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패스라 2012. 7. 10. 09:18

오늘 묵상하는 데살로니가후서 31~18절 말씀 중에서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회개하고 복음으로 구원받아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아깝거나 후회하기보다 너무나 감사하고 귀중한 절대 불가능을 통과한 충격적인 변화요 감동임을 잘 알아 

 

그렇게 됨으로 소유한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행복하게 확인하고 신나게 누리기 위하여 서로 발을 씻기며 서로 사랑함으로 살아가는 구원받은 천국 증인들이 어떻게 이 신기루인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주체가 바울 혼자에서 바울을 표적으로 구하는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늘어난 것 외에는 우리들이 이미 묵상한 것처럼 복음의 무지로 바울 스스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예수를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따라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예수의 종이 되어 여호와로 착각한 도덕천과 표적인 예수의 은혜에 평강을 비는 것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가 아니라 신기루인 이 세상이 도덕천을 따라 주겠다는 불완전한 평안인 구속임에도 복음의 무지로 착각하여 스스로를 속이며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바울 자신을 표적으로 구하게 함으로 결국 온전한 복음을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바로 알고 어제 묵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복음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 구하는 표적인 종교를 위하여 바울 자신이 그린 용인 바울이 생각하는 복음 안에 가두기 위한 불의와 불법으로 결국 온전한 복음을 가리는 똥칠로 바로 알 때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복음을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하여 욥과 친구들처럼 스스로 증인이 아니라 최고 선생이 되기 위하여 발악함으로 일어나는 당연히 이 세상의 일상에 의미를 부여함으로 복음에 똥칠하는 것이고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는 그림이나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그림도

 

복음의 무지로 여호와로 착각한 대단하게 보이는 도덕천으로 출발하여 그 도덕천의 이름으로 성공한 후에는 다시 도덕천을 부인하게 될 뿐 아니라 그 성공을 위하여 도덕천의 이름으로 도덕천을 부인한 즉 스스로 속인 것이 도덕천으로 다시 드러나게 되는 당연한 이 세상의 일상에 용을 그리듯이 바울이 구하고 있는 표적을 따라 그린 바울이 생각한 복음인 종교를 위하여 의미를 부여함으로 복음에 똥칠하는 것이고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그림이나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바울이 그린 용인 즉 바울이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하여 그린 복음인 종교를 위하여 여호와로 착각한 도덕천과 복음의 증인을 표적으로 구하는 예수를 빙자한 달콤한 유혹으로 결국 온전한 복음인 여호와의 사역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로 됨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보여주시는 1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2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교묘하게 바울이 그린 용인 즉 복음을 표적으로 구하고 있는 자신의 종교를 진짜 복음으로 미혹하는 것으로 이 그림의 진짜 의미는 너희들도 우리처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 승리하라는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는 것으로 바로 알 때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바울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위하여 스스로를 속이며 자신이 주장하는 종교를 따르는 자들을 분별하여 달콤한 유혹으로 미혹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4 너희에게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는 그림은 

 

우리 인생의 정답인 궁극적인 목적과 사명이 아니라 도덕천을 따라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하는 선생이 되어 오히려 본질인 정답을 가리는 똥칠을 하는 불교방송의 즉문즉설처럼 복음을 표적으로 구하는 자신의 주장인 야망과 욕망인 종교를 위하여 스스로를 속이며 타인인 그들을 위한 것처럼 칭찬이란 달콤한 유혹인 긍정의 힘으로 결국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함으로 정답인 복음을 가리는 똥칠을 하는 불의와 불법이고

 

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는 그림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됨으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이 자유를 누리는 증인이 아니라 도덕천을 따라 이 세상이 주는 평안을 누리기 위하여 최고의 선생이 되려고 자신의 부족함과 갈급함을 채우려는 불가능의 도전인 발악을 복음의 무지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하여 자랑하는 참으로 민망한 모습임에도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는 그림처럼

 

오히려 자신을 표적으로 구하라고 미혹하여 결국 그들이 아니라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바울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채우려고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며 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고 재갈을 물리는 것은

 

복음의 무지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선악을 분별하여 스스로 선의 선생으로 착각하여 스스로를 속이며 오히려 환난 속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이는 맹인이 맹인을 길을 인도하는 것처럼 복음과 전혀 무관할 뿐 아니라 복음을 가리는 똥칠이 됨에도 불구하고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 는 그림이 바로 종교인의 모습으로 겉과 속이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포장하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다 가끔은 그렇게 된 것으로 착각 속에 빠져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도덕천이 그것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반증해 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 때

 

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 17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 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는 그림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기 위한 주문일 뿐 아니라 스스로 선생이 되기 위한 발악으로 복음과는 전혀 무관한 불의와 불법의 똥칠로 결국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을 누리기 위하여 서로 사랑함으로 증인이 되는 것을 주변에 구원의 소망을 주지만

 

정답이 아니라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좀더 멋있고 대단하게 보이는 용을 그리듯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런 또 하나의 길을 만든 선생이 되어 표적을 구하게 하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환난 속으로 인도하는 악하고 음란한 불의와 불법으로 온전한 복음을 가리는 똥칠이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소망인 참이고 진리인 영생과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위하여 철학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찾지 못하였고 또 모든 종교는 그 원본인 이데아를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으로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사라질 신기루인 헛되고 헛된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과 천국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하시며

 

이런 사실을 바로 깨달아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그리스도 예수를 비롯하여 모든 도구인 몽학 선생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인 자기를 부인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여호와께서 그렇게 회개함으로 빈 우리의 잔에 영생과 천국을 깨달아 소유할 수 있는 성령을 채워주실 뿐 아니라 영생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이 되는 복음으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고 하시며

 

이를 위하여 우리 피조물이 해야 할 것은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며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나 반대로 너무나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을 비롯하여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이를 비우는 회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깨닫도록 주신 자유의지와 지혜인 선악과 즉 몽학 선생으로 바로 깨달아 회개를 하기보다 오히려 각자의 잔에 찬 것을 표적으로 삼아 자신의 잔을 채우는 정답을 찾기 위하여 발악한 그 자체를 원죄라고 엉터리 정의를 할 뿐 아니라

 

에덴 동산에서 퇴출된 후 자유의지를 따라 스스로 영생인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에 도덕천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몽학 선생을 표적으로 구하므로 그것이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복음을 가리고 있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임으로 바로 알 때

 

표적은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것으로 우상이나 음란이나 악한 것을 비롯하여 갈5장의 성령의 열매나,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요일2장의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는 것이 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한편으로 몽학 선생이 되어 복음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양면성이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종교란 자신의 잔을 채우는 표적으로 도덕천을 구하는 것으로 그 외모는 참으로 멋이고 대단하여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야 하는 올바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루인 헛된 길임을 온 성경을 비롯하여 베드로의 통곡이나 가룟 유다의 자살 등으로 보여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구약은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의 잔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는 길을 주겠다는 것임에도 이를 바로 깨닫기보다 피조물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라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오히려 피조물 스스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의 도전임을 스스로 반증하게 되었고

 

회개란 구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움이 절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잔을 완전히 비우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덕천을 따라 잘못된 것만 비우는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란 회개함으로 자신의 잔을 완전히 비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인 살아있는 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님으로도 표현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그 빈 잔을 가득 채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피조물의 잔을 가득 채우신 그 무엇인 성령님께서 피조물 스스로 진리와 생명인 영생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게 함으로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신약이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누리므로 타인에게 예수처럼 복음의 증인과 몽학 선생이 되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서로 사랑함이란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있는 길로 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증인이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 신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하므로 타인에게 선생이 아니라 몽학 선생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 회개를 도와 줄뿐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생인 진리와 천국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영으로 이를 요한복음16장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 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령 훼방이란 증인의 삶을 서로 사랑함으로 누리기 보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천국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피조물이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그 영생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복음은 구약의 묵시를 따른 십자가의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처럼 온전함 그 자체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있던 없던 어떤 방법이나 모양에 관계없이 그리스도 예수가 복음의 증인과 몽학 선생이 되어 가르치는 그 무엇으로만 가능하기에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도 표현할 수 없는 없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어떠한 수고나 노력을 비롯하여 재물인 희생양이 절대로 필요치 않기에 어떤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거나 분별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또 복음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 사함의 회개에 합당한 도덕천을 따른 선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므로 복음으로 복음인 된 새로운 피조물이 하는 일인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합당한 일이 되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지금까지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예수를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율법,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기도, 예배, 제자, 찬양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모두 벗는 천국을 소망하므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표적을 구하므로 성령훼방을 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