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마태복음 26장 36-56절 말씀으로 먼저 어제 주신 요한복음 13장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는 말씀은
목교세들이 말하는 것처럼 종의 신분으로 낮아져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와 선생이 되어 씻어 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 인생의 맹목적 순종에 따른 섬김이나 꽹과리 소리 나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으로
이를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분별하라고 주신 이성과 서로 사랑하려고 주신 감성의 조화로 서로 사랑하려고 아직도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는 우리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으로 의롭고 순결하고 착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모습이 되신 후 그것을 믿음과 은혜로 받아 누리면 그것을 우리의 의와 순결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이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그 고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사역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온 땅에 사랑이 넘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죽여 그저 온 땅에 사랑의 시체들로 인하여 악취와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만 진동을 하고 있으며
정말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죄의 권세 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견디어 최후 승리를 소유할 수 있도록 주신 지침서인 요한 계시록의 말씀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금기하던지 아니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할 뿐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우리 스스로 통과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로 주셨지만 이제는 이미 빈 껍질이 되어버린 제사(형식적인 예배), 성전(교회), 제사장(목사), 십일조, 율법(착하고, 구별된 순결한 삶)을 비롯하여 이 세상이 요구하는 섬김과 나눔과 사랑에 매달리는 고난을 요구하는 삶은 오히려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역을 폄하하는 것으로
에베소서 4장에 말하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절대로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 말세의 기간을 견디어 승리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불가능의 도전으로 이를 극복하는 비밀이 바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천국과 이 세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 누리며 서로 사랑하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부활절을 앞두고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말씀 중에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자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고민하고 슬퍼하시며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고 하시며
조금 떨어져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3번을 기도 하신 후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고 하신 후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고 하시자 정말 유다가 군사를 이끌고 체포하려고 하자 이를 막으려는 제자에게 성경의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하여 잡혀 가 주는 것이니 그냥 두라고 하신다.
물론 이 말씀이 참임을 보여주기 위하여 누가복음22/51절에서 제자의 칼에 떨아진 군사의 귀를 낫게 해 주셨지만 제자들은 다 도망을 가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죽을 만큼 고민한 제목이 무엇일까 하는 것과 왜 제자들이 도망을 갔을까 하는 것이다.
먼저 예수님의 고민을 죽음과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이라고 하는 목교세들의 말은 참으로 황당하게도 하나님의 사역을 이 세상의 이성으로 평가한 것으로 그럴듯하지만 말이 안 되는 억지 발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심이 어떠한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무식한 발상이며 사랑이신 하나님을 폄훼하는 발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가룟 유다에 대한 예수님의 애절한 마음으로 받아야 하는데 이는 유다가 도착할 때쯤 세번째 기도를 마치고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보면 절대로 죽음과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체포 당해 가야 하는 것이 성경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한다고 선포하자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간 것은
제자들 역시 그 당시는 이 세상의 이성으로 성경의 말씀을 받았으니 한 여인이 고가의 향유를 깨트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것처럼 당연히 실패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으니 살기 위하여 도망한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힘이 없어 체포 당하는 것이 아니란 말과 그 동안의 훈련 중에 본 기적과 떨어진 귀를 바로 낫게 하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으로 보았으면 도망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부활절로 주신 말씀을 돌아보면 예수님께서 사역의 완성을 위하여 성전 정화가 아니라 성전 정리를 하고 또 목교세들의 말처럼 이 세상에 대하여 지혜롭게 보이는 대답을 하는 선생이나 지도자나 변호사가 아니라 분명하고 확실한 천제증인이 되라고 하시며
또한 이 세상의 가치 기준에 따른 이성으로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하니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분을 내게 하는(사실은 부끄럽게 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으로 하나님을 분별하고 또 주신 감성으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된 다고 하시며
이제는 다시 자신을 위한 섬김과 꽹과리 소리의 사랑으로 미혹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쁨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아무리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도 다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고 서로 사랑함으로 사랑이고 생명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살아있는 사랑으로 영생과 천국을 소유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살아있는 사랑이란 서로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이 모든 조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연합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에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그 살아있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생이나 지도자의 자리로 나가지 말라는 경고와 땅 끝까지 당신의 증인으로 당신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신 명령을 바로 받아 누려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이 천국을 소유하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확실하게 믿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과 연합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아무리 사실과 현실처럼 그리고 태산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또 아무리 진짜라고 큰소리 쳐도 죽음 앞에는 무용지물인 부부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관계인 또 다른 나 인 지체들과 이미 혼인잔치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바라보고
종말을 소망하며 담대하게 누리고 즐기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확인하고 감사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행복해 하는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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