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묵상하는 사도행전20장1-12절 말씀 중에서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고 하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감사하며 이에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 진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묵상한 것처럼 베드로나 스데반이나 바울을 비롯하여 그 어떤 피조물도 성령의 권능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공의로 판단하여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아는 것에 사용하지 않고
외모로 판단하여 이 세상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많은 초능력을 발휘하는데 사용하면 당연히 세상의 칭송을 받게 됨으로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고 또 이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전혀 언급이 없는 목사나 장로나 집사 등의 직분을 만들어 증인을 빙자한 말로만 순교자인 엉터리 선생들을 양성할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은 구약시대에 모세가 각각의 부장을 만들어 무리를 효과적으로 관리한 것처럼 지혜롭게 보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의 권능을 공의로 판단했다면 전혀 불필요한 제도이기에 불의와 불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짓이 불법인줄도 모르고 예수님을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여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줄 알고 있다가 마지막 날 예수님께 경고하신 외면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베드로가 초대 교황의 자리에 오르는 등 달콤하지만 사실은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한 것으로 이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하여 너무나 엄청난 대가를 지금도 지불하게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천국이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한 것으로 천주교가 하나님을 빙자하여 전 세계를 통합관리 하는 등 모두가 부러워하는 힘을 소유하자 이를 개혁하기 위하여 나온 개신교 역시 이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지역이 아니라 이제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가는 초대형교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것으로 인하여 지금 우리가 영접한 성령님께서 알게 하신 죄와 의와 심판이 얼마나 은혜롭고 감동적이며 감사한지 온 세상과 온 우주를 다 준다고 해도 결코 바꾸지 않을 만큼 멋진 복임을 더욱더 분명하게 알게 하시고 누리게 하기 위하여
이 세상의 시각인 외모로 보면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는 등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 대단한 바울이 말씀에 잘 순종하여 그런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택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한 것처럼 택한 바울을 통하여 당신을 계획을 온전하게 이루기 위하여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임을 분명하게 알도록 보여주시는 말씀을 묵상해 보면
성령의 권능을 외모로 판단함에 따라 오늘도 도망자가 되어 잠시 머문 그곳에서 그 주간의 첫날에 무리가 떡을 떼려고 모였는데 바울은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말씀을 날이 새기까지 강론을 하였는데
듣는 중간에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다 않아 듣다가 너무 오래하자 졸다 삼층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바울이 내려가 보니 기절했다 깨어 났는지 하여튼 그가 살아 났는데 사람들이 살아난 그 청년을 보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그림을 두고
목교세들은 억지로 초대 교회의 모습과 일요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지금의 교회 모습과 일치시켜 자신들을 합리화 하고 정당화하는데 사용하며 죽은 자를 살리는 대단한 바울로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바울은 불안하여 밤을 세워 말씀을 강론하지만 그리고 인하여 청년이 떨어져 죽을 뿐 아니라 바울이 강론한 말씀보다 죽은 청년이 살아난 것으로 오히려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것을 결국 그 위로는 외모에 따른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 주시며
우리 인생의 유일한 구원의 길은 외모로 본 그 어떤 길이나 사람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유일한 길임을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성경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말씀은 외모인 이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너무나 대단한 베드로나 바울이나 스데반을 비롯하여 신앙의 선배들을 본 받아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처럼 대단한 인생도 성령을 외모로 판단하여 사용하면 오히려 하나님을 빙자하여 악을 행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고 그들을 본받기 위하여 발악을 하며 악을 쌓기보다 성령님께서 알게 하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깨달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권능과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의 본질을 외모로 판단함으로 왜곡 변질되어 그 결과가 바로 우리들이 이미 경험한 이단이라고 하는 종말론자들의 모습이고 또한 이 세상의 조직이나 공동체보다 더 부정과 부패와 무질서로 오히려 세상의 지탄을 받은 교회와 종교단체임에도
아직도 성령의 권능을 외모로 판단하여 병 고침을 비롯하여 기적과 이적을 위하여 사용하면 이 세상의 착한 일로서 세상의 칭송을 받겠지만 선생이 되지 말고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초능력의 선생과 심판 자로 군림하며 순종을 강요하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뿐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문자대로 판단하여 최후 심판의 공포분위기까지 조성함으로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가 아니라 외모로 판단하여 변질 왜곡된 교회의 모습 일뿐이다
때문에 아직도 사람들을 미혹하여 초대 교회로 돌아가지며 나팔을 불며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는 목교세들의 미혹과 유혹에서 빨리 깨어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와 복음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들은 크리스천의 정체성과 초대교회의 허구에서 벗어나 성령님께서 위로하고 인도하시는 교회인 천제증인으로 빨리 회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교회란 틀로 포장하여 세상의 칭송을 받기 위하여 발악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도구로 주었지만 이미 완성되어 빈 껍질이 된 구약의 요소들인 율법, 성전, 십일조, 안식일, 예배, 기도를 비롯하여 스스로 의로워지기 위하여 사랑이나 섬김이나 나눔이나 착함을 비롯하여
부부나 혈육의 관계나 제도가 아직도 구원의 조건이나 자격처럼 나팔을 불며 또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는 것이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는 불의와 불법을 멈추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나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은 외모인 그런 세상적인 모양이나 자격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천국의 증인의 삶을 사는 것으로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의 묵상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전인 교회요 예배와 기도와 찬송이며 율법의 완성으로 이미 의인으로 확증된 것이기에 지금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함으로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여 그것을 누리는 천국의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 피조물의 사명이요 목적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외모로 판단하여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목교세들의 불의와 불법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빙자하여 이 세상과 자신을 위한 섬김과 꽹과리 소리의 사랑에 미혹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쁨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감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외모가 아닌 공의로 판단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아무리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도 다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고 서로 사랑함으로 사랑이시고 생명의 본질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살아있는 사랑인 증인의 삶으로 영생과 천국의 소유를 확인하고 누려야 한다.
그리고 그 살아있는 사랑의 삶이란 서로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이 모든 조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연합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그 방법도 역시 오직 예수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이 천국을 소유하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확실하게 믿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과 연합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아무리 사실과 현실처럼 그리고 태산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또 하나님을 알아가는 도구로 준 것이기에 아무리 진짜라고 큰소리 쳐도 죽음 즉 심판 앞에는 무용지물인 부부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관계인 지체들과 이미 혼인 잔치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바라보고
이 세상을 누리고 즐기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확인하고 감사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행복해 하는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
'이런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0) | 2010.06.28 |
---|---|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0) | 2010.06.27 |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0) | 2010.06.25 |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0) | 2010.06.24 |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0) | 2010.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