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인 천명과 인생과 사랑이야기

무명과 무지의 본질적 실체와 참사랑의 향연

패스라 2018. 8. 20. 09:40

무명과 무지의 본질적 실체는 나 중심의 살아있는 본능과 본질적

창의력인 생명의 자존감을 따라 보면 그냥 펼쳐져 있는 그대로인

대상을 온전하지 못한 모든 피조물의 입장에서 분별함으로 드러나는

온전한 분별이 절대 불가능한 피조물의 본질적 한계를 무명으로 명명하고

 

연기론의 근본 바탕인 생로병사나 성주괴공이나 생주이멸을 비롯하여

의식주나 일용할 양식 등 절대로 온전하게 극복할 수 없도록 그대로

펼쳐져 있는 온전하지 못한 피조물의 당연한 본질을 두고 분별하여

무명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을 무지로 명명하고 있지만

 

그것은 온전하지 못한 피조물의 본능과 본질적 한계와 본질이기에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온전하게 극복하지 못한 현실의 삶이 반증하고

있는 것처럼 영원한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무명과 무지를 피조물의 수준에서 그렇게 분별하는 이유와 목적은

모든 피조물이 본능과 본질적으로 갈망하는 온전한 꿈의 이념인

천국이나 구원이나 열반이나 유무상생의 경지 등으로 착각한 이념을

따라 꿈꾸는 가물현한 두 번째 꿈인 이고득락 이념의 실상으로

 

온전한 기쁨과 평안인 자유와 행복의 온전한 살롬인 참사랑으로 거듭나

영원히 누리므로 인생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으로 결국 이를 위하여

나 중심의 살아있는 본능과 본질적 창의력인 생명의 자존감을

너 중심의 죽어있는 인위적 창의력인 양심의 자존감으로 둔갑시켜 만든

 

현존하는 모든 철학이나 종교를 비롯하여 학문으로 분별한 빛이 없어

흑암이란 무명과 그 명 즉 빛이란 지식이나 지혜가 없어 무명을 극복하지

못하거나 무명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무지란 이념을 나 중심의 살아있는

본능과 본질적 창의력인 생명의 자존감을 따라 재조명해보면

 

무명에서 말하고 있는 빛은 현실의 빛을 비롯하여 지식이나 지혜로

성경이나 불경 등 경전이나 하나님이나 예수나 부처를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신이나 철학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논리나

이념이나 학문이나 상식 등을 통칭하는 것으로

 

결국 무명의 실상은 현실의 삶이 반증하고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개똥보다 흔하게 널브러져 있는 그런 빛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눈 뜬 장님이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거나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한다고 하는 것처럼

 

피조물의 한계 밖에서 태초부터 우주는 이미 펼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의 한계 안에서 우주를 넘나들며 빛보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고

땅속을 달리며 깊은 바다 속을 누비게 하는 세상의 모든 학문의 지식이나

지혜의 빛을 따라 가물 현한 두 번째 꿈을 진짜 꿈으로 착각하여

 

피조물의 한계 밖에 있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선악과 생명나무 실과를 피조물의 한계 안에서 소유하려는

아담과 하와처럼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려 수명이 늘어나고 과학 기술을

비롯하여 문화와 문명이 발달되고 발전되어도 결과는 그대로인 일뿐 아니라

 

오히려 더 갈급해지는 것처럼 가물현한 무명의 우주를 바로 깨달아

소유하기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려오고 있지만 확인 가능한

것은 겨우 4%뿐이고 96%를 암흑 물질이나 에너지라고 하고 있는 것처럼

결국 아무리 발악해도 영원히 4% 안에서 맴돌게 됨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중에 있다고 표현하고

있는 가물 현한 무명의 본질과 실상이 진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무질서가

아니라 그냥 펼쳐져 있는 것을 온전하지 못한 피조물의 입장에서 그렇게

보인 것이기에

 

여호와처럼 스스로 거듭나지 못하여 온전하지 못한 인간을 비롯하여

천하 만물의 모든 객체의 태초 즉 태어나는 순간의 실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바로 알 때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표현되는 태초의 실상인

 

무명은 천지창조 경우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온전하지 못한 모든 피조물의

한계로 조건과 환경이 새롭게 변화되는 최소의 순간은 언제 어디서

항상 한발 앞선 그림자처럼 공존하고 있기에

 

피조물이 만든 아무리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런

논리나 이념의 처방전 지식이나 지혜인 빛으로는 절대로 온전하게 밝히지

못하고 영원히 4% 안에서 머물고 있는 피조물의 한계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표현되는 태초의 실상인 가물 현한 무명은

천석꾼은 천 가지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 있다고 하는 것처럼

피조물의 지식과 지혜의 빛으로 수명이 늘어나고 문화와 문명이

아무리 발전되고 발달되어도

 

가물 현한 두 번째 꿈처럼 기대와는 달리 꿈꾸는 행복과의 거리가

좁혀지기보다 언제나 그만큼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에 더 불안하고

갈급함을 각자 현실의 삶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고

 

무지는 아무리 발악을 해도 결국 4% 안에 머물게 하는 개똥보다 흔한

그런 지식이나 지혜의 빛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4% 안에만

머물게 하는 온전하지 못한 지식이나 지혜의 빛을 정답으로 착각하여

스스로 선생이 됨으로

 

가물 현한 두 번째 꿈을 현실의 삶으로 경함하지 못한 진짜 꿈으로

착각하여 상구보리 하화중생처럼 온전한 기쁨과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위한 명분과 너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나를 위하여 너를 교육하고 훈련하여 세뇌함으로 영원히 4% 안에

머물게 하는 그런 무례한 오지랖을 말하는 것으로 바로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진짜 정답인 빛처럼 펼쳐지고 있는 무지의 향연들을 보면

 

성경은 온전한 하나님이 온전하지 못한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사

피조물의 한계로 태초의 실상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무명에서

자유하기 위하여 말씀으로 현실의 빛이 있으라고 명하여 그 빛을

비춤으로 질서를 회복하여 좋아했다는 참으로 가물현한 논리와

 

어둠을 무지인 죄라 명명하고 성령으로 동정녀를 잉태시켜 낳았다는

예수가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인 돈과 명예와 권력의 유혹을

진리의 빛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과하자 하나님의 아들로 명명한 후

 

그 예수로 진리의 빛을 이 세상에 비춤으로 모든 죄를 도말했다는 의미로

십자가의 죽음과 3일만의 부활로 완성했다는 억지 같은 논리의 명분을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 해놓고 다시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란

가물 현한 향연을 펼치고 있는 그 빛이 오히려 무지가 되어

 

온 세상에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무명과 어둠의 무지인 십자군 전쟁이나

종교재판을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불의와 불법만 더욱더 강열하게

타오르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자유하지 못하고

영원히 4%안에서 헤매게 하고 있으며

 

불경은 피조물의 한계로 태초의 실상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무명은

가물 현한 연기법을 따라 연기함으로 끊임없이 변화여 당연히 온전한

실상이 없는 제행무상이기에 모든 것도 실체가 없는 제법무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바로 알지 못하는 무지로

 

가물 현한 인과 연을 따라 원치 않는 윤회에 꺼들리는 일체계고에서

자유하기 위하여 모든 고를 멸하려는 고집멸도는 무지의 본질이

무상과 무아임을 바로 알지 못하고 바람이나 구름을 잡으려는 것처럼

 

생로병사나 성주괴공이나 생주이멸을 비롯하여 의식주나 일용할 양식

등을 위한 탐욕이나 화냄이나 어리석음인 탐진치에 의한 것임을

바로 아는 지식과 지혜의 빛으로 해탈하여

 

열반적정에 이르게 하는 빛인 불법을 등불 삼는 법등명과 자신을 등불

삼는 자등명으로만 정진하기 위하여 부처와 조사 등이 나타나면 죽이므로

그 누구나 그 무엇을 의지하거나 귀의하지 말라야 한다고 말해놓고

 

한편으로 제행무상으로 제법무아라고 하면서도 법등명 자등명으로

정진하라고 하거나 어디에도 귀의 하지 말라고 하면서 불법승 삼보

즉 부처와 불법과 승단에 귀의하라고 하는 등 서로 모순이 되는

그 빛이 오히려 무지가 됨에도 불구하고

 

방편도구의 명분으로 합리화하는 억지를 부리고 있음은

세상 모든 처방전의 방편도구나 선생들이 무지였음을 깨달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목숨을 담보한 도전으로 싣달타 스스로 지식과

지혜의 빛을 깨달아 구경각 했다는 것으로 스스로 반증하고 있기에

 

피조물의 한계로 태초의 실상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무명과

무지인 불법승 삼보에 의한 조계종 사건 등 불의와 불법의 악업만

더욱더 강열하게 타오르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자유하지 못하고 영원히 4%안에서 헤매게 하고 있으며

 

공자와 맹자는 피조물의 한계로 태초의 실상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인

무명에서 자유하기 위하여 빛으로 착각한 인의예지신 등의 수많은

논리와 이념들이 정답처럼 보이지만 현실의 삶이 반증하고 있는 것처럼

오히려 그 빛이 무지가 되어

 

피조물의 한계로 태초의 실상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무명과

무지인 인의예지신 등의 윤리 도덕에 의한 불의와 불법만 더욱더

강열하게 타오르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자유하지 못하고

영원히 4%안에서 헤매게 하고 있으며

 

노자와 장자 역시 피조물의 한계로 태초의 실상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인 무명에서 자유하기 원했지만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라고

하는 것처럼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상태라

 

요요라 하거나 가물 현 하고 현하다고 표현한 논리와 이념으로 만든

도경과 덕경을 비롯한 장자 등이 빛인 정답처럼 보이지만 현실의 삶이

반증하고 있는 것처럼 오히려 그 빛이 무지가 되어

 

피조물의 한계로 태초의 실상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무명과

무지인 가물 현한 그들의 논리와 이념으로 오히려 정답에 대한 갈급함만

더하여 정답 없는 미로 속을 다람쥐 쳇바퀴만 돌리게 하고 있을 뿐

어느 누구도 자유하지 못하고 영원히 4%안에서 헤매게 하고 있으며

 

이 땅의 정치도 피조물의 한계로 태초의 실상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인

무명에서 자유하기 위하여 빛으로 착각한 정치를 정답처럼 씨족과 부족은

물론 사사나 왕을 비롯하여 대통령이나 총리 등 온갖 제도들을 통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나 문명 등을 발전과 발달시키며 달려오고 있지만

 

정답의 빛으로 착각한 무지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나 문명 등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도 정답 없는 미로 속을 다람쥐 쳇바퀴만 돌리게 하고 있을 뿐

자신을 비롯하여 어느 누구도 자유하지 못하고 영원히 4%안에서 헤매게

하고 있으며

 

이 세상의 부모나 아무리 대단한 선생들도 피조물의 한계로 태초의

실상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인 무명에서 정답으로 착각하고 있는

세상의 빛으로 얻은 온전한 자유함을 현실의 삶으로 경험하지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이 장에 간다고 거름지고 장에 가는 것처럼 세상의 시루를 따라

온전하지 못한 세상의 빛을 정답의 빛으로 세뇌되어 강요하는

심각한 무례함의 무지로 영원히 4%안에서 헤매는 죄인이나 괴물로

만들고 있음으로 바로 알 때

 

이 세상에 현존하고 있는 철학이나 정치 종교를 비롯한 모든 학문은

너무나 미미하고 부족한 4%를 아는 과정에 나온 논리와 이념으로

온전한 정답의 빛이 아니라 무지이기에 그런 부족한 지식이나 지혜를

통해서는 온전한 참사랑을 절대로 소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온전한 분별이 절대 불가능한 선과 악이나 욕계 색계 무색계를 비롯하여

과거 현재 미래 등으로 분별하여 과거의 추억이나 가물 현한 두 번째

꿈 등으로 피조물의 한계나 본질에서 자유하려고 만든 정답처럼 보이는

아무리 대단한 논리나 이념의 처방전도 무조건 상상의 용으로 무지가

됨으로 바로 알아야

 

그런 무지로 피조물 스스로 온전하지 못한 피조물의 본질과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참으로 용감무쌍한 억지로 절대불가능에 도전하는 무례한

오지랖을 부리므로 인생을 완성할 유일한 기회를 허송세월하기보다

 

피조물의 한계로 태초의 실상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무명이나

탐진치로 표현하고 있는 피조물의 본질에서 온전하게 자유 한 인생의

완성인 온전한 살롬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중에 있어도

하나님의 신은 수면을 운행하고 있다고 살롬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천명이란 이념을 따라 피조물에서 신비의 연합체인 온전한 우리 즉

온전한 기쁨과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참사랑으로 거듭나면

당연히 피조물이 아니기에 피조물의 한계로 태초의 실상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표현하는 무질서의 무명이나

 

탐진치로 표현하는 피조물의 본질은 극복해야하는 장애가 아니라

그냥 그 실체가 온전하여 그대로 바로 볼 수 있거나 온전함으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여 그냥 자연스럽게 그 의미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따라서 가물 현한 두 번째 꿈을 정답으로 착각하여 죽기 전에

마음 편하게 한 번 놀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못하며,

죽음에 다다를 때 까지 무지인 가물 현한 세상의 빛을 정답으로 착각하여

 

문화와 문명의 발전과 발달을 위하여 얼굴에 땀을 흘리는 고통과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는 고통인 저주의 향연을 복의 향연으로 착각하여

오늘도 힘겹게 열심히 펼치다 결국 인생무상을 정답처럼 읊조리며

홀연히 허공 속으로 흩어지며 사라져가기보다

 

천명인 참사랑을 따라 무명과 무지, 우리와 우리들을 분명하게 분별하고

저주의 향연을 정답으로 미혹하는 과거인 내일이나 미래의 신기루 세상보다

지금 바로 여기서 온전한 복의 향연이요 온전한 꿈의 완성인

참사랑의 향연을 현실의 삶으로 직접 경험할 때 비로소

 

어떤 신이나 법이나 이념이나 사람 등 어떤 대상을 의지하거나 귀의하거나,

의지나 귀의하지 않으려는 어떤 수행이나 수련의 노력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생이 완성되어 스스로 자유 함으로 당연히 무명이나 무지의

이념에서 온전하게 자유 한 온전한 살롬인 참사랑의 향연을 현실의 삶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