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묵상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1-10절 말씀으로 먼저 어제 묵상한 에스더서의 말씀 중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그 허다한 형제에게 굄을 받고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라고 하는 것은
결국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나라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되어 왕이 직접 그 본토와 바다 섬들로 공을 바치게 하는 등의 절대 권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스스로 이 업적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부림일로 정하는 등 멋있는 인간 승리의 결과를 요셉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으로 포장하면 오히려 이 이야기가 성경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만약 이 이야기가 목교세들의 주장처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면 그 이유와 목적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에 우리들이 이미 묵상한 것처럼 아주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셉의 경우처럼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주류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인간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이 세상에서의 하나의 성공 드라마일 뿐으로 부림일의 주인은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어쩌다 로또 복권에 당첨된 모르드개와 에스더인 것이다
이처럼 이 세상을 소유하기 위한 아귀다툼의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한 것은 목교세들의 말처럼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좋은 신앙과 믿음의 간증이 아니라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답과 결과를 내는 신기루처럼 살아질 이 세상의 일을 우리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고 멋대로 해석하여
아무리 좋은 의도나 친절이나 배려나 섬김이나 사랑의 이름으로도 포장을 해도 하나님을 비롯하여 상대방에게 무례함을 범하는 것은 다 꽹과리 소리로 그 안에는 사랑 즉 생명이 없다는 것을 꼭 명심하여 회개하고 복음으로 천국을 소유하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소유하려고 아귀다툼으로 발악을 하듯이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폄훼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이 스스로 의로워져 구원을 받아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율법에 온전히 거하므로 전지전능하고 천지 만물의 주인이시며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알아 온전하게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언약인 당신의 몸을 우리 인생의 살수 있는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주신 복음은 결국 구약은 우리 피조물로서 그림이 떡인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도구로 주신 부부나 혈연이나 재물이나 건강 등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을 복이라고 착각하여 실패한 것임을 고백하고 도구를 도구로 인정하는 회개로 도구가 아닌 진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복음 즉 오직 예수로 구원을 받아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라는 것이다.
또한 이를 확인해 주기 위하여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그렇게 많이 나온 혈연이나 족보를 비롯하여 도구의 중요성이 살아질 뿐 아니라 오히려 모든 도구를 다 버려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세상의 이성과 감성으로 하나님의 뜻인 복을 평가하면 하나님의 뜻인 복을 두고 천국의 배설물이 하나님의 뜻인 복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세상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된 길인 복이 아닌 배설물을 갈망하는 헛된 삶에 도전하게 된다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분별하라고 주신 이성과 서로 사랑하려고 주신 감성의 조화로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으로 의롭고 순결하고 착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모습이 되신 후 그것을 믿음과 은혜로 받아 누리면 그것을 우리의 의와 순결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은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그 고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사역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온 땅에 사랑이 넘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죽여 그저 온 땅에 사랑의 시체들로 인하여 악취와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만 진동을 하고 있으며
정말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죄의 권세 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견디어 최후 승리를 소유할 수 있도록 주신 지침서인 요한 계시록의 말씀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금기하던지 아니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할 뿐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우리 스스로 통과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로 주셨지만 이제는 이미 빈 껍질이 되어버린 제사(형식적인 예배), 성전(교회), 제사장(목사), 십일조, 율법(착하고, 구별된 순결한 삶)을 비롯하여 이 세상이 요구하는 섬김과 나눔과 사랑에 매달리는 고난을 요구하는 삶은 오히려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역을 폄하하는 것으로
에베소서 4장에 말하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절대로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 말세의 기간을 견디어 승리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불가능의 도전으로 이를 극복하는 비밀이 바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천국과 이 세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 누리며 서로 사랑하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이를 위하여 오늘 묵상 할 말씀 중에서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하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자
그 동안 구약인 에스더서에서 다시 신약인 데살로나가전서로 넘어와 묵상하는데 조금은 혼란스러울 것 같아 구약과 신약을 바라보는 즉 묵상하는 관점을 정리하면
구약은 우리 피조물이 스스로 율법을 완성하여 구원을 이루기 위한 피 눈물 나는 우리 피조물의 도전의 역사를 보여주시며 그 결과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으로 실패의 선언이고
신약은 하나님께서 직접 율법을 완성하신 후 우리 피조물은 그것이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인정하는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승리를 나의 승리로 믿음으로 받아 그것으로 구원을 소유하는 것으로 구약과 달리 과정이 아니라 승리의 열매(새로운 피조물)를 바로 받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은 누구나 고정된 길인 율법이란 하나의 잣대로 평가 함으로 신앙의 모양도 획일되어 우리 스스로 판단하기 용의하여 가면으로 악용하지만 신약은 회개한 후 각자 각각의 믿음으로 구원/승리를 소유하기에 보이는 모양이 획일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삶의 중심이 예수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묵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근거로 오늘 말씀을 묵상해 보면 목교세들의 말처럼 사도 바울이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문제를 지적하기에 앞서서 그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소유한 자들의 대한 기본인 본질에 대하여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다. 즉 그들이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도 본질에서 벗어나면 꽹과리 소리가 된다는 엄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선생이나 지도자가 아니라 증인으로 다가 갔으며
또 너희도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된 것도 우리의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의 증인된 삶의 모습을 보고 된 것이며 너희도 너의 말이 아니라 너의 삶이 바로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정의하며
그 핵심 즉 본질이 바로 장래 노하심(심판)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냉정하고 확실하게 선포함으로 만약 여기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면 그것은 꽹과리 소리란 것으로 결코 칭찬도 격려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목교세들의 불의와 불법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빙자하여 이 세상과 자신을 위한 섬김과 꽹과리 소리의 사랑에 미혹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쁨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아무리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도 다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고 서로 사랑함으로 사랑이고 생명의 본질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살아있는 사랑의 삶으로 영생과 천국의 소유를 확인하고 누리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살아있는 사랑의 삶이란 서로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이 모든 조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연합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그 방법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이 천국을 소유하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확실하게 믿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과 연합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아무리 사실과 현실처럼 그리고 태산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또 하나님을 알아가는 도구로 준 것이기에 아무리 진짜라고 큰소리 쳐도 죽음 앞에는 무용지물인 부부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관계인 또 다른 나 인 지체들과 이미 혼인 잔치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바라보고
종말을 소망하며 담대하게 누리고 즐기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확인하고 감사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행복해 하는 신나는 오늘과 오늘 모임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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