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와 한기총의 논리와 이념 충돌/ 백마 탄자
온전한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이나 뜻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로 바로 알지 못하고
부족한 영과 육을 위하여 지금은 우상으로 폄하되고 있는 온갖 신들을
스스로 만들어 의지하는 토속신앙이나 무당들의 놀음에서 진일보하여
논리와 이념을 갖춘 종교를 만들기 위하여 절대로 온전할 수 없는
이 세상 이치란 삼강오륜과 사서삼경인 인을 표적으로 구하는
공자와 맹자 중심의 유교를 비롯하여 윤리도덕인 도덕천을 표적으로
구하는 노자와 장자 중심의 도교와 온전한 마음인 부처를 표적으로 구하는
석가모니 중심의 불교 등의 종교를 만든 것처럼
영과 육이 온전한 창조주 하나님을 표적으로 구하는 예수 중심의 기독교는
각각의 성경기자가 자신의 희망사항을 꿈이나 환상으로 여시아문한 상상의
용인 성경을 이 세상의 유익을 위하여 육이 우선하는 현실적 정치적인 분별과
영이 우선하는 추상적 성공적인 분별로 표절 편집하여 조작한 해몽이나
해석이기에 나오는 수많은 설을 정답으로 미혹하여 세뇌하기 위하여
요한계시록 6장 1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상상의 용인 백마 탄자를 해몽하기
위하여
한기총에서는 육이 우선하는 현실적 정치적인 분별로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부족한 사람의 입장에서 분별함으로 종말의 때에 일어날 현실의 사건으로
흰 말을 탄 자가 무기인 활을 가지고 이미 승리한 후에 다시 이기려고 또
이기려고 발악하기에 이는 예수가 아니라 적그리스도라는 억지 같은 종교적
현실적인 주장 등에 대하여
신천지에서는 영이 우선하는 추상적 성경적인 분별로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부족한 사람의 입장에서 분별함으로 재림의 때에 일어날 영적인 사건으로
계19:11에 나오는 백마 탄 자의 이름이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여
싸우더라 ... 그 옷과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고 기록된 것처럼
백마는 하나님이 도구로 사용하는 천사를 사람이나 말이나 바람이나 구름
등으로 비유하는 것처럼 천사이고, 탄 자는 예수나 예수의 명을 받은
네 생물 중 하나이고, 활은 심판의 말씀이고,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는 것은
초림 때 육으로 이긴 것처럼 재림 때 영으로 이기겠다는 것으로
이런 사실을 사건의 현장에서 이만희가 직접 보고 들었을 뿐 아니라
예수의 영이 임한 택한 자가 되어 어린양의 피와 이를 증거 하는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쳐 이긴 자가 되었다는 드라마 주인공 같은 추상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각자 스스로 하나님의 증인이나 증언으로 착각하여
각자 스스로 죄인과 의인 등으로 분별함으로
각자 자신은 물론 모두를 죄인의 멍에를 메게 하는
무례함인 불의와 불법을 정답처럼 행하고 있지만
온전한 정답은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이나 뜻을 따라
천국과 지옥을 비롯하여 영과 육이나 하늘과 땅은 물론
선과 악이나 음과 양이나 복과 화 등으로 분별하여
원하는 쪽으로 가려고 하거나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이론만 가능한
절대 불가능의 경계선인 중용으로 가려고 하거나
양변을 여의는 동시에 양변이 완전히 융합한다는
이론만 가능한 중도란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있는 자란 여호와의 의미처럼
양변의 경계선이나 양변의 분별도 없고
어느 누구도 간 적이 없지만 위 없이 살아있는
각자 자신만의 온전하고 길을
예수가 십자가 죽음처럼 당당하고 온전한 회개로
부활했다고 하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 같은
온전한 새로운 피조물인 온전한 신비의 연합체로 거듭남으로
한기총과 신천지는 물로
이 세상의 모든 종교나 정치를 비롯하여
어떠한 논리나 이념도 아무런 충돌이 없이
서로의 논리나 이념의 분별이 무의미해지는
온전한 기쁨과 평안인 자유와 행복의
온전한 사랑을 누리는 자유의지의 온전한 만족을
현실의 삶으로 직접 경험하게 되면
자신들의 논리나 이념의 주장이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이나 뜻과는 전혀 무관한
이 세상의 유익인 똥이나 밥 그릇 싸움으로
피조물 스스로 만든 허망한 신기루 논리나 이념을 정답처럼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는 참으로 허망한 인생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