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패스라 2012. 7. 30. 09:42

오늘 묵상하는 히브리서 61~20절 말씀 중에서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회개하고 복음으로 구원받아 복음으로 복음이 되므로 신기루 피조물에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아깝거나 후회하기보다 너무나 감사한 절대 불가능의 과정을 통과한 충격적인 변화요 감동임을 잘 알아 

 

그렇게 됨으로 여호와께서 주신 자유의지인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를 이루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확인하고 신나게 누리는 행복한 삶을 위하여 서로 발을 씻기며 서로 사랑하는 구원받은 천국증인들이 어떻게 신기루인 이세상을 살아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이미 묵상한 것처럼 복음의 무지로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기보다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이성으로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 영생을 소유하기 위하여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며 스스로 예수의 종이 되어 여호와로 착각한 도덕천과 표적인 예수의 은혜에 복과 평강을 비는 것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가 아니라 신기루인 이 세상이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주겠다는 신기루 평안인 불안과 구속임에도 복음의 무지로 복으로 착각하여 스스로를 속이며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표적을 구하게 함으로 초대 이단인 초대 교회가 되어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이성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순종에 걸림돌이 되는 여호와께서 주신 자유의지인 감성을 소멸하려고 불가능에 도전함으로 결국 온전한 복음을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바로 알고 어제 묵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대제사장도 그 근본이 사람으로 자격이 합당하여 제사장의 직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한다는 것으로 이성적으로 보면 자격이 미달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은혜를 베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 같지만

 

그 본질은 지금까지의 제사는 자격이 미달된 제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받아 주었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제사가 아님에도 제사인 것처럼 쇼를 한 것으로 이는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속인 것에 분노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제사를 받은 하나님은 온전하신 여호와가 아니라 스스로 만든 나의 하나님인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임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으로 바로 알 때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라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그리스도 예수가 대제사장이 된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만약 설명처럼 하나님의 아들로 충분한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정녀에게 성령으로 잉태하는 쇼를 하는 것처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쇼를 하고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는 그림처럼 이치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그 쇼의 명분을 위하여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는 그림을

 

이성적으로 보면 참으로 합당한 것 같지만 문제는 천지 창조의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위에서 요구하는 온전한 순종으로 구원을 받은 자가 없는 절대불가능의 도전으로 이론만 가능한 신기루 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무지로 회개하기보다 자신의 이성으로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회개하고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복음의 증인인 예수를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하여 표적으로 구하게 함으로 온전한 복음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을 알지 못하고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는 그림처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회개하고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지 못하여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신을 깨닫기보다 사람들이 용을 그리듯이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는 그림처럼

 

복음의 무지로 회개하고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여호와께서 주신 자유의지인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를 이루며 서로 사랑함으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는 증인이 되기보다

 

신기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이성으로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방해가 되는 여호와께서 주신 자유의지인 감성을 선악으로 분별하여 소멸하려는 불가능의 도전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구원도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으로 똥칠을 하는 나팔과 꽹과리 소리가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보여주시는 1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린다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여 이단이 된다는 것이고, 회개의 본질은 자신을 부인하는 것임에도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으로 미혹하여 말하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여호와의 사역인 복음이 아니라 여호와로 착각한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구하고 있는 표적에 대한 신뢰인 믿음을 말하는 것으로

 

결국 주장하고 있는 세례들이나, 안수, 부활, 심판은 표적을 구하는 종교의 도구인 의식이지 복음과는 전혀 무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에도 불구하고 나팔과 꽹과리 소리로 참인 본질처럼 미혹하여 강요하면서

 

3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고 함으로 결국 구원의 주체는 그것의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으로 이는 그것을 행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허락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이기에 스스로 자신들의 주장이 문제 있음을 반증하는 것일 뿐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됨으로 스스로 온전해 지는 복음이 아니라 복음을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으로 판단하여 표적을 구하는 악하고 음란한 짓으로 이단이 됨으로 바로 알 때

 

4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는 그림은

 

바울 스스로 환상과 착각에 빠져 표적을 구하는 대단한 종교인 되어 자유를 누리기 보다 불안해 하는 모습에 오히려 의미를 부여하여 미혹하는 것으로 일곱 번에 칠 십 번까지 용서하라는 하나님이 당신을 두 번 못박는다고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다는 주장은 참으로 웃기고 황당한 주장으로 결국 말하는 하나님은 공의와 평등의 여호와가 아니라 너무나 부족한 신기루 도덕천임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고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는 그림도 복음의 무지로 표적을 구하기 위하여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의 잣대로 심판을 빙자하여 위협하고 협박하는 참담한 엉터리 불의와 불법이기에 이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는 그림처럼

 

스스로 대단한 선생인 심판자가 되어 자신들이 구하고 이는 표적인 종교가 정답처럼 실제로는 불의하지만 불의하지 않음으로 착각한 나의 하나님인 도덕천을 빙자하여 온전한 복음에 똥칠을 하여 미혹하는 것이고

 

11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는 그림은 복음과 무관한 자신들의 야망과 욕망을 따라 사람들이 용을 그리듯이 표적을 구하는 이단인 자신들의 종교를 위한 자신들의 바램으로 이를 위하여

 

13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고 하지만

 

그림에서 말하는 약속인 복은 여호와의 뜻인 복음이 아니라 신기루인 이 세상을 위한 신기루 복으로 결국 약속의 주체가 여호와가 아니라 이성을 따라 스스로 구원을 이룸에 방해가 되는 감성을 소멸하기 위하여 만든 나의 하나님인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임에도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여 여호와로 착각하여 미혹하며

 

16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는 그림처럼 복음의 무지로 이성적인 맹세의 명분으로 맹세를 한 나의 하나님인 신기루 도덕천을 여호와로 미혹하여 믿음을 강요함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따라 자신들이 말하는 표적만을 구하도록 미혹하여 강요하기 위하여

 

18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는 그림처럼

 

복음의 무지로 이성적으로 보면 여호와로 착각한 나의 하나님인 신기루 도덕천의 약속과 명세로 대단한 명분을 세워 복음의 증인인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착각하여 미혹하고 있지만

 

이는 온전함을 모르는 무지로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이성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약속과 명세가 너무나 대단한 것으로 절대적인 효력을 담보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말하는 하나님이 온전하신 여호와이시면 약속과 명세를 할 이유나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기에

 

결국 약속과 명세를 했다는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온전하신 여호와가 아니라 절대 온전할 수 없는 신기루 도덕천인 나의 하나님이기에 이런 주장은 온전한 복음으로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로 복음이 아니라 이단의 교본이 되고 있음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소망인 참이고 진리인 영생과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위하여 철학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찾지 못했으며 또 모든 종교는 그 원본인 이데아를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으로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사라질 신기루인 헛되고 헛된 신기루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과 천국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알 수도 없고 이해 할 수도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하시며

 

이런 사실을 바로 깨달아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그리스도 예수를 비롯하여 모든 도구인 몽학 선생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인 자기를 부인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여호와께서 그렇게 회개함으로 빈 우리의 잔에 영생과 천국을 깨달아 소유할 수 있는 성령을 채워주실 뿐 아니라 영생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이 되는 복음으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고 하시며

 

이를 위하여 우리 피조물이 해야 할 것은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며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나 반대로 너무나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을 비롯하여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이를 비우는 회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깨닫도록 주신 자유의지와 지혜인 선악과 즉 몽학 선생으로 바로 깨달아 회개를 하기보다 오히려 각자의 잔에 찬 것을 표적으로 삼아 자신의 잔을 채우는 정답을 찾기 위하여 발악한 그 자체를 원죄라고 엉터리 정의를 할 뿐 아니라

 

에덴 동산에서 퇴출된 후 자유의지를 따라 스스로 영생인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에 도덕천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몽학 선생을 표적으로 구하므로 그것이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복음을 가리고 있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임으로 바로 알 때

 

표적은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것으로 우상이나 음란이나 악한 것을 비롯하여 갈5장의 성령의 열매나,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요일2장의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는 것이 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한편으로 몽학 선생이 되어 복음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양면성이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종교란 자신의 잔을 채우는 표적으로 도덕천을 구하는 것으로 그 외모는 참으로 멋이고 대단하여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야 하는 올바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루인 헛된 길임을 온 성경을 비롯하여 베드로의 통곡이나 가룟 유다의 자살 등으로 보여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구약은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의 잔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는 길을 주겠다는 것임에도 이를 바로 깨닫기보다 피조물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라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오히려 피조물 스스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의 도전임을 스스로 반증하게 되었고

 

회개란 구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움이 절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잔을 완전히 비우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덕천을 따라 잘못된 것만 비우는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란 회개함으로 자신의 잔을 완전히 비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인 살아있는 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님으로도 표현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그 빈 잔을 가득 채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피조물의 잔을 가득 채우신 그 무엇인 성령님께서 피조물 스스로 진리와 생명인 영생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게 함으로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신약이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누리므로 타인에게 예수처럼 복음의 증인과 몽학 선생이 되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서로 사랑함이란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있는 길로 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증인이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 신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하므로 타인에게 선생이 아니라 몽학 선생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 회개를 도와 줄뿐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생인 진리와 천국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영으로 이를 요한복음16장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 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령 훼방이란 증인의 삶을 서로 사랑함으로 누리기 보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천국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피조물이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그 영생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복음은 구약의 묵시를 따른 십자가의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처럼 온전함 그 자체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있던 없던 어떤 방법이나 모양에 관계없이 그리스도 예수가 복음의 증인과 몽학 선생이 되어 가르치는 그 무엇으로만 가능하기에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도 표현할 수 없는 없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어떠한 수고나 노력을 비롯하여 재물인 희생양이 절대로 필요치 않기에 어떤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거나 분별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또 복음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 사함의 회개에 합당한 도덕천을 따른 선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므로 복음으로 복음인 된 새로운 피조물이 하는 일인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합당한 일이 되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지금까지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예수를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율법,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기도, 예배, 제자, 찬양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모두 벗는 천국을 소망하므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표적을 구하므로 성령훼방을 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