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묵상하는 사도행전 16장1~40절 말씀 중에서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허락된 구원이 얼마나 귀하고 충격적인 감동임을 잘 알아 감사하므로 소유하여 누리는 천국의 증인들이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사도행전의 서두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의 승천을 기준으로 승천 이전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 복음서로 사도행전은 승천 이후의 사건을 기록한 것임을 말하고 있지만 문제는 승천으로 표현된 것도 복음의 무지로 복음을 외모로 판단한 것이고
또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기록한 것을 우리들은 참으로 믿고 있지만 이것도 복음의 무지로 복음을 외모로 판단한 것으로 복음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의 실체는 피조물의 불완전한 부활이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절대로 온전하게 알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그 무엇으로 피조물이 아니라 온전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예수의 사역은 그 무엇인 복음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스스로 회개하고 그 온전한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직접 우리들에게 그 복음과 그것을 소유하여 누리는 증인의 모본을 보여주는 최고의 몽학 선생으로 증인이 되는 것이기에
승천이나 부활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인 예수가 당신의 사역을 위하여 보여준 외모의 일부임에도 그 자체를 참으로 알고 몽학 선생인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는 종교가 되면 영원히 복음으로부터 멀어져 실족한다는 사실을 바로 알 때
복음서 즉 승천 이전에는 예수가 우리들에게 당신이 바로 그 복음의 몽학 선생인 증인이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택한 그들을 비롯하여 성경기자는 그 예수를 하나님을 아들로 착각하여 표적으로 구하므로 종교가 되었고
사도행전을 비롯하여 승천 이후에 기록된 것은 그 종교를 위하여 택한 그들과 바울 등을 그 예수의 제자 또는 사도로 미혹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으로 이는 복음의 무지로 택한 그들에게 천국을 보여주고 또 증거하도록 예수께서 주신 권능과 오순절 날 오신 성령을 분별하지 못한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복음으로 말하고 있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령의 역사는 오직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것으로 그렇게 되면 너무나 대단하게 보이는 모든 권능의 역사들이 바로 천국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인 신기루임을 바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수께서 주신 권능은 성경 기자들이 말하는 성령 충만이나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로 표현된 것으로 결국 오순절 날 보여준 그림은 회개 없이 성령을 받으려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현장이고, 또 종말과 심판의 분위기로 주신 권능을 역동적으로 역사한 현장으로 바로 알아야
우리 모두는 그런 몽학 선생을 표적으로 구하기보다 몽학 선생의 옷을 벗으므로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로 예수처럼 이 세상이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는 증인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명심하고 어제 묵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고 하면서 바울과 바나바는 물론 예수교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났다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13장40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라고 말의 실상이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바나바와 바울의 전도는 계속되었지만 총본부인 예루살렘에서까지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 있다는 것은 종교 개혁으로 탄생한 예수교에서도 초기부터 하나가 아니라 분쟁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라는 것처럼 각자 복음으로 복음이 된 증인이 아니라 선생이 되기 위한 자신들의 명분과 종교의 답을 찾기 위하여 마라톤 회의 중에
베드로 자신도 이방인에게 율법에 반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 적이 있기에 결국 바나바와 바울과 같은 편이 되어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고 주장함으로 자신의 이전 주장이 더욱더 경고하게 됨으로 이방으로 영역을 넓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처럼 미혹하는 말로 기를 꺾고
바나바와 바울이 권능인 초능력을 행사하며 이룬 대단한 업적에 대하여 이미 권능을 성령으로 착각하여 배를 채운 그들이기에 오히려 발목이 잡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것처럼 명분까지 잃어 말을 못하고 있자
기존 교회의 모습처럼 그들 중 합리주의 자인 야보고가 나서 본질보다 상생을 위하여 구약의 말씀까지 빙자하여 결국 외모를 보면 모두에게 달콤한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고 복음과 상관없이 오직 자신들의 명분과 종교를 위한 제안을 하자
일사천리로 의기투합하고 형식을 갖추어 예수를 빙자하여 자신들의 명분과 종교를 위하여 새로운 교리를 선포하니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기뻐하며 각자 열심히 종교를 위하여 헌신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의기 투합하여 하나가 되었다고 자축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누구보다 온전한 하나처럼 보인 바나바와 바울이 복음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으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음에도 예수를 빙자한 바울교가 견고하게 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왕성하게 된 것으로 착각하여 미혹함으로
지금까지 내려오며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를 표적으로 바울을 닮아 가려는 수많은 교회들이 오늘도 일어나고 있지만 야보고처럼 합리적인 지도자도 없고 베드로나 바울처럼 초능력이 부족하여 상생하기보다 대부분 이단으로 배척당하며 자족하지 못하고 허공 속으로 살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더러는 살아남아 종교로 인정받고 이 세상의 영광을 누리고 있는 요지경의 이 세상이 되는 것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로 서로 사랑하기보다 도덕천을 따라 이 세상의 유익과 칭송을 바탕으로 표적을 구하는 종교가 되어 외모는 멋있게 보이지만 바나바와 바울처럼 결국은 우리가 아니라 내가 됨으로 복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며 복음을 가리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보여 주시는 1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는 그림은
복음이 아니라 외모에 따른 자신과 자신의 종교를 위하여 바나바와 심하게 다투며 갈라선 후 예수를 표적으로 하는 바울 자신의 단독라인인 바울교의 출발점부터 비열하게 총본부에서까지 그렇게 투쟁하여 얻은 자신의 명분을 성공과 유익을 위하여 가감하게 버리고 첫 번째 제자인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는 참으로 이중적이고 야비한 이 세상의 지도자 같은 바울의 모습을 바로 보아야 하고
4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는 그림은 복음과 상관없이 바울의 그런 교묘함으로 이 세상과 잘 야합하며 바울교가 승승장구해가는 모습이고
6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는 그림은 바울의 그런 성공지향적인 참으로 세속적인 행동을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뜻과 사역으로 착각하여 미혹하는 것이고
11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거기서 빌립 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는 그림은 복음인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라 바울 자신의 사역인 예수를 표적으로 하는 바울교의 성공을 위한 발악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14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는 그림은 그런 발악 중에 루디아란 한 여인이 바울의 거물에 걸려 든 것을 주께서 그 마음을 열었다며 요쯤의 말로 은혜를 받았다고 착각하여 미혹하는 것이고
16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는 그림은 지금도 주변에서 믿음의 척도처럼 말하고 있는 모습으로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영업인 바울교를 위하여 무당과의 영역 싸움에서 초능력을 이용하여 이겼다는 것이고
19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라는 그림은 그런 바울의 행동이 상대방의 영업을 방해한 죄로 고발되어 관리에게 폭행을 당하며 체포되었다는 것이고
24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35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는 그림은
무당의 영업을 방해한 죄로 체포한 바울이 로마 사람임을 안 관리가 당황하여 당연히 두려운 마음으로 방면하자 그런 바울을 대단하게 본 간수가 바울을 집으로 초대하여 접대할 때 바울이 자신의 영업인 종교를 위하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왜곡 변질하여 설파하는 말에 미혹되어 세례를 받으므로 바울 교인이 되었다는 것으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상의 일임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베드로의 그림을 모방하여 폭력과 구속에 의연하며 기도와 찬송을 하자 이를 본받아 일제시대 때 우리 선배들도 그렇게 했지만 이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고 하므로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그 예수의 죄 사함의 사역인 십자가와 부활을 가르쳐 구원을 받게 하는 사도로 착각하여 미혹하고 있지만
구원은 주 예수를 믿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되는 것일 뿐 아니라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우리 집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여준 바울의 행위는 복음이 아니라 오직 이 세상에 비치는 자신의 자랑인 외모와 자신의 종교인 바울교를 위한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소망인 참이고 진리인 영생과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위하여 철학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찾지 못하였고 또 모든 종교는 그 원본인 이데아를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으로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사라질 신기루인 헛되고 헛된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과 천국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하시며
그러나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 보다 보여주시는 예수를 비롯하여 모든 도구인 몽학 선생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를 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빈 잔에 영생과 천국을 알 수 있는 성령을 채워줄 뿐 아니라
영생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이 되는 복음으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기 위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나 반대로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이나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그것으로는 절대로 영생을 소유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깨닫도록 주신 지혜인 선악과 즉 몽학 선생으로 바로 깨달아 회개하기보다
오히려 각자의 잔을 가득 채우는 표적으로 삼아 정답을 찾기 위하여 그 자체를 원죄라고 정의하고 에덴 동산에서 퇴출된 후 스스로 영생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에 도덕천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므로 그것이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복음을 가리고 있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임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표적이란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것으로 우상이나 음란이나 악한 것을 비롯하여 갈5장의 성령의 열매나,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요일2장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는 것이 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한편으로 몽학 선생이 되어 복음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양면성이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종교란 자신의 잔을 채우는 표적으로 도덕천을 구하는 것으로 그 외모는 참으로 멋이고 대단하여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야 하는 올바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루인 헛된 길임을 온 성경을 비롯하여 베드로의 통곡이나 가룟 유다의 자살 등으로 보여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구약은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의 잔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는 길을 주겠다는 것임에도 이를 바로 깨닫기보다 피조물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라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오히려 스스로 그 사실을 반증하게 되었고
회개란 구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움이 절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잔을 완전히 비우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덕천을 따라 잘못된 것만 비우는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란 회개함으로 자신의 잔을 완전히 비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님으로도 표현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그 빈 잔을 가득 채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피조물의 잔을 가득 채우신 그 무엇인 성령님께서 피조물 스스로 진리와 생명인 영생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게 함으로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신약이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누리므로 타인에게 예수처럼 복음과 증인의 몽학 선생이 되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서로 사랑함이란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있는 길로 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증인이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 신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하므로 타인에게 선생이 아니라 몽학 선생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 회개를 도와줄 뿐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생인 진리와 천국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영으로 이를 요한복음16장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 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령 훼방이란 증인의 삶을 서로 사랑함으로 누리기보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천국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피조물이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그 영생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은 구약의 묵시를 따른 십자가의 사건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처럼 온전함 그 자체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있던 없던 어떤 방법이나 모양에 관계없이 인자로 오신 예수가 복음과 증인의 몽학 선생이되어 가르치는 그 무엇으로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도 표현할 수 없는 없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어떠한 수고나 노력을 비롯하여 재물인 희생양이 절대로 필요치 않기에 어떤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거나 분별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지금까지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예수를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율법,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기도, 예배, 제자, 찬양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모두 벗는 천국을 소망하며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표적을 구하므로 성령훼방을 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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