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묵상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역대하4장11-22절 말씀으로 먼저 어제 묵상한 말씀 중 “또 정식을 따라 금으로 등대 열을 만들어 외소 안에 두었으니 좌편에 다섯이요 우편에 다섯이며” 라고 하는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기 때문에 건축 할 하나님의 전은 크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솔로몬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규격 즉 정식에 따라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여 더 크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더 잘 섬기며 더 잘 순종하려고 한 이 전이 오히려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가 되었는데 이는 곧 성전이 도구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질로 왜곡되어 하나님처럼 됨으로 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이시고 공의로 우시며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피조물로서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인 구약인 율법 대신에 새로운 언약인 복음을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소유하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목교세들은 구약의 율법에 따라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성공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결국 신앙 간증이란 이름으로 자화자찬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만
또 반대로 이 세상의 이성과 감성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한 경우 스스로 죄인의 멍에를 뒤집어 쓰고 긍긍되며 벙어리 냉가슴만 태우고 있는데
이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든지 아니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이용하여 배와 야욕을 채우기 위하여 분별하지 아니하든지 결국 구약과 신약을 혼합함으로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폄훼하는 불의와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이 스스로 의로워져 구원을 받아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율법에 온전히 거하여 전지전능하고 천지 만물의 주인이시며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알아 온전하게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고백하자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언약인 당신을 우리 인생의 살수 있는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주신 복음은 결국 구약은 우리 피조물로서 그림이 떡인 절대 불가능의 도전의 역사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도구로 주신 부부나 혈연이나 재물이나 건강 등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을 복이라고 착각하여 실패한 것임을 고백하고 도구를 도구로 인정하는 회개로 도구가 아닌 진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복음 즉 오직 예수로 구원을 받아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라는 것이다.
또한 이를 확인해 주기 위하여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그렇게 많이 나온 혈연이나 족보를 비롯하여 도구의 중요성이 살아질 뿐 아니라 오히려 모든 도구를 다 버려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세상의 이성과 감성으로 하나님의 뜻인 복을 평가하면 하나님의 뜻인 복을 두고 천국의 배설물이 하나님의 뜻인 복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세상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된 길인 복이 아닌 배설물을 갈망하는 헛된 삶에 도전하게 된다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분별하라고 주신 이성과 서로 사랑하려고 주신 감성의 조화로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으로 의롭고 순결하고 착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모습이 되신 후 그것을 믿음과 은혜로 받아 누리면 그것을 우리의 의와 순결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은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그 고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사역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온 땅에 사랑이 넘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죽여 그저 온 땅에 사랑의 시체들로 인하여 악취와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만 진동을 하고 있으며
정말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죄의 권세 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견디어 최후 승리를 소유할 수 있도록 주신 지침서인 요한 계시록의 말씀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금기하던지 아니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할 뿐 아니라
따라서 구약시대에는 우리 스스로 통과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로 주셨지만 이제는 이미 빈 껍질이 되어버린 제사(형식적인 예배), 성전(교회), 제사장(목사), 십일조, 율법(착하고, 구별된 순결한 삶)을 비롯하여 이 세상이 요구하는 섬김과 나눔과 사랑에 매달리는 고난을 요구하는 삶은 오히려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역을 폄하하는 것으로
에베소서 4장에 말하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절대로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 말세의 기간을 견디어 승리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불가능의 도전으로 이를 극복하는 비밀이 바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천국과 이 세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 누리기 위하여 성령님의 도우심과 이끄심에 따라 서로 사랑하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이를 위하여 오늘 묵상 할 말씀 중에서 “후람이 또 솥과 부삽과 대접을 만들었더라 이와 같이 후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하나님의 전에서 하는 일을 마쳤으니” 라고 하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자
솔로몬은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기 때문에 건축 할 하나님의 전은 크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전을 세우고 있지만
일하는 사람인 후람이 오늘 말씀에서 두번이나 솔로몬 왕을 위하여 하나님의 전에서 일을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지금의 교회와 목교세들의 모습이 아닌가
그리고 “지성소의 문과 외소의 문을 금으로 입혔더라” 고 한 것처럼 아무리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포장을 해도 그 속에 사랑 즉 생명이 없으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과 우상이 되어 하나님을 폄훼하는 불의와 불법이 된다.
그래서 사랑이시고 공의로 우시며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피조물로서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인 구약인 율법 대신에 새로운 언약인 복음을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소유하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목교세들은 구약의 율법에 따라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성공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결국 신앙 간증이란 이름으로 자화자찬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만
또 반대로 이 세상의 이성과 감성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한 경우 스스로 죄인의 멍에를 뒤집어 쓰고 긍긍되며 벙어리 냉가슴만 태우고 있는데
이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든지 아니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이용하여 배와 야욕을 채우기 위하여 분별하지 아니하든지 결국 구약과 신약을 혼합함으로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폄훼하는 불의와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목교세들의 불의와 불법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빙자하여 이 세상과 자신을 위한 섬김과 꽹과리 소리의 사랑에 미혹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쁨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아무리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도 다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고 서로 사랑함으로 사랑이고 생명의 본질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살아있는 사랑의 삶으로 영생과 천국의 소유를 확인하고 누리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살아있는 사랑의 삶이란 서로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이 모든 조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연합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그 방법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이 천국을 소유하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확실하게 믿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과 연합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아무리 사실과 현실처럼 그리고 태산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또 하나님을 알아가는 도구로 준 것이기에 아무리 진짜라고 큰소리 쳐도 죽음 앞에는 무용지물인 부부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관계인 또 다른 나 인 지체들과 이미 혼인 잔치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바라보고
종말을 소망하며 담대하게 누리고 즐기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확인하고 감사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행복해 하는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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