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약육강식에 대한 종교의 실상

패스라 2012. 11. 24. 09:51

종교 중에는 불교가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 팔만 사천 법문이 있는 것처럼 아주 깊고 복잡하여 그 깊이와 넓이를 잘 헤아리기 힘든 것이 장점과 단점이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고 

 

기독교는 비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알 수 없는 믿음이란 단순한 도구로 모든 것을 합리화 함으로 스스로 자기 모순에 빠진 것이 장점과 단점이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불교로 종교를 바라보기 위하여 불교의 출발을 보면 어느 날 왕자인 붓다가 여호와께서 피조물이 구원을 찾아 소유할 동안 필요한 도구로 주신 약육강식의 자연 논리를 따라 새가 벌레를 잡아 먹는 것을 보고 왜 하나가 살라면 하나가 죽어야 할까 라는 의구심으로

 

피조물인 자신의 당면 과제인 사명과 목적을 망각하고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불국 정토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출가하여 결국 이 세상은 꿈속 같이 눈을 감은 세상이라 그렇게 보이고 느껴지지만 눈만 뜨면 즉 깨달으면 모든 것의 본질은 헛된 공한 것이라고 하여 눈을 뜨려고 발악을 하는 것이 불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논리를 그대로 믿는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잠을 자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한 번 뜬 눈을 계속 뜨고 있을 수 없으니 결국 온전한 참을 소유한 자유를 누리기보다 영원이 눈을 감지 않으려는 불가능의 도전만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복음은 내가 바로 온전한 참인 그 자체가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에 약육강식을 비롯하여 자연 등 주변 환경이나 조건이 전혀 의미가 없기에 눈을 뜨고 감고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 지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를 비롯한 종교를 다시 보면 인천과 춘천과 평양과 부산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가려면 각자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동,서,남, 북이 답이지만 또한 다른 위치의 사람에게는 답이 아닌 것처럼 결국 이 세상에는 온전한 불변의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복음은 종교처럼 정답으로 보이지만 정답이 아닌 고정된 길인 고속도로를 말하는 선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길이 아니지만 그 사람에게만 길이 되는 살아있는 길로 가는 것이기에 종교처럼 어느 누구도 절대로 길을 안내하는 선생이 될 수 없고 오직 목적지인 서울에 도착하여 서울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구원을 소유한 증인만 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에서는 이런 살아있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동쪽이다 하는 사람은 인천에 사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아 그 사람과 시시비비는 가리는 약육강식이 일어나지 않는 무상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런다고 그 자체가 서울에 도착한 것이 아니니 그것이 과연 참을 갈망하는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단 말인가?

 

따라서 이 세상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은 없어지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사라지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은 일어난다는 것이 아주 당연한 약육강식인 이 세상의 논리이고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것이 무아이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는 것이 무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으로 대단한 것 같지만

 

불교에서 자신의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자랑스럽게 주장하는 이 연기법이 오히려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결국 이 세상 전체를 온전하게 구원하지 못하면 나의 구원은 언제나 미완성이 되므로 결국 모두가 공평하게 잘 사는 불국 정토의 온전한 세상을 위하여 대자대비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헛되고 헛된 짓이 됨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복음은 이것과 저것을 각각의 객체로 인정하기에 있고, 없고, 일어나고, 사라짐이 독립된 온전한 내가 됨으로 주변의 조건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온전한 구원을 소유하여 자유인 행복을 누리지만, 불교는 결국 연기법을 따라 모든 것이 또한 나로 내가 사라진 무상 무아로 자유인 행복을 추구 하므로 결국 실상인 내가 없는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공한 것이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