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중도와 중용과 복음의 실체

패스라 2013. 7. 26. 07:51

중도란 불교의 핵심 논리라고 하면서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면 선과 악이나, 흑과 백처럼 양변으로 보이지만 이를 양변으로 분별을 않겠다는 논리를 따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솔로몬의 주장처럼 제법 실상은 공 하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을 따라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생기소멸의 법칙을 따라 연기를 한다는 논리로 생각은 생주이멸, 몸은 생로병사, 사물은 성주괴공 한다고 설명하며

 

우리 피조물은 그런 인연을 따른 생기 소멸의 법칙을 따라 연기하는 생로병사의 고락에서 해탈함으로 성불하여 부처가 된 후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중생인 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고,

 

중용이란 유교의 핵심 논리로 과유불급 즉 지나치면 도리어 부족함만 못하다는 뜻이 아니라 지나친 것이나 부족한 것은 같다는 본래의 의미처럼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않고 중심을 잘 지킴으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변함 없는 당당한 최고의 선인 도덕천이 됨으로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가능한 것으로 미혹하기 위하여 우리가 만든 법을 형상화 한 정의의 여신이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하여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갈고 닦은 후 집안을 다스려 바로잡고 그 후에 나라를 다스리면 온 천하를 평정하고 편안하게 하다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신기루 유혹을 정답으로 착각하여 그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신기루임을 알지 못하고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는 멋진 세상을 펼치겠다는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하는 것이고

 

복음이란 태초에 여호와께서 피조물 속에 넣어준 생기인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로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신비로 변화되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라는 것을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회개를 하기보다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낳으며, 신기루 도덕천을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미혹하여 세뇌하고 예수를 그 하나님의 아들로 미혹하여 표적으로 구하므로

 

결국 참을 가리고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인 나팔과 꽹과리 소리가 되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유혹으로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는 짓이 됨으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경고나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고 하는 경고처럼 되어 실족함으로 바로 알 때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서로 사랑함으로 실삶으로 확인하며 영원히 누리는 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신기루 믿음이나, 교육, 훈련 등으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죽음에 대한 억울함이나 두려움을 따른 불안함인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중도니, 중용이니, 하면서 신기루 도덕천을 표적으로 구하므로 복음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등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그렇게 갈망하며 찾고 또 찾으려고 발악한 정답으로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