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성철 스님이 말하는 불교 즉 제법 실상, 일진 법계의 뜻은?

패스라 2012. 11. 17. 13:11

불교는 본래부터 초월신을 부정합니다. 상대적이고 유한한 이 현실세계가 그대로 곧 절대의 세계이며, 이 세계를 벗어나 따로 절대의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이 불교의 근본 태도입니다.

 

그것을 [법화경]에서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 하고, [화엄경]에서는 '일진법계(一塵法界)'라고 했습니다. 현실 이대로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중도세계(中道世界)인 것입니다. 현대의 정신과학에서나 물질과학에서도 현실이대로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생은 현실의 차별만 보고 한계만 보려고 합니다. 한계 없는 절대의 세계는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대와 절대, 유한과 무한에 대한 한계는 그것을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해가 떠서 온 우주를 감싸고 있다 해도 눈 감은 봉사는 이 광명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 전체, 삼천 대천 세계, 미진수 법계 이대로가 불국토 아님이 없고 부처님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생은 번뇌 망상의 구름에 가려서 눈뜬 봉사가 되어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절대와 상대는 때와 장소에 따라서 그 구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가 모두 광명입니다.

 

눈을 감은 사람이 볼 때는 암흑이고, 눈을 뜬 사람이 볼 때는 광명인 것처럼, 눈만 뜨면 이 처소(處所) 이대로가 모두 절대입니다. 또 동시에 사람 사람이 부처님 아님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 신 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중생이 본디 부처임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앉은 자리, 선 자리 이대로가 극락세계, 황금세계, 절대세계입니다.

 

다만 그것을 알지 못함은 중생이 진리의 눈을 감았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눈만 뜨면 내가 바로 진금체(眞金體)이고, 내가 사는 곳 전체가 진금체이며 극락세계임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은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본래 정신 자체가 영원불멸이니 공부를 하지 않아도 불멸은 그대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공부를 하든 않든 간에 정신의 불멸은 그대로이나 그 쓰는 작용은 다르니, 공부를 않는 사람은 진흙 속에 싸인 옥()과 같아서 그 옥의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항상 생전에 지은 선악(善惡)의 업력(業力)에 따라 생사로상(生死路上)에 돌아다니며 무한한 윤회를 거듭하는 업보를 받게 되어, 조금도 자유가 없는, ()가 연속하는 생사의 불멸(不滅)입니다.

 

공부를 성취한 사람은 진흙을 다 씻어 버린 깨끗한 옥과 같아서 업력(業力)에 끄달리지 않아 생사로상(生死路上)에서 헤매이지 아니하고 모든 고()를 벗어나 영원히 자유 자재한 대활동을 하게 되는 해탈의 불멸(不滅)입니다.

 

비유하면 공부를 성취하기 전에는 눈 감은 장님의 생활과 같고 공부를 성취한 후에는 눈 뜬 사람의 생활과 같으니, 사람의 생활은 같으나 눈 뜨고 안 뜬 생활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면 진리의 눈을 뜰 수 있는가? 생각을 한곳에 집중해서 삼매(三昧)를 얻으면 모든 진리를 바로 볼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이 현실 또한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현실 자체가 틀린 것이라면 이 현실을 떠나야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을 바로 직시해야 합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바세계라고 하지만, 현실을 바로 보면 바로 극락세계입니다.

 

결국 중생을 부처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사바세계를 극락세계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원래 사바세계 이대로가 극락세계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 성철 스님이 주창하는 불교이기에 그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하지만

 

문제는 붓다를 비롯하여 어느 대단한 보리살타도 육바라밀 등으로 방법만 주장하지 온전하고 완벽하게 중도를 정등각하여 그 불생불멸의 세계를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혹시 그들은 지금도 누리고 있다며 또 다른 논리로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붓다가 살아있는 동안에 중도를 적등각했다고 스스로 선포했으면 그대로 있어야지 결국 죽었으니 무엇으로 불생불멸의 영원한 세상을 소유하여 누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는 결국 솔로몬이 말한 것처럼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모든 것은 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한 것이고 그래서 참인 불생불멸을 목숨 걸고 갈망하다 회개함으로 복음으로 구원받아 영생을 소유한 예수가 된 것처럼

 

스스로 불생불멸을 소유하여 누리기보다 불생불멸의 외모만 여러 각도로 분별하여 판단함으로 선생이 되어 불생불멸을 표적으로 구하게 미혹하여 강요함으로 종교가 되어 오히려 불생불멸의 복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고 있음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