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바울이 디모데전서 2장에서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고 재갈을 물리며
그 이유로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논리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성적인 남자와 감성적인 여자를 분별하여 남자에게는 사랑으로 다스림을 여자에게 그 다스림에 순종함으로 사랑을 갈망하게 하는 것은 정말 창조주인 여호와의 뜻일까?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를 신랑으로 묘사하고 우리 피조물을 신부로 묘사하여 사랑의 다스림과 순종으로 사랑을 갈망하게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로 아닐 뿐 아니라 복음의 무지로 자신의 부족함과 불안함을 감추기 위하여 스스로를 속이며 온전하신 여호와와 그 사역인 복음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상들이나 교육의 현장이 반증하고 있는 것처럼 도덕천의 이름으로 똥칠을 한 사람들보다 부족인 이성으로 똥칠을 한 그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 대단한 이성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여 똥칠을 닦아내자
모두가 말세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 피조물이 그 동안 절대 금기 사항으로 쌓아 놓은 모든 것들이 여지 없이 하나씩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단한 이성을 가진 종교의 지도자들이 용을 그리듯이 소유하지 못한 진리인 복음을 그려 지금 같은 무질서를 가능한 한 막고 정답을 찾지 못한 자신의 부족함에 따른 불안을 외모인 안정됨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모습과 세상의 칭송으로 위로를 받기 위하여 그렇게 불의와 불법을 자행한 것이다.
그럼 무엇이 정답일까?
똥칠을 닦아내니 무질서의 혼돈이고 똥칠을 하면 안정된 모습처럼 보이겠으나 진짜 안정된 모습이 아닐 뿐 아니라 끝없이 똥칠을 하는 불의와 불법의 교육과 열녀 등의 이름으로 희생의 재물을 끝없이 드려야 하니 둘 다 정답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바울을 비롯하여 도덕천을 따라 대단한 표적을 구하는 철학자나 종교인들의 주장은 예수님의 말처럼 악하고 음란한 생각으로 바로 알 때
온전한 여호와의 온전한 복음이란 최고의 이성과 최고의 감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각자 살아있는 길로 가는 것으로 똥칠로 길을 만들지 않아도 절대로 무질서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누구에게 길을 안내하는 선생이 될 수도 될 필요도 없고 항상 행복한 자신의 길로 다니므로 이성이든지 감성이든지 근심 걱정을 비롯하여 눈물이나 한숨이 전혀 없는 천국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멋진 천국은 피조물 스스로의 노력이나 대단한 선생의 도움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부인하는 회개로 복음으로만 가능함을 분명하게 바로 알고
부부나 자녀를 비롯하여 주변의 누구에게나 선생이나 심판관이 되려고 악을 발하기보다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어 서로 사랑함으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 구원받은 새로운 피조물의 목적이요 사명으로 증인이 되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