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속삭임 낙서장

삼성의 창업주가 했다는 잊혀진 질문에 대한 서론

패스라 2015. 3. 17. 07:23

감탄고토의 온전하지 못한 모든 피조물의 본능과 본질을 따른 야망과 욕망의

본질인 의식주의 자급자족과 일용할 양식의 한계를 극복함으로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기쁨과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기 위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헛되고 헛된 허망한 신기루이기에

무엇이든지 절대로 온전하게 바로 알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회개를 하기보다 온전하지 못한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이 경험하는 자기 중심적인

의식과 무의식 세계인 마음과 생각을 정답으로 심각하게 착각하듯이

 

피조물의 마음과 생각이 꿈꾸며 갈망하는 상상의 용을 진짜 용으로 착각하여 믿는

것처럼 감성을 따라 허망한 신기루 맹신의 우상숭배나 미신을 정답으로 심각하게

착각하여 믿는 이기적인 삶인 신앙이나

 

이성을 따라 온전하지 못한 피조물의 수준에서 외모인 공평 타당함으로 판단한

논리의 주장인 철학이나 과학을 비롯한 이타적인 삶인 이 세상 모든 학문이나

신학은 온전한 정답이 아닐 뿐 아니라

 

허망한 신기루 맹신의 믿음을 근거한 이기적인 삶인 신앙과 온전하지 못한 허망한

신기루 논리를 근거한 이타적인 삶인 신학은 서로 정답이 아님을 반증하고

있음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종교 다원주의나 정치처럼 공생이나 상생의 명분으로

이기적인 삶인 신앙과 이타적인 삶인 신학을 서로 적당하게 야합하여 종교를

만들 뿐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종교나 정치이기에 정답을 찾아 방황하는 작금의 종교나 정치

현실이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한 지붕 두 가족이나, 적과의 동침으로

서로 충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망한 신기루 유혹의 유익인 똥을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발악하며 몸부림치고 있기에

 

그 결과는 언제나 다람쥐 쳇바퀴나, 절대 불가능의 도전으로 어느 날 홀연히

인생 무상을 읊조리며 허공 속으로 흩어지며 사라져가는 실패자가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 때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만고의 영웅호걸은 허망한 신기루인 과거나 주변이나

환경에 미혹되어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처럼 허망한 신기루 유혹의 똥을 표적으로

다시 구하기 위하여 이기적인 삶인 신앙과 이타적인 삶인 신학을 비롯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중도나 중용의 삶을 위하여 발악하며 몸부림치기보다

 

그 본질은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이지도 않고 중도나 중용도 아니지만 그 외모는

그렇게도 보이는 각자 자신의 살아있는 길로만 가면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고 

피조물의 현실의 삶을 살펴보면

 

모든 피조물의 삶의 본질은 선악이나 옳고 그름이 없이 그저 각자 자신의 역량을

따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삶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피조물 스스로 외모로 판단하여 만든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인 신앙이나 신학의

이름으로 미혹하여 본질을 가리고 있는데

 

그 현실의 실상을 보면 삼성의 창업주가 사망하기 한달 전쯤 어느 신부에게

질문하였다는 종교와 신에 대한 궁금증에 대하여 24년 동안 잠자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신부에 의하여 잊혀진 질문이란 이름으로 이 세상에 드러났을 뿐

아니라

 

그 신부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이라며 이 세상 유익인 똥을

위하여 이런 저런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을 난발하며 자신들의 신앙과 신학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은 온전한 정답이 아닐 뿐 아니라 질문자와 답변을 회피한 자의 의도와 그

질문의 심각성을 제대로 감지하여 파악하지 못한 참으로 웃기는 짬뽕 같은 짓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질문의 본질은 신앙이나 신학의 이름으로 종교와 신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논쟁하고 있는 바람이나 구름 잡는 도토리 키 재기의 허망한 신기루 궁금증이나

논리의 주장이 아니라

 

죽음이 현실로 다가옴을 직감함에 대한 온전한 도피처를 찾는 처절한 몸부림이기에

그날 그 신부는 스스로 정답을 소유하지 못한 자신과 종교의 한계를 성찰하였기에

감히 이 세상의 갑인 그에게 정답이 아닌 신기루 처방전을 난발하지 못한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또 이 세상의 갑인 그도 길을 두고 메로 가는 것처럼 끝까지 이 세상 갑의 품격을

유지하며 정답을 소유하기 위한 교만함과 무례함으로 성동격서나 권모술수의

방법을 취하므로 인하여

 

원하는 정답은 고사하고 작금의 현실처럼 오히려 이 세상을 혼미하게 미혹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결국 자신이 원하는 정답인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회개를 거부하는 발악이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