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선(善)과 악(惡)의 실체

패스라 2013. 7. 29. 08:12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복음으로 구원받아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 당신처럼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라는 것을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선과 악으로 분별함으로 선이란 착하고, 잘하고, 좋고, 훌륭하고, 정당하여 도덕적인 기준에 합당한 것이고, 악이란 선과 반대되는 의미로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거나, 양심을 어기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상상하여 용을 그리듯이 그린 것을 정답인 참으로 착각하여

 

남을 위한 착하고 좋은 훌륭한 마음을 선의라 하고, 나를 위한 착하고 좋은 훌륭한 마음은 남을 위한 나쁘고 좋지 않은 마음이 되기에 악의라 하며, 또 남을 위한 착하고 좋은 훌륭한 행동을 선행이라 하고, 나를 위한 착하고 좋은 훌륭한 행동은 남에게는 나쁘고 좋지 않은 행동이 되기에 악행이라고 미혹하기 위하여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이 되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달콤한 신기루 유혹과, 무례한 위협과 협박으로 세뇌하여 괴물을 만들므로 결국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하여 사는 것을 바른 삶으로 착각함으로 인하여 

 

온전하지 못하므로 온전함을 위하여 언제 어디서나 당연히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 고토의 지극히 당연한 피조물의 비위를 어떻게 끝까지 맞추어 보겠다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정답처럼 착각하여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고 스스로 발악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표리부동의 모습이 되어 스스로를 속이는 무례함을 사랑이나, 나눔이나, 섬김이나, 봉사 등으로 스스로 미혹하여 착각함으로 당연한 정답처럼 명분을 세우며 발악을 하다 실패하여 실망할 때도 회개를 하기보다 2, 3차의 도전을 계속함으로 결국 우울증이나 스스로 각자 자신의 인생을 파산신고하며 실족하는 것처럼

 

철학이나 종교의 대단한 선생들도 선악의 의미와 본질을 바로 알기 위하여 발악하여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바람을 정답이나 잡은 것으로 착각하여 그 하나는 피조물 스스로 만든 신기루 도덕천을 선이라 하여 이는 의무론적 윤리학이 되었고, 또 하나는 인간의 목적인 최고의 행복을 선이라 하여 이를 목적론적 또는 가치론적 윤리학이 되었지만

 

복음의 무지로 행복을 쾌락으로 착각하여 쾌락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발악하자 지금처럼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고, 그러자 지금처럼 쾌락은 개인적인 욕구만족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보편적인 쾌락이라고 바람을 잡으려는 신기루 법을 정답처럼 만들게 되었다.

 

이처럼 어느 누구도 선악의 본질을 분명하게 정의하지 못하자 결국 철학은 신은 죽었다고 하는 것처럼 선악은 정의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하는 등 선악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윤리학적 이론이 매우 복잡하게 얽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처럼 선악의 본질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선악의 의미와 본질보다 도덕천을 선이라 하며 이를 위하여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성품인 인의예지(仁義禮智)인 의질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로움에 믿음인 신을 더하여 5대 덕목이라 하고

 

이를 정답으로 착각하여 동대문 즉 흥인지문은 인()의 의미로, 서대문 즉 돈의문은 의()의 의미로, 남대문 즉 숭례문은 예()의 의미로, 북대문인 숙정문 즉 홍지문은 지()의 의미로, 종각인 보신문 즉 보신각은 신()의 의미로 4대문과 종각을 만들었고

 

불교에서도 선악의 의미와 본질보다 인연을 따른 연기를 해탈함으로 선악 넘어 있을 것 같은 평안인 행복을 위하여 불살생(생명을 죽이지 마라), 불투도(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마라), 불사음(사음이나 간음하지 마라), 불망언(진실되지 않는 거짓말을 하지 마라), 불음주(술을 마시지 마라) 5계라 하여 지키게 하면서

 

결국 이단처럼 불교만의 선을 만들어 선불교, 선 수행 등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종교도 각 종교를 따라 선과 악의 본질보다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그들만의 선을 만들어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선과 악을 반대개념으로 상상하고 있지만 이를 외모인 도덕천의 잣대를 따라 양변의 논리로 보면 아름다움은 선이 되고 추하면 악이 되고, 길하면 선이 되고 흉하면 악이 되며, 행복하면 선이 되고 불행하면 악이 되는 등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이런 엉터리 논리가 기독교를 비롯하여 이 세상을 지배하게 하는 것은 선악의 본질을 모르는 무지로 인한 것으로 바로 알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선악을 온전함의 논리를 따라 우리의 실삶으로 바라보면 선과 악은 반대의 개념이나,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기에 당연히 바라보는 환경과 조건을 따라 다르게 보이므로 선과 악으로 분별될 뿐 아니라 정답이 복잡하게 얽힐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

 

선악의 의미와 본질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온전함 그 자체로 우리 피조물도 여호와처럼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는 그것이기에 오히려 선과악의 이미지를 지금과는 반대의 개념으로 적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조물 스스로 외모를 따라 분별한 헛되고 헛된 신기루인 선과 악을 참으로 미혹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을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달콤한 신기루 유혹과, 무례한 위협과 협박으로 미혹하여 세뇌하는 불의와 불법이 되어

 

결국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는 짓처럼 되어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는 경고나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는 경고처럼 됨으로 바로 알 때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서로 사랑함으로 실삶으로 확인하며 영원히 누리는 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신기루 믿음이나, 교육, 훈련 등으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죽음에 대한 억울함이나 두려움을 따른 불안함인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을 선악으로 분별하고, 이를 반대로 적용함으로 복음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등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그렇게 갈망하며 찾고 또 찾으려고 발악한 정답으로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