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묵상하는 요한복음17장1-10절 말씀 중에서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라고 하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감사하며 이에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 진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묵상한 것처럼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는 것은 율법이나 이 세상의 가치기준에 따른 표적인 외모로 판단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으로 우리 인생의 목적과 사명에 따라 영과 진리의 예배인 증인의 삶을 사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 피조물인 인간이 보고 듣고 느끼며 인식하는 그 모든 것을 통하여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지만 그래도 그보다 우선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임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통하여 보여주시며 하나님의 사역을 온전하고 완벽하게 완성하셨으며
그 모습이 바로 천제 증인의 모습으로 우리 피조물처럼 자신과 남을 알게 모르게 속고 속이며 말로만 “척”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진여의 모습이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인 참인 모습으로 목숨 걸고 취한 그 승리를 부족한 우리들이 소유하여 누리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당신께서 직접 우리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어 주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뿐만 아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고 하시며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한 것처럼 세상이 당신처럼 우리를 박해하겠지만 그 결과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고 하시며 최후 승리를 완벽하게 보장해 주시니 이 또한 얼마나 멋있고 감사한가
그리고 이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 바로 피조물이 죽어야 할 죄목으로 회개의 핵심이지 목교세들과 이 세상이 말하는 이 세상의 법이나 규정을 어긴 것이 죽어야 할 죄목도 회개의 핵심도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며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이 사실에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완성한 자가 없다면 그래도 변명의 의지는 있겠지만 당신께서 직접 말씀해 주셨고 또 지금까지 아무도 못한 그 일을 온전하고 완벽하게 완성하는 것을 직접 우리들이 직접 목도하게 하였으며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아와 또 하나님을 본 것임에도 이를 믿지 않는 것은 미워하는 것이고 거부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포하심을 깊이 명심하여
아직도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이 세상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겠다고 하거나 해야 한다고 하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폄훼하는 불의와 불법을 빨리 멈추고 서로 사랑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언어와 문자 그리고 보여지는 우리의 모습은 참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편임에도 그 자체가 참인 것처럼 불교에서 말하는 선병에 걸려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방편보다 그 방편을 통하여 보아야 하는 참을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함을 명심하고 다시 자신과 이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말하는 섬김이나 사랑이나 봉사를 비롯하여 무소유 정신은 멋있고 대단하게 보이지만 예수님께서 말하는 서로 사랑하는 온전한 방법도 그 사랑도 아니고 또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과 무아의 경지도 방법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앙에서 말하는 무소유 정신이란 소유하는 것을 피하여 소유하지 아니하려고 발악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 내가 아님을 분명하게 알고 그것을 인정하는 청지기의 삶을 사는 것이 바른 무소유의 정신이고 천제증인 삶을 사는 것으로 소유에 대한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헛된 이 세상을 보고 두려워하거나 놀라 실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보여주시는 그림인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표적인 외모로만 알지 처음이고 마지막이신 근본이고 참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또 우리들을 위하여 그런 시련의 때를 당하면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하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겠는데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할 것이라고 하시며
죄에 대하여라 함은 당신께서 하신 말씀인 바로 당신을 믿지 않는 것이며 의에 대하여라 함은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으로 십자가의 사역을 온전하고 완벽하게 완성한 것이며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신기루처럼 사라질 헛되고 헛된 세상임이 당신의 부활로 온전히 드러나는 최후 심판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리고 이어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이라고 하면서 보여주시는 그림은 이미 다 완성된 것으로 보아야지 아직도 기다리는 심정으로 보면 전혀 다른 뜻이 된다.
따라서 지금은
첫째,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는 말씀처럼 성령님의 이끄심에 따라 각자의 모양으로 가야지 삯꾼 목자인 목교세들의 주장을 따라가면 안 된다.
둘째,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고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은 성령님의 몫이고 또 성령님은 오직 우리에게 예수님만을 보여주시지 이세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셋째,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은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는 말씀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는 말씀이 다 이루어졌음을 믿고 누리기 위하여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는 말씀에 따라 감사하는 천제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너무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많이 대대손손 구하고 또 구했는데 왜 지금까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것일까 이를 혹시 우리들이 기도할 때 하는 표적으로 이미 주문이 되어버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기보다 율법을 의지하여 스스로 구하였지만 받을 수 없어 실패하였고 지금은 당신께서 그 율법을 완성하여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 주셨으니 율법을 의지하지 말고 바로 당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즉 회개하고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인 당신의 몸으로 지어져 구하면 받게 되어 기쁨이 충만해 진다는 말씀으로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하며 우리 신앙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핵심의 말씀이며
또 그 동안 목교세들에 의하여 당신을 우리의 대제사장과 중보자로 세뇌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그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는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고 신분변화로 우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이다.
그리고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며 최후 승리자로 보장해 주시니 정말 무한 감사밖에 다름 말을 도무지 할 수 없게 하시며
이 모든 사역의 핵심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라고 하시는 것처럼 우리들이 영생 즉 천국을 소유하여 누리는 것이고 영생 즉 천국은 바로 우리들이 묵상하고 있는 것처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라고 분명하게 인을 처 주시니 열린 입을 다물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라고 분명하게 말씀함에도 아직도 목교세들이 하나님을 빙자하여 이 세상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한다고 미혹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때문에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역을 우리들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으로 평가하면 그것이 바로 또 다른 표적인 외모가 됨을 명심하여 공의로운 판단을 할 때 만이 예수님의 양이 되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게 되는데 그러면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심을 굳게 믿어 감사하고 즐거워하며 모든 것을 누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참도 아니고 영원하지도 않는 이 세상의 것에 초점을 맞추어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스스로의 행위로 의인이 되어 그 복을 누리겠다는 불가능에 도전하기 위하여 혼란과 혼돈과 고난 속으로 빠져 방황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아직도 목교세들에게 미혹되어 이 세상의 이성과 감성에 따른 표적인 외모로 판단하며 믿음 없어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확실하게 대답하며 갈까 말까 저울질하며 양다리를 걸치려는 비겁함에서 빨리 깨어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는 말씀을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과 사역을 빙자하여 이 세상의 요구에 따라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표적을 쫓는 불의와 불법의 삶을 빨리 멈추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영과 진리의 예배인 증인을 삶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소유하고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또 목교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우리들을 가로막는 이 세상의 질고를 잘 믿고 순종하면 해결해 주겠다는 달콤한 사탕이 아니라 이 세상의 이성과 감성에 따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표적을 쫓고 있는 우리들의 실체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임도 분명하게 알아
표적과 기사를 쫓는 예배인 율법에 따른 인위적인 착한 삶으로는 어쩌다 육신의 질고는 잠시 쉼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절대 선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악한 일로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영생의 그 복은 절대로 소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결국 이 세상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폄훼하며 착함을 추구하는 또 다른 표적인 법과 잣대를 만들게 되고 그것이 바로 지금의 우리들이 또 다른 표적을 쫓는 삶이 됨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심판의 사역은 우리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참으로 의로운 것임을 알고 영과 진리의 예배인 증인의 삶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한 사람도 성공하지 못한 표적인 이 세상의 이성과 감성인 외모로 판단하며 예수님을 찾고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피조물임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이성과 감성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여 누리고 있는지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한다
따라서 회개하고 복음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착한 행실을 비롯하여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그저 받아 감사하며 모두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축제의 삶을 각자 인생의 때가 찰 때까지 기쁨으로 누리면 됨을 명심하여
이 세상의 이성과 감성에 따른 우리들의 생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판단하여 스스로 선생이 되고 주체가 되어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겠다고 또 무엇을 해야 한다고 나팔을 불고 꽹과리 소리를 울리며 미혹함으로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불의요 불법으로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 되고 또 폄훼하는 것이 되어 결과적으로 스스로 멸망할 뿐 아니라
이 세상을 미혹하여 중심을 잃게 하고 점점 혼미해 가게 하고 있음과 또 우리들이 아직도 이런 피조물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이 당연함에도 그런 세상의 중심을 잡겠다는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각자가 자신의 본질을 알고 스스로 먼저 중심을 잡는 것이 우선으로 이것이 바로 회개이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나와 우리 자신의 잔이 이미 넘치고 있음에도 이를 모르고 아직도 이 세상이 요구하는 자신의 욕망의 잔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괴로워하며 기쁨을 쓰레기 통에 버리고 슬픔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만약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래도 하나님께 매달려야 살길이 있지 자신의 생각과 아집에 빠져 스스로 답을 찾으려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은 바로 멸망이요 사망임을 알아야 한다.
이에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주신 구원과 자유는 이 세상의 어떠한 조건이나 환경으로도 절대로 손상할 수 없는 온전하고 완벽한 것으로 우리가 다시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함으로 확인하려고 하는 불가능에 도전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사역을 폄훼하는 불의와 불법임을 알고
천제 증인으로 이미 확정된 구원의 결과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믿고 누리며 때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지 그 때를 우리 스스로 확인하기 위하여 발악하는 것이나 또 믿지 못함을 믿는 척하기 위하여 벌거숭이 임금님 같은 모습으로 참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불가능의 도전이며 하나님의 사역을 폄훼하는 불의와 불법이 될 뿐 아니라
서로 사랑한다는 것도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믿고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담대하게 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누리기보다 이 세상의 이성과 감성인 외모로 판단하려는 유혹에 넘어지면 승리의 기쁨 대신에 불안함과 조급함으로 결국 실족하게 됨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23장에서 피조물인 우리가 선생이 되면 화가 있다고 경고 하시며 오직 천국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한 말씀을 깊이 명심하고 회개하고 복음으로 구원 받은 크리스천들은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이 남과 또 그 형통함과 아름다움이 너무나 대단하고 찬란하여 그 영광으로 곡식은 청년을, 새 포도주는 처녀를 강건하게 하리라고 한 것처럼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인 나는 이미 그렇게 되었음은 믿음으로 바라보고
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작정하신 재앙인 심판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내리지만 그것이 우리들에게 오히려 은혜요 복임을 알아 두려워하기보다 감사하게 받아 누려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하고 오직 성령님의 도움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함을 분명하게 알고 빨리 우리들은 힘과 능력으로 하겠다고 하는 불가능의 도전을 멈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믿음으로만 보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보다 우리 눈에 보이고 잡힐 것 같은 이 세상의 이성과 감성인 외모로 판단하려고 불가능에 도전하면 그것이 바로 도둑과 여호와의 이름으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 곧 선생이 되어 심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기듯이 우리의 죄악을 온전히 제거해 버린 후 아름다운 옷을 입힌 것처럼 구원을 완성해 주셨음을 확실하게 믿고 이제는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여 구원받은 우리의 삶을 누리라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성경을 통하여 보여주고 들려주시는 말씀의 이유와 목적이 누구든지 율법에 온전히 거하여 최후 승리자가 되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의 이성과 감성으로 보면 대단한 신앙의 선배들을 따르라는 것도 아니고
또 목교세들과 이 세상이 진리처럼 나팔을 불고 있는 거룩함과 착함을 비롯하여 교육, 환경, 성경공부, 기도, 섬김, 봉사, 나눔 등 결국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불가능의 외부조건인 이 세상의 삶에 도전하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최초 피조물인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보여준 것처럼 피조물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바로 그 유혹이 우리 피조물의 근본적인 문제이고 또한 한계이며 실체임을 보여 주시며
솔로몬의 그 깊은 탄식의 고백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성공은 신기루처럼 살아질 헛되고 헛된 것이며 또 잠깐의 성공이지 영원하고 온전한 승리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목사와 자칭 신앙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배와 욕망을 위하여 이러한 말씀의 본질을 왜곡하고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기복신앙으로 넘어지게 하거나 다시 율법(외모)에 도전하게 함으로 생명의 복음을 빙자하여 죽음으로 이끄는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한 부끄러운 짓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하여 끝임 없이 보여 주시고 들려 주시는 또 하나의 이유와 목적은 아직도 깨닫지 못한 나와 우리들이 원하는 복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복이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한 복임을 말하고 있으며
또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선함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려고 해도 그 중심까지 즉 절대로 완벽하고 온전하게 행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피조물의 또한 실체요 한계임을 고발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패역하고 답이 없는 우리 피조물의 실체와 한계를 보여 주시고 이것으로 아무 변명을 할 수 없게 한 후 심판으로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암처럼 웅크리고 있다 결국 멸망으로 이끌어 갈 달콤하게 포장된 유혹과 출구가 없는 미로에서 방황하는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직접 우리 인생의 길이 되어 주신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것임을 알 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질 헛된 이 세상의 것에 감사의 초점을 맞추어 황당하게도 그것을 복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이 세상을 미혹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하며 안타깝다.
따라서 우리들이 이런 목사와 자칭 지도자들의 불의와 불법에 미혹되어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들이 추구하고 있는 복의 실체를 깊이 묵상하여 분별하고 또 선생이 되지 말고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또 날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는 예수님의 질문에 항상 응답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꼭 명심 할 것은 우리들이 성령님의 도우심에 따라 회개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된 나의 잔은 이미 넘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보고 확실한 증거를 삼아 현재의 삶에 만족해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천제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족함을 모르고 항상 목마름과 갈증으로 신기루처럼 사라질 답이 없는 이 세상의 것으로 답을 찾아 위로를 받으며 증거를 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명하신 피조물의 본질과 목적을 놓치고
오히려 하나님을 빙자하며 또 자신들의 기득권과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이 세상의 이성과 감성으로 상대방을 저울질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하여 자신과 이 세상을 미혹하며 그것을 찾아 광야인 이 세상으로 달려가면 그 끝은 항상 멸망으로 실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을 통하여 흠 없이 온전하게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에 스스로 온전히 순종한 의인이 한 사람도 없다고 선언한 것은 우리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불가능의 도전임과 또 잠깐의 성공이 영원한 승리가 되지 못하는 것은 반증해 주고 있는 것임을 꼭 명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역한 우리 피조물의 마음의 중심에는 언제나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보기보다 이세상을 좀더 좋은 조건으로 살기 위하여 우리 눈에 보이는 나의 하나님으로 폄훼하여 달콤할 것 같은 이 세상의 유혹에 넘어져 이 불가능하고 패역한 도전을 계속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사역을 폄훼할 뿐 아니라
일시적인 성공을 온전하고 완전한 승리처럼 복이라고 본질을 왜곡하여 미혹하며 이 세상에서 참 빛을 찾아 방황하는 이에게 맞춤형 빛과 소금이 되는 증인이 되기보다 그저 신기루처럼 사라질 이 세상의 또 다른 빛과 소금인 선생이 되기 위한 욕망과 유혹인 외모로 끝없이 서로 비교하며 상대적 우위에 서려고 발악을 하고 있지만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다윗과 솔로몬이나 바울과 베드로를 비롯하여 어느 누구의 길도 우리 피조물 스스로 율법에 온전히 거하여 구원을 이루게 하는 온전한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 세상의 이성과 감성으로 접근하여 그 속에 사랑 즉 생명이 없으면 그것은 결국 살리는 젖으로 삶아 죽이는 것처럼 오히려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인 우상으로 하나님을 폄훼하는 불의와 불법이 되어 멸망의 길로 이끌어가는 것임을 명심하고
사랑이시고 공의로 우시며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피조물로서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인 구약인 율법을 우리들을 대신하여 온전하게 완성하신 새로운 언약인 복음을 회개하고 믿어 영원 불변의 온전한 구원을 소유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요 우리 피조물의 목적이요 사명임을 확실하게 믿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성공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미혹하며 율법과 교회와 목사와 복이란 이름으로 천국의 배설물을 붙잡고 본질을 왜곡하고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결국 자신의 자랑인 무례함을 신앙 간증이란 이름으로 자화자찬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음을 분별하고
또 반대로 이 세상의 이성과 감성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한 경우 스스로 죄인의 멍에를 뒤집어 쓰고 벙어리 냉가슴을 태우듯이 전전긍긍하며 하나님께서 이미 완성했음에도 불하고 아직도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궤를 보관하는 하나님의 전을 만들기 위하여 발악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든지 아니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이용하여 배와 야욕을 채우기 위하여 분별하지 아니하든지 결국 구약과 신약을 혼합하여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폄훼하는 불의와 불법을 빨리 멈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이 스스로 의로워져 구원을 받아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율법에 온전히 거하여 전지전능하고 천지 만물의 주인이시며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알아 온전하게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고백하자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언약인 당신을 우리 인생의 살수 있는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주신 복음은 결국 구약은 우리 피조물로서 그림이 떡인 절대 불가능의 도전의 역사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도구로 주신 부부나 혈연이나 재물이나 건강 등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을 복이라고 착각하여 실패한 것임을 고백하고 도구를 도구로 인정하는 회개로 도구가 아닌 진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복음 즉 오직 예수로 구원을 받아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라는 것으로
이를 확인해 주기 위하여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그렇게 많이 나온 혈연이나 족보를 비롯하여 도구의 중요성이 살아질 뿐 아니라 오히려 모든 도구를 다 버려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세상의 이성과 감성으로 하나님의 뜻인 복을 평가하면 하나님의 뜻인 복을 두고 천국의 배설물이 하나님의 뜻인 복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세상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된 길인 복이 아닌 배설물을 갈망하는 헛된 삶에 도전하게 된다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분별하라고 주신 이성과 서로 사랑하려고 주신 감성의 조화로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으로 의롭고 순결하고 착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모습이 되신 후 그것을 믿음과 은혜로 받아 누리면 그것을 우리의 의와 순결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은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그 고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사역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온 땅에 사랑이 넘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죽여 그저 온 땅에 사랑의 시체들로 인하여 악취와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만 진동을 하고 있으며
정말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죄의 권세 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견디어 최후 승리를 소유할 수 있도록 주신 지침서인 요한 계시록의 말씀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금기하던지 아니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할 뿐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우리 스스로 통과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로 주셨지만 이제는 이미 빈 껍질이 되어버린 제사(형식적인 예배), 성전(교회), 제사장(목사), 십일조, 율법(착하고, 구별된 순결한 삶), 가정을 비롯하여 이 세상이 요구하는 섬김과 나눔과 사랑에 매달리는 고난을 요구하는 삶은 오히려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역을 폄하하는 것으로
에베소서 4장에서 말하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절대로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 말세의 기간을 견디어 승리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불가능의 도전으로 이를 극복하는 비밀이 바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천국과 이 세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 누리기 위하여 성령님의 도우심과 이끄심에 따라 서로 사랑하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목교세들의 불의와 불법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빙자하여 이 세상과 자신을 위한 섬김과 꽹과리 소리의 사랑에 미혹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쁨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아무리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도 다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고 서로 사랑함으로 사랑이고 생명의 본질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살아있는 사랑의 삶으로 영생과 천국의 소유를 확인하고 누리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살아있는 사랑의 삶이란 서로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이 모든 조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연합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그 방법은 오직 예수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이 천국을 소유하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확실하게 믿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과 연합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아무리 사실과 현실처럼 그리고 태산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또 하나님을 알아가는 도구로 준 것이기에 아무리 진짜라고 큰소리 쳐도 죽음 앞에는 무용지물인 부부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관계인 또 다른 나 인 지체들과 이미 혼인 잔치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바라보고
종말을 소망하며 담대하게 누리고 즐기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확인하고 감사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행복해 하는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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