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
한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생의 여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각 객체의 인생마다 내재하는 이성과 감성의 불균형을 극복하고 온전한 조화를 이루기 위한 도전이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고 창세기에서 보여준 것처럼 불가능을 선포하자
이성적으로 이를 돌파하기 위하여 밖으로 눈을 돌려 아담처럼 유형무형의 가치와 성취감인 성공을 추구하기 위하여 확정한 목적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바탕으로 집중하며 열심히 달려가는 이성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인 남자가
하와처럼 유형무형의 가치 있는 성취감이나 성공이 아니라 뭔가에 대한 만족의 충족을 위한 관심으로 일반의 상식을 넘어가는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을 아주 쉽고 당당하게 하며 끝없이 새로운 것을 갈망하며 달려가는 감성적 성향이 강한 사람인 여자와
서로 온전한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처음으로 시도한 도전을 아담과 하와라 할 수 있고 이를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결혼이란 틀로 고착하여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처럼 미혹하여 정답처럼 세뇌함으로 도전해오고 있지만 아담과 하와가 실패한 것처럼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만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역시 정답이 아니라 불가능의 도전임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먼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이유와 원인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불교에서도 제법 실상은 공 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세상은 신기루처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지혜의 왕 솔로몬의 말을 믿거나 깨닫기보다 외부의 힘이나 유혹에 의하여 세뇌되고 조작된 이성이나 감성을 따라 돈, 권력, 건강, 예술, 도덕, 종교, 가정 등 각자의 취향이나 조건에 따라 어떠한 것을 목적으로 멋대로 확정하고 이를 정답인 이데아처럼 착각하여
이성적인 성향의 남자들은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불가능의 도전임을 알지 못하는 무지로 이 세상을 위한 신기루인 유형무형의 가치와 성취감인 성공을 추구하기 위하여 불안해 하면서도, 쉬지 못하면서도 신나고 담대하게 즐기는 것처럼 집중하여 열심히 달려가다가 피조물의 한계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이유와 원인으로 결국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 신기루임을 깨닫는 순간 끝없이 좌절의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또 감성적 성향인 여자들도 만족과 충족을 위하여 갈망하는 그 뭔가가 바로 참인 영생임을 알지 못하고 부족한 이성이 참이라고 미혹하고 있는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을 갈망하며 달려가 보지만 그것이 참이 아니기에 온전한 만족과 충족을 채울 수 없지만
이성의 부족으로 그 실체를 판단할 수 없어 이성처럼 좌절하며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보다는 항상 갈급함으로 힘들어하며 지쳐가고 있으나 혼자만 전전긍긍하고 있기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바로 깨닫기보다 외면함으로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하여 이성이 부족한 감성인 여성을 어린 아이처럼 골치 존재로 취급하여 성적인 불만 해소를 비롯하여 필요한 도구로만 사용하기 위하여 감성을 소멸하려고 성경에서는 인위적으로 사람의 숫자에 포함하지도 않고, 세상의 인사말에서도 “Ladies & Gentleman” 이라고 하여 여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분별하고 있지만
여호와께서 주신 성의 특성인 본질은 절대 불변임과 본질적으로 이성은 바른 것이고 감성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둘 다 자체만으로는 언제나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에 의한 것으로 그렇게 강제 변환된 성의 특성으로 한 사람이라도 온전한 만족을 누리고 있는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요즘 시대가 아주 신랄하게 그 진실을 잘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인 남자가 나이를 먹으면 감성인 여자처럼 서로 성의 특성이 변해가는 것을 당연한 생리적인 현상으로 미혹하며 이전에 이성적인 논리의 틀을 만들어 죽을 때까지 이성의 고유 품격을 유지하였음을 두고는 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더니
생리적인 변화가 일어날 시기가 아닌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이들로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성의 특성이 바꾸어지고 있는 요즘 세대를 두고는 시대의 흐름으로 변화가 일어났다는 등의 엉터리 억지 논리를 정답처럼 미혹하여 선생들이 됨으로 인하여
이성은 피어보지도 못하고 지는 꽃처럼 이 세상의 대세를 따라 이전의 감성처럼 이성다운 특성을 강제 소멸 당하여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에서 큰 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신음과 한숨 소리만 내고 있으며
감성은 이전의 이성처럼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그 외모는 마음껏 관심을 충족시키며 아주 당당하고 신나는 바른 인생처럼 달려가보지만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관심의 대상을 찾지 못하여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온갖 바람으로 이 세상을 요란하게 울리는 나팔과 꽹과리 소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내용만 보아도 이성과 감성은 어느 것이 정답이고 오답이 아니라 각각 그 목적과 가치를 위하여 열심히 달려가려고 한다는 것과 또 아무리 발악을 해도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절대로 이성과 감성이 온전한 조화를 이루는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없기에 항상 부족하여 갈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다시 정리하면 우리 인생들이 이 땅에 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답을 찾으려고 이성과 감성이 발악을 하며 모계사회와 부계사회를 이루는 등 온 힘을 다하여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었고 그렇게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와 원인은
우리 인생들이 여호와와 피조물의 한계를 바로 깨달아 회개함으로 복음으로 구원받아 이성과 감성이 서로 온전한 조화를 이룬 새로운 피조물로 서로 사랑함으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누림으로 이성은 피조물이 새로운 피조물로 된 변화의 기적과 감동인 구원의 신비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로 신나게 달려가고
감성은 이런 이성이 보여주는 영생으로 충족과 만족을 느끼며 이성은 다시 이런 감성을 보고 성취감과 성공을 확증하고 누리므로 서로 온전한 조화를 이루어 확증과 만족을 일용한 양식처럼 주고 받으며 누리므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신비의 기적은 회개 없인 이 세상 어떠한 자격이나 조건으로도 절대 불가능하고, 이성이나 감성 단독으로도 절대 불가능하기에 결국 회개만이 정답일뿐 아니라 복음은 어떠한 기득권이나 우선권 없이 누구에게나 절대 공평하고 온전하고 완벽한 정답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에 무지한 부모와 가정과 학교와 종교와 사회와 문화가 서로 야합하여 헛되고 헛된 신기루 같은 이 세상의 것을 표적으로 구하며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는 불가능의 도전을 위하여 발악을 할 뿐 아니라
자녀들까지 허황된 자신들의 발악을 위한 희생양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스스로를 속고 속이며 자녀들을 위한다는 엉터리 명분으로 자녀들의 이성과 감성을 각자의 특성대로 성숙하게 돕는 것이 아니라 잠언처럼 정답이 아닌 신기루 도덕천을 따라 헛되고 헛된 이 세상을 위한 윤리와 도덕과 인륜을 정답처럼 미혹하여
자녀 본연의 이성과 감성을 소멸하려고 발악을 하며 야합한 그들이 심어준 조작된 신기루처럼 헛되고 헛된 수많은 이성과 감성으로 세뇌함으로 참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괴물로 만들어 정답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함으로
너무나 많은 이성과 감성의 홍수 속에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스스로 자폭하여 죽을 뿐 아니라 야합한 그들도 괴물로 변한 자녀에게 발목이 물려 신음하며 죽어 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를 부인한다는 회개를 좀더 세밀하게 표현하면 내주하는 이성과 감성 중에는 하나는 이성을 버리고, 하나는 감성을 버리므로 남은 이성과 감성이 정자와 난자처럼 복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구원으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창세기에서 보여준 것처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다는 하와는 아담 안에 내주하는 감성을 분리했다는 것이고 그렇지만 피조물의 한계로 아담에게도 감성의 뿌리가 일부 남아있고 하와에게도 이성의 잔재가 일부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회개를 하기보다 이를 외모를 보고 판단하여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함으로 본질이 왜곡되어 답을 찾기 위하여 그렇게 먼 길을 돌아야 했던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