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덕천을 따라 잘못된 것만 비우는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란 회개함으로 자신의 잔을 완전히 비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인 살아있는 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님으로도 표현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그 빈 잔을 가득 채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피조물의 잔을 가득 채우신 그 무엇인 성령님께서 피조물 스스로 진리와 생명인 영생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게 함으로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신약이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누리므로 타인에게 예수처럼 복음의 증인과 몽학 선생이 되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서로 사랑함이란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있는 길로 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증인이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 신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하므로 타인에게 선생이 아니라 몽학 선생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 회개를 도와 줄뿐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생인 진리와 천국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영으로 이를 요한복음16장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 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령 훼방이란 증인의 삶을 서로 사랑함으로 누리기 보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천국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피조물이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그 영생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복음은 구약의 묵시를 따른 십자가의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처럼 온전함 그 자체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있던 없던 어떤 방법이나 모양에 관계없이 그리스도 예수가 복음의 증인과 몽학 선생이 되어 가르치는 그 무엇으로만 가능하기에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도 표현할 수 없는 없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어떠한 수고나 노력을 비롯하여 재물인 희생양이 절대로 필요치 않기에 어떤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거나 분별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또 복음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 사함의 회개에 합당한 도덕천을 따른 선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므로 복음으로 복음인 된 새로운 피조물이 하는 일인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합당한 일이 되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지금까지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예수를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율법,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기도, 예배, 제자, 찬양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모두 벗는 천국을 소망하므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표적을 구하므로 성령훼방을 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