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묵상하는 사도행전9장23-43절 말씀 중에서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하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감사하며 이에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 진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묵상한 것처럼 성령의 권능을 외모로 판단한 것을 이 세상의 이성으로 보면 대단하고 멋있게 보이지만 그것은 복음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것일 뿐 아니라
복음은 진리이고 참 그 자체이기에 결코 우리 피조물로서는 그 본질을 절대로 훼손할 수 없기에 이천 년이 지난 지금도 아니 영원히 온전함 그대로 우리를 반겨주시는 것이며
지금 우리들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당신께서 하나님의 사역을 온전하게 완성하였기에 이를 위한 또 다른 순교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증인이 필요하기에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순교자가 아닌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삶을 위하여 특별하게 택한 그릇인 바울의 삶은 바울의 삶이고 역할이지 우리들이 따라야 할 삶도 역할도 아닐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증인의 삶이 아님을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바울은 특별하게 주님으로부터 직접 주님의 이름을 온 세상에 전하는 특명을 부여 받았기에 그러한 삶을 살았지만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의 삶을 살라는 명령을 받은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도 사도들처럼 자신의 역할을 외모로 판단하여 우리들도 자신의 길을 따라야 하는 것으로 심각하게 착각을 했을 뿐 아니라 목교세들은 이를 교묘하게 빙자하여 아주 당당하게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있지만 그것은 예수가 아닌 바울이나 사도들의 삶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일 뿐인데 이를 오늘도 말씀으로 확인해주고 있는데 보자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바나바의 도움으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담대하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음에도 예루살렘 사람들이 사도는 두고 사울만 죽이려고 한 것이나
또 이를 피하려고 사울을 다소로 보내자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있어 수가 더 많아 졌다는 것은
모두가 성령의 권능을 외모로 판단한 결과이며 기득권 싸움임을 이어진 기적을 행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주를 믿는다고 했지만 그것 역시 성령의 권능을 외모로 판단한 것임으로 증거하고 있다.
때문에 누구라도 성령의 권능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공의로 판단하여 죄와 의와 심판과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아는 것에 사용하지 않고 외모의 판단에 따라 이 세상을 위하여 많은 기적과 이적을 위해 사용하면
당연히 세상의 칭송을 받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고 또 이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전혀 언급이 없는 목사나 장로나 집사 등의 직분을 만들어 증인을 빙자한 말로만 순교자인 엉터리 선생들을 양성하고 있는데
그것을 외모로 보면 모세가 각각의 부장을 만들어 관리한 것처럼 효과적이고 지혜롭게 보이지만 만약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의 권능을 공의로 판단했다면 전혀 불필요한 제도이기에 불의와 불법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있는 짓이 불법인줄도 모르고 예수님을 위하여 말씀을 외모로 판단하여 열심히 일하여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줄 알고 있다가 마지막 날 예수님께 외면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말씀은 외모로 판단하여 스스로 의로워지는 불가능에 도전하기 위하여 베드로나 바울이나 스데반을 비롯하여 외모인 이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너무나 대단한 신앙의 선배들을 본 받아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처럼 대단한 인생도 성령을 외모로 판단하여 사용하면 오히려 하나님을 빙자하여 악을 행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고 그들을 본받기 위하여 발악을 하며 악을 쌓기보다 성령님께서 알게 하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달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성령의 권능과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의 본질을 외모로 판단함으로 왜곡 변질되어 그 결과가 바로 우리들이 이미 경험한 이단이라고 하는 종말론자들의 모습이고 또한 이 세상의 조직이나 공동체보다 더 부정과 부패와 무질서로 오히려 세상의 지탄을 받은 교회와 종교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성령의 권능을 외모로 판단하여 병 고침을 비롯하여 기적과 이적을 위하여 사용하면 착한 일로서 이 세상의 칭송을 받겠지만 선생이 되지 말고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초능력의 선생과 심판 자로 군림하며 순종을 강요하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뿐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문자대로 판단하여 최후 심판의 공포분위기까지 조성함으로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가 아니라 외모로 판단하여 변질 왜곡된 교회의 모습 일뿐이다
때문에 아직도 사람들을 미혹하여 초대 교회로 돌아가지며 나팔을 불며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는 목교세들의 미혹과 유혹에서 빨리 깨어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와 복음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들은 크리스천의 정체성과 초대교회의 허구에서 벗어나 성령님께서 위로하고 인도하시는 교회인 천제증인으로 빨리 회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교회란 틀로 포장하여 세상의 칭송을 받기 위하여 발악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도구로 주었지만 이미 완성되어 빈 껍질이 된 구약의 요소들인 율법, 성전, 십일조, 안식일, 예배, 기도를 비롯하여 스스로 의로워지기 위하여 사랑이나 섬김이나 나눔이나 착함을 비롯하여
부부나 혈육의 관계나 제도가 아직도 구원의 조건이나 자격처럼 나팔을 불며 또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는 것이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는 불의와 불법을 멈추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나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은 외모인 그런 세상적인 모양이나 자격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천국의 증인의 삶을 사는 것으로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의 묵상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전인 교회요 예배와 기도와 찬송이며 율법의 완성으로 이미 의인으로 확증된 것이기에 지금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함으로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여 그것을 누리는 천국의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 피조물의 사명이요 목적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외모로 판단하여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목교세들의 불의와 불법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빙자하여 이 세상과 자신을 위한 섬김과 꽹과리 소리의 사랑에 미혹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쁨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외모가 아닌 공의로 판단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아무리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도 다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고 서로 사랑함으로 사랑이시고 생명의 본질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살아있는 사랑인 증인의 삶으로 영생과 천국의 소유를 확인하고 누려야 한다.
그리고 그 살아있는 사랑의 삶이란 서로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이 모든 조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연합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그 방법도 역시 오직 예수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이 천국을 소유하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확실하게 믿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과 연합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아무리 사실과 현실처럼 그리고 태산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또 하나님을 알아가는 도구로 준 것이기에 아무리 진짜라고 큰소리 쳐도 죽음 즉 심판 앞에는 무용지물인 부부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관계인 지체들과 이미 혼인 잔치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바라보고
이 세상을 누리고 즐기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확인하고 감사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행복해 하는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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