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패스라 2012. 8. 1. 09:30

오늘 묵상하는 히브리서 81~13절 말씀 중에서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회개하고 복음으로 구원받아 복음으로 복음이 되므로 신기루 피조물에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아깝거나 후회하기보다 너무나 감사한 절대 불가능의 과정을 통과한 충격적인 변화요 감동임을 잘 알아 

 

그렇게 됨으로 여호와께서 주신 자유의지인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를 이루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확인하고 신나게 누리는 행복한 삶을 위하여 서로 발을 씻기며 서로 사랑하는 구원받은 천국증인들이 어떻게 신기루인 이세상을 살아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이미 묵상한 것처럼 복음의 무지로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기보다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이성으로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 영생을 소유하기 위하여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며 스스로 예수의 종이 되어 여호와로 착각한 도덕천과 표적인 예수의 은혜에 복과 평강을 비는 것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가 아니라 신기루인 이 세상이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주겠다는 신기루 평안인 불안과 구속임에도 복음의 무지로 복으로 착각하여 스스로를 속이며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표적을 구하게 함으로 초대 이단인 초대 교회가 되어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이성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순종에 걸림돌이 되는 여호와께서 주신 자유의지인 감성을 소멸하려고 불가능에 도전함으로 결국 온전한 복음을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바로 알고 어제 묵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는 그림은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는 창세기 14 18~20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이는 복음의 무지로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고 기록한 이 말부터 온전하신 여호와와 상관없이 스스로 만든 나의 하나님인 신기루 도덕천을 따라 스스로 만든 제사장으로 바로 알 때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는 그림은 떡과 포주를 준비하여 환영 나온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소돔 왕에게 돌려준 것처럼 전리품의 일부를 답례로 준 것을 십분의 일로 의미를 부여하여 예수의 그림자로 미혹하고 있지만

 

이 말이 사실이면 율법에 따른 십일조의 본질은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제사장에게 주는 것이 아니기에 멜기세덱을 제사장으로 미혹하여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으로 말하는 것은 율법에도 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복음과도 전혀 무관한 불의와 불법의 똥칠로 이단의 모습이고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라는 그림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기보다 복음을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사람들이 용을 그리듯이 복음의 무지로 피조물의 구원을 의롭게 됨으로 죄로 인하여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화평을 누리는 것으로 착각하여 이를 사실로 미혹하는 것이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는 그림은 정보의 부제로 갑자기 등장한 살렘 왕 멜기세덱을 곰이 웅녀가 된 것으로 말하는 것처럼 신비를 부여하여 미혹할 뿐 아니라 부모가 분명한 예수의 출생도 억지로 신비를 부여하여

 

결국 자신들이 만든 나의 하나님인 신기루 도덕천을 따라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스스로 만든 죄를 극복하는 도구로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됨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복음의 증인이 된 예수를 제사장으로 삼아 표적으로 구하기 위한 불의와 불법으로 이의 명분을 위하여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는 그림처럼 멜기세덱을 빙자하여 억지로 제사장 예수의 권위를 확보하는 것이고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는 그림처럼 제사장 직분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여 높은 자라고 표현할 뿐 아니라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는 그림처럼 레위 제사장들은 죽을 자들이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다른 따른 제사장은 산다고 증거를 얻는 구원받은 자란 복음의 무지로 참담한 헛소리를 하며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는 그림처럼 멜기세덱은 결과적으로 레위의 제사장에게도 십일조를 받았으므로 결국 레위 제사장보다 더 높은 온전한 제사장이라고 미혹하여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는 그림처럼 복음의 무지로 예수가 대제상이 되어야 함의 당위성을 이성적을 잘 설명하여 미혹한 후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라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도덕으로 출발하여 그 끝이 비도덕적이 되는 신기루 도덕천의 한계를 따른 참담한 헛소리로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줄 모르고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는 그림처럼 스스로 북치고 나팔 불며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미혹하며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는 그림처럼 스스로 도덕천을 공의롭고 신실하다고 고백해놓고 자신들이 토한 음식을 다시 주워 먹으므로 쇼를 하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결국 스스로 고백한 하나님의 속성을 스스로 부정하며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는 그림처럼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러운 자신의 치부를 이미 신기루로 변한 그림자 옷인 구약으로 자신의 치부를 가리는 벌거숭이 임금님이 되어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는 그림처럼 복음의 무지로 신기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새로운 제안을 함으로 이단이 된다는 사실도 모르고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고 할 뿐 아니라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신기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사람들이 용을 그리듯이 복음을 진짜처럼 그려 미혹하고 있지만

 

이는 복음의 무지와 온전한 여호와를 알지 못한 무지로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믿어도 스스로 율법을 바꾸며 제사장도 바꾸는 등 그들 스스로 주장한 공의와 신실함의 하나님 속성에 문제가 되므로 스스로 멘붕에 빠져 미로 속을 헤매는 것일 뿐 아니라

 

복음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임이 된 새로운 피조물로 제사장이니 거룩함이니 악이니 더러움이니 의인이니 죄인이니 하는 신기로 도덕천의 경지를 넘어선 피조물로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온전한 경지로 변화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보여주시는 1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복음의 증인인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미혹하여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발악했음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으로 바로 알 때

 

구약시대에도 왕과 제사장이 따로 있었고 사울 왕이 제사장 역할을 하려고 하다가 혼이 난 것처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라는 하나님의 아들 직분과 2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는 제사장의 직분은 전혀 다른 직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제사장으로 미혹하여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고 복음의 무지로 용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용을 그리듯이 복음을 소유하지 못하여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복음을 그리기 위하여 발악을 함으로 이단이 됨을 알지 못하고

 

또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죄 사하심을 받기 위해서 예물은 죄인들이 준비하나 감히 제사를 드릴 자격이 없기에 제사장이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3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는 그림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참담한 헛소리로 똥칠을 할 뿐 아니라

 

4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는 그림처럼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주장하는 것이 스스로 모순이 됨을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기 위하여

 

5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는 그림처럼 하늘 어디에 천국이 있고 그 천국에 성소와 제사장이 있는 것처럼 미혹하여 이 땅의 성소나 제사장은 그림자인 가짜라고 미혹하여 주장하는 것이 사실처럼 그럴듯하지만

 

그들의 주장대로 온전한 의인들만 가는 그곳에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그 자체가 지금까지의 주장이 엉터리일 뿐 아니라 복음의 무지로 상상의 용을 그리듯이 복음을 그리므로 오히려 온전한 복음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임을 바로 알 수 있고  

 

6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는 그림도 복음의 무지에 따른 참담한 헛소리의 나팔과 꽹과리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7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는 그림이 바로 복음의 무지로 스스로 온전하지 못한 못난이 하나님을 반증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9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2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는 그림처럼

 

예수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로 복음의 증인이 되므로 이미 낡아지고 쇠하여 없어진 것처럼 처음부터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이성으로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앞을 가로막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바로 깨달을 때

 

회개하라, 서로 사랑하라, 증인이 되어라, 표적을 구하지 마라, 선생이 되지 마라, 외모가 아니라 공의로 판단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과 경고를 명심함으로 감성을 소멸하기보다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를 이루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소망인 참이고 진리인 영생과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위하여 철학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찾지 못했으며 또 모든 종교는 그 원본인 이데아를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으로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사라질 신기루인 헛되고 헛된 신기루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과 천국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알 수도 없고 이해 할 수도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하시며

 

이런 사실을 바로 깨달아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그리스도 예수를 비롯하여 모든 도구인 몽학 선생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인 자기를 부인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여호와께서 그렇게 회개함으로 빈 우리의 잔에 영생과 천국을 깨달아 소유할 수 있는 성령을 채워주실 뿐 아니라 영생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이 되는 복음으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고 하시며

 

이를 위하여 우리 피조물이 해야 할 것은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며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나 반대로 너무나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을 비롯하여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이를 비우는 회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깨닫도록 주신 자유의지와 지혜인 선악과 즉 몽학 선생으로 바로 깨달아 회개를 하기보다 오히려 각자의 잔에 찬 것을 표적으로 삼아 자신의 잔을 채우는 정답을 찾기 위하여 발악한 그 자체를 원죄라고 엉터리 정의를 할 뿐 아니라

 

에덴 동산에서 퇴출된 후 자유의지를 따라 스스로 영생인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에 도덕천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몽학 선생을 표적으로 구하므로 그것이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복음을 가리고 있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임으로 바로 알 때

 

표적은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것으로 우상이나 음란이나 악한 것을 비롯하여 갈5장의 성령의 열매나,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요일2장의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는 것이 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한편으로 몽학 선생이 되어 복음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양면성이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종교란 자신의 잔을 채우는 표적으로 도덕천을 구하는 것으로 그 외모는 참으로 멋이고 대단하여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야 하는 올바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루인 헛된 길임을 온 성경을 비롯하여 베드로의 통곡이나 가룟 유다의 자살 등으로 보여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구약은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의 잔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는 길을 주겠다는 것임에도 이를 바로 깨닫기보다 피조물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라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오히려 피조물 스스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의 도전임을 스스로 반증하게 되었고

 

회개란 구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움이 절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잔을 완전히 비우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덕천을 따라 잘못된 것만 비우는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란 회개함으로 자신의 잔을 완전히 비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인 살아있는 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님으로도 표현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그 빈 잔을 가득 채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피조물의 잔을 가득 채우신 그 무엇인 성령님께서 피조물 스스로 진리와 생명인 영생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게 함으로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신약이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누리므로 타인에게 예수처럼 복음의 증인과 몽학 선생이 되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서로 사랑함이란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있는 길로 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증인이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 신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하므로 타인에게 선생이 아니라 몽학 선생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 회개를 도와 줄뿐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생인 진리와 천국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영으로 이를 요한복음16장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 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령 훼방이란 증인의 삶을 서로 사랑함으로 누리기 보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천국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피조물이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그 영생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복음은 구약의 묵시를 따른 십자가의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처럼 온전함 그 자체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있던 없던 어떤 방법이나 모양에 관계없이 그리스도 예수가 복음의 증인과 몽학 선생이 되어 가르치는 그 무엇으로만 가능하기에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도 표현할 수 없는 없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어떠한 수고나 노력을 비롯하여 재물인 희생양이 절대로 필요치 않기에 어떤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거나 분별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또 복음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 사함의 회개에 합당한 도덕천을 따른 선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므로 복음으로 복음인 된 새로운 피조물이 하는 일인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합당한 일이 되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지금까지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예수를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율법,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기도, 예배, 제자, 찬양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모두 벗는 천국을 소망하므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표적을 구하므로 성령훼방을 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