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패스라 2009. 7. 10. 11:56

오늘 묵상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더51-14절 말씀으로 먼저 어제 묵상한 말씀 중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라고 하는 것은

 

모르드개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빙자하고 에스더를 협박하여 본인의 야망과 야욕을 채우는 승부수 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다니엘처럼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당당하게 정면으로 밀고 나간 것이 아니라 속임수를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면 결국 오늘날 목교세들처럼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결국 하나님을 폄훼하는 것이된다.

 

그리고 에스더 역시 믿음이 아니라 모르드개의 협박에 넘어가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고 하는 것도 결국 불안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하여 금식이란 도구를 사용해 보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본인이 살기 위한 승부수일 뿐이다.

 

이처럼 그리고 지금도 목교세들이 신기루처럼 살아질 이 세상의 도구를 위한 승부수를 하나님 빙자하여 도전하며 아무리 좋은 의도나 친절이나 배려나 섬김이나 사랑의 이름으로도 포장을 해도 하나님을 비롯하여 상대방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은 다 꽹과리 소리로 그 안에는 사랑 즉 생명이 없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이 스스로 의로워져 구원을 받아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율법에 온전히 거하므로 전지전능하고 천지 만물의 주인이시며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알아 온전하게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언약인 당신의 몸을 우리 인생의 살수 있는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주신 복음은 결국 구약은 우리 피조물로서 그림이 떡인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도구로 주신 부부나 혈연이나 재물이나 건강 등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을 복이라고 착각하여 실패한 것임을 고백하고 도구를 도구로 인정하는 회개로 도구가 아닌 진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복음 즉 오직 예수로 구원을 받아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라는 것이다.

 

또한 이를 확인해 주기 위하여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그렇게 많이 나온 혈연이나 족보를 비롯하여 도구의 중요성이 살아질 뿐 아니라 오히려 모든 도구를 다 버려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세상의 이성과 감성으로 하나님의 뜻인 복을 평가하면 하나님의 뜻인 복을 두고 천국의 배설물이 하나님의 뜻인 복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세상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된 길인 복이 아닌 배설물을 갈망하는 헛된 삶에 도전하게 된다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분별하라고 주신 이성과 서로 사랑하려고 주신 감성의 조화로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으로 의롭고 순결하고 착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모습이 되신 후 그것을 믿음과 은혜로 받아 누리면 그것을 우리의 의와 순결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은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그 고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사역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온 땅에 사랑이 넘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죽여 그저 온 땅에 사랑의 시체들로 인하여 악취와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만 진동을 하고 있으며 

 

정말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죄의 권세 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견디어 최후 승리를 소유할 수 있도록 주신 지침서인 요한 계시록의 말씀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금기하던지 아니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할 뿐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우리 스스로 통과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로 주셨지만 이제는 이미 빈 껍질이 되어버린 제사(형식적인 예배), 성전(교회), 제사장(목사), 십일조, 율법(착하고, 구별된 순결한 삶)을 비롯하여 이 세상이 요구하는 섬김과 나눔과 사랑에 매달리는 고난을 요구하는 삶은 오히려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역을 폄하하는 것으로

 

에베소서 4장에 말하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절대로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 말세의 기간을 견디어 승리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불가능의 도전으로 이를 극복하는 비밀이 바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천국과 이 세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 누리며 서로 사랑하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이를 위하여 오늘 주신 말씀 중에서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진지라라고 하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자

 

에스더에게 찾아온 이런 행운(?)은 그저 해외 토픽 같은 것일 뿐 그들 한 금식 기도의 응답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과는 전혀 맞지 아니하므로 결국 나의 하나님으로 폄훼하는 불의와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만이 돌아오는 길에 본 모르드개의 무례함에 심히 노함까지 참고 집에 돌아와서 그 친구들과 그 아내에게 왕후 에스더의 잔치 초청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뻐함을 자신의 야욕과 욕망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왕후로서의 자격도 미달이고 속임수로 출발하여 속임수로 끝나는 하나의 사기꾼의 드라마일 뿐이다.

 

이처럼 그리고 지금도 목교세들이 신기루처럼 살아질 이 세상의 도구를 위한 승부수를 하나님 빙자하여 도전하며 아무리 좋은 의도나 친절이나 배려나 섬김이나 사랑의 이름으로도 포장을 해도 하나님을 비롯하여 상대방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은 다 꽹과리 소리로 그 안에는 사랑 즉 생명이 없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목교세들의 불의와 불법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빙자하여 이 세상과 자신을 위한 섬김과 꽹과리 소리의 사랑에 미혹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쁨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아무리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도 다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고 서로 사랑함으로 사랑이고 생명의 본질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살아있는 사랑의 삶으로 영생과 천국의 소유를 확인하고 누리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살아있는 사랑의 삶이란 서로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이 모든 조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연합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그 방법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이 천국을 소유하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확실하게 믿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과 연합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아무리 사실과 현실처럼 그리고 태산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또 하나님을 알아가는 도구로 준 것이기에 아무리 진짜라고 큰소리 쳐도 죽음 앞에는 무용지물인 부부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관계인 또 다른 나 인 지체들과 이미 혼인 잔치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바라보고

 

종말을 소망하며 담대하게 누리고 즐기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확인하고 감사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행복해 하는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