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패스라 2013. 6. 5. 08:13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말은 성철스님이 온 삶이 담긴 대단한 화두로 그 뜻이나 의미를 찾기 위하여 불교를 비롯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 말을 직접 옆에서 들은 제자들을 비롯하여 어느 누구도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분명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의 설만 난무하여 그 의미와 뜻에 대한 신비함만 더하므로 결국 대단한 고승 성철스님만 남는 것처럼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는 것이나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라고 보여주는 그림처럼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나 제자들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예수의 기도나 부르짖음의 의미나 뜻도 이럴 것이다라는 추측의 설을 정답처럼 미혹하여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인 주장이나 설교로 오남용 하므로 결국 그들의 주장대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표적으로만 남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과 성철스님이 한 말의 의미와 뜻은 무엇인지 바로 알기 위하여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기보다 온전함의 논리로 판단해보면

 

그 말을 하는 당시의 그들은 어느 누구도 영생불멸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온전한 평안이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보다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한 신기루인 자신들의 주장과 논리를 정답으로 착각하여 그것을 의지하여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을 때이다.

 

따라서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화두로 참선을 행하며 달려가고 있는 것이고, 예수도 온전한 정답을 소유하기 위하여 그런 기도와 외침으로 힘쓰고 애쓰며 달려가고 있는 것으로 화두나 기도와 외침은 그저 하나의 도구일 뿐 그 자체에는 아무런 뜻이나 의미가 없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불교에서는 생로병사의 고락에서 해탈한 성불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대로 화두를 만들어 낼 수 있기에 불교를 비롯하여 이 세상에는 수많은 화두가 난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예수가 가르쳐 주었다는 주기도를 비롯하여 이 세상 선생들이 스스로 만든 관상, 중보, 대표, 금식, 방언. 새벽, 식사, 헌금, 퇴마, 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각종의 수많은 기도와 외침의 나팔과 꽹과리 소리가 정답처럼 온 세상을 요란하게 떠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그것으로 우리 피조물이 궁극적으로 갈망하고 있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인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세상도 우리들의 원하는 선이 아니라 원치 않는 악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묵묵히 자신들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화두나 기도나 외침은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모든 피조물의 궁극적으로 갈망하고 있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인 이데아가 되기 위한 도구로 그 자체에는 특별한 의미나 뜻이 있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성철스님 역시 온전함이 아니라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보면 붓다를 비롯한 불교의 대단한 고승이나 공자를 비롯하여 유교의 대학자나 아브람 모세 바울 등 성경에 나오는 대단한 믿음의 선조들이나 대단한 철학자나 세상의 영웅 호걸들처럼 다른 사람보다 좀더 특별하여 대단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불가능의 도전으로 결국 그들의 실삶은 실패한 인생들로 아무런 뜻이나 의미가 없는 것이고

 

예수도 그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결국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착각하여 그들이 구하는 표적의 대상으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그 외모를 따라 예수가 한 비슷한 기도나 외침을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결국 그들의 실삶도 실패한 인생들로 아무런 뜻이나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그림이나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고 보여주는 그림처럼

 

예수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어느 순간 그냥 다 이루었다고 하는 것처럼 또 보고 믿는냐고 표현한 것처럼 우리들이 부족한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믿겠다는 것을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절대 대 불가능의 도전으로 깨달아 분명하게 바로 알 때

 

성철스님이 보여준 참선이나 예수가 보여준 기도나 외침을 비롯하여 각종 종교나 이세상이 말하는 방법으로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영원히 누리는 것을 복으로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