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함과 보편 타당함
내일부터 묵상할 마태복음을 비롯하여 모든 성경은 복음의 무지로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로 여호와의 뜻인 온전한 복음을 부족한 피조물의 이성으로 판단하여 표현함으로 결국 복음의 실상으로 참인 본질이 아니라 비유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바로 알지 못하고
또 온전함과 보편 타당함을 분별하지 못하여 우리들이 정답처럼 의지하고 있는 피조물이 만든 보편 타당한 법이나 사전에 기록된 뜻을 참인 정답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성경의 기록 자체를 참인 정답으로 착각함으로 인하여
그 비유가 가리키고 있는 온전한 복음인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뚫어지게 쳐다보게 하는 종교가 됨으로 빛 좋은 개살구나 속 빈 강정처럼 오히려 온전한 복음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되어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음을
지금까지의 묵상을 바탕으로 창세기에 이어 룻기와 이번에는 마태복음을 통하여 확인하려고 하니 먼저 온전함과 보편 타당함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바로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여 먼저 함께 묵상해 보면
우리들이 정답처럼 흔히 쓰고 있는 일반적이다, 보편적이다, 공평하다는 거의 같은 의미로 그 뜻은 정의의 여신상처럼 오른 손에 가진 칼인 힘으로 왼손에 가진 저울처럼 공평인 정의를 실현 하겠다는 것으로 이를 우리들은 법이라고 말하며 이 법을 정답처럼 믿으며 신봉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이 법으로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보편적이다, 공평하다는 것은 최소 공약수처럼 정답이 아니라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즉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칼로 표현된 것처럼 결국 무례함의 강압에 의하여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평안을 주는 복음과 서로 사랑도 바로 알지 못하고 섹스가 주는 순간의 쾌락을 정답처럼 미혹하여 그것을 추구하게 하는 이 세상 선생들처럼 종교를 비롯하여 복음에 무지한 이 세상의 선생들이 정답처럼 미혹하여 세뇌하는 모두가 함께 잘사는 사회는 절대 실현 불가능하고 정답이 아닌 것처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공평함도 절대 실현 불가능 할 뿐 아니라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절대로 줄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바로 알지 못하고 피조물이 만든 법인 정의로 그것을 이루겠다는 것은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 됨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무지로 성경 해석을 비롯하여 모든 종교나 이 세상이 추구하는 모두가 함께 잘사는 사회인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공평함을 정답처럼 강요하는 것은 개인의 인격으로 본질인 이성과 감성을 소멸하여 돌연변이 괴물로 만들 뿐 아니라 참인 온전함을 가로막는 것으로 바로 알 때
복음의 온전함이란 우리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공평함이 아니라 칼이나 저울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각 개인이 만족하는 것으로 이를 철학에서는 이데아라고도 하며
회개함으로 복음으로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로 이데아라 말하고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칼과 저울로 억지로 공평인 정의를 실현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서로 사랑함으로 신나게 누리는 됨을 바로 아는데 큰 유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