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패스라 2012. 4. 6. 10:26

오늘 묵상하는 사도행전 91~43절 말씀 중에서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허락된 구원이 얼마나 귀하고 충격적인 감동임을 잘 알아 감사하므로 소유하여 누리는 천국의 증인들이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사도행전의 서두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의 승천을 기준으로 승천 이전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 복음서로 사도행전은 승천 이후의 사건을 기록한 것임을 말하고 있지만 문제는 승천으로 표현된 것도 복음의 무지로 복음을 외모로 판단한 것이고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기록한 것을 우리들은 참으로 믿고 있지만 이것도 복음의 무지로 복음을 외모로 판단한 것으로 복음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의 실체는 피조물의 불완전한 부활이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절대로 온전하게 알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그 무엇으로 피조물이 아니라 온전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예수의 사역은 그 무엇인 복음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스스로 회개하고 그 온전한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직접 우리들에게 그 복음과 그것을 소유하여 누리는 증인의 모본을 보여주는 최고의 몽학 선생으로 증인이 되는 것이기에

 

승천이나 부활은 그것으로 외모로 판단한 것으로 그 자체를 참으로 알고 몽학 선생인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는 종교가 되면 영원히 복음으로부터 멀어져 실족한다는 사실을 바로 알 때

 

복음서 즉 승천 이전에는 예수가 우리들에게 당신이 바로 그 복음의 몽학 선생인 증인이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택한 그들을 비롯하여 성경기자는 그 예수를 하나님을 아들로 착각하여 표적으로 구하므로 종교가 되었고

 

사도행전을 비롯하여 승천 이후에 기록된 것은 그 종교를 위하여 택한 그들과 바울 등을 그 예수의 제자 또는 사도로 미혹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으로 이는 복음의 무지로 택한 그들에게 천국을 보여주고 또 증거하도록 예수께서 주신 권능과 오순절 날 오신 성령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음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복음으로 말하고 있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령의 역사는 오직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그렇게 되면 그렇게 대단하게 보이는 모든 권능의 역사들이 바로 천국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신기루임을 바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수께서 주신 권능은 기자들이 말하는 성령 충만이나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로 표현된 것으로 결국 오순절 날 보여준 그림은 회개 없이 성령을 받으려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현장이고, 또 종말과 심판의 분위기로 주신 권능을 역동적으로 역사한 현장으로 바로 알아야

 

우리 모두는 그런 몽학 선생을 표적으로 구하기보다 몽학 선생의 옷을 벗으므로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로 예수처럼 이 세상이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는 증인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명심하고 어제 묵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기득권 세력의 대표로 사울이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며 스데반 쪽의 사람들을 박해하자 일부는 흩어지고 또 일부는 스데반을 장사하며 죽음을 애통하는 그림은

 

오늘날의 정치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사울을 대표로 하는 기득권을 가진 쪽에서는 반정부 인사인 신성 모독의 잔당들을 소탕하려는 것이고 반대편에서는 오히려 대단한 용사인 그들을 영웅으로 세우는 당연한 그림이고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라는 그림은 그 사실을 좀더 구체적으로 묘사한 그림으로 반목이 계속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성경기자가 그 한쪽을 부각하기 위하여 성령이 아니라 권능을 따른 빌립의 행적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것이고

 

또 이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보여주는 그림을 보면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라고 마술사 시몬을 높인 후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고 그 마술사 시몬도 빌립의 권능에 굴복하여 제자가 되었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는 그림에서 바로 알아야 할 것은

 

복음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오직 그들의 종교를 위하여 말하는 것으로 성령 내리신 일이 없다고 표현된 것은 지금의 현실처럼 교단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는 그림은 베드로와 요한으로부터 안수를 받으므로 공인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라는 그림은 세상 이치에 밝은 시몬이 지금의 목사나 신부처럼 돈으로 그 공인된 직분을 사겠다는 것이고

 

이에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는 그림은

 

지금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목사나 신부 스스로 자신들의 직업을 성직자라고 높이는 것처럼 그 직분을 높이며 또 그 직분에 대항하면 저주를 하자 이에 시몬이 지금의 우리들처럼 바로 꼬리를 내리며 굴복한 것이고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는 그림은 그들의 모든 행동을 성령님이 주장하시는 것처럼 의미를 부여하여 미혹하는 것으로 그래서 더러는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에게 빌립이 이사야 53장의 말씀으로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여 세례를 받게 한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아주 자랑스럽게 그들이 구하고 있는 것이 복음보다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인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우리들은 그 몽학 선생의 옷을 벗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보여주시는 1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는 그림처럼 사울이 앞장서서 신성 모독의 잔당들을 소탕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3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6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고 일어난 그림을 지금까지 우리들은 기자의 의도대로 이상하고 신비한 외모인 현상에 너무 집착하여 본질을 놓치고 있었음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먼저 기록된 내용이 사실이면 함께 동행하는 무리 중에 오직 사울만 경험했다는 것은 결국 사울이 무엇에 홀린 것처럼 환상에 이끌려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을 자서전이나 신앙 간증처럼 의미를 부여하여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고 또 그림에서 정말 중요한 핵심은 빛이나 예수의 음성이 아니라 앞길이 창창한 대단한 사울이 갑자기 실명을 한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바울에게 실명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은 것처럼 현실뿐만 아니라 자존심에 있었어도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요 절망이지만 결국 아무리 대단한 피조물도 피조물의 한계를 절대로 스스로 극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앞에서 너무 작아지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0그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는 그림처럼

 

다시 볼 수 있게 되자 일어난 결과를 두고 아름답게 미혹하여 기록하였지만 진실 여부에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사울은 원수의 손에 구원을 받았고, 또 반대편에서는 도덕천을 따른 인도주의 입장에서 사울을 구원한 것으로 

 

사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 동안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울이 쌓아 올린 대단한 그 모든 것이 피조물의 한계 앞에서 무용지물로 신기루임을 확인하며 오히려 예수를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기에 배교를 한 것이고

 

3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는 그림처럼 기득권 측에서는 당연히 배교한 사울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고

 

26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는 그림처럼

 

배교한 바울은 복음이 아니라 오히려 배교한 자신의 명분과 생명을 위하여 이전의 열정보다 더 강력하게 표적인 예수를 따라가려고 발악함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32그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36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그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는 그림은

 

복음에 무지로 베드로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보다 온전한 성령이 오셨기에 회개함으로 이미 버려야 할 권능을 오히려 행사하므로 증인이 아니라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인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는 종교의 제자임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소망인 참이고 진리인 영생과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위하여 철학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찾지 못하였고 또 모든 종교는 그 원본인 이데아를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으로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사라질 신기루인 헛되고 헛된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과 천국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하시며

 

그러나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 보다 보여주시는 예수를 비롯하여 모든 도구인 몽학 선생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를 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빈 잔에 영생과 천국을 알 수 있는 성령을 채워줄 뿐 아니라

 

영생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이 되는 복음으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기 위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나 반대로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이나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그것으로는 절대로 영생을 소유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깨닫도록 주신 지혜인 선악과 즉 몽학 선생으로 바로 깨달아 회개하기보다

 

오히려 각자의 잔을 가득 채우는 표적으로 삼아 정답을 찾기 위하여 그 자체를 원죄라고 정의하고 에덴 동산에서 퇴출된 후 스스로 영생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에 도덕천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므로 그것이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복음을 가리고 있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임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표적이란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것으로 우상이나 음란이나 악한 것을 비롯하여 갈5장의 성령의 열매나,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요일2장의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는 것이 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한편으로 몽학 선생이 되어 복음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양면성이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종교란 자신의 잔을 채우는 표적으로 도덕천을 구하는 것으로 그 외모는 참으로 멋이고 대단하여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야 하는 올바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루인 헛된 길임을 온 성경을 비롯하여 베드로의 통곡이나 가룟 유다의 자살 등으로 보여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구약은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의 잔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는 길을 주겠다는 것임에도 이를 바로 깨닫기보다 피조물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라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오히려 스스로 그 사실을 반증하게 되었고

 

회개란 구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움이 절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잔을 완전히 비우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덕천을 따라 잘못된 것만 비우는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란 회개함으로 자신의 잔을 완전히 비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님으로도 표현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그 빈 잔을 가득 채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피조물의 잔을 가득 채우신 그 무엇인 성령님께서 피조물 스스로 진리와 생명인 영생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게 함으로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신약이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누리므로 타인에게 예수처럼 복음과 증인의 몽학 선생이 되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서로 사랑함이란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있는 길로 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증인이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 신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하므로 타인에게 선생이 아니라 몽학 선생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 회개를 도와줄 뿐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생인 진리와 천국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영으로 이를 요한복음16장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 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령 훼방이란 증인의 삶을 서로 사랑함으로 누리기보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천국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피조물이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그 영생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은 구약의 묵시를 따른 십자가의 사건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처럼 온전함 그 자체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있던 없던 어떤 방법이나 모양에 관계없이 인자로 오신 예수가 복음과 증인의 몽학 선생이되어 가르치는 그 무엇으로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도 표현할 수 없는 없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어떠한 수고나 노력을 비롯하여 재물인 희생양이 절대로 필요치 않기에 어떤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거나 분별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지금까지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예수를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율법,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기도, 예배, 제자, 찬양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모두 벗는 천국을 소망하며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표적을 구하므로 성령훼방을 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