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묵상하는 사도행전 24장1~27절 말씀 중에서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허락된 구원이 얼마나 귀하고 충격적인 감동임을 잘 알아 감사하므로 소유하여 누리는 천국의 증인들이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사도행전의 서두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의 승천을 기준으로 승천 이전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 복음서로 사도행전은 승천 이후의 사건을 기록한 것임을 말하고 있지만 문제는 승천으로 표현된 것도 복음의 무지로 복음을 외모로 판단한 것이고
또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기록한 것을 우리들은 참으로 믿고 있지만 이것도 복음의 무지로 복음을 외모로 판단한 것으로 복음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의 실체는 피조물의 불완전한 부활이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절대로 온전하게 알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그 무엇으로 피조물이 아니라 온전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예수의 사역은 그 무엇인 복음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스스로 회개하고 그 온전한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직접 우리들에게 그 복음과 그것을 소유하여 누리는 증인의 모본을 보여주는 최고의 몽학 선생으로 증인이 되는 것이기에
승천이나 부활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인 예수가 당신의 사역을 위하여 보여준 외모의 일부임에도 그 자체를 참으로 알고 몽학 선생인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는 종교가 되면 영원히 복음으로부터 멀어져 실족한다는 사실을 바로 알 때
복음서 즉 승천 이전에는 예수가 우리들에게 당신이 바로 그 복음의 몽학 선생인 증인이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택한 그들을 비롯하여 성경기자는 그 예수를 하나님을 아들로 착각하여 표적으로 구하므로 종교가 되었고
사도행전을 비롯하여 승천 이후에 기록된 것은 그 종교를 위하여 택한 그들과 바울 등을 그 예수의 제자 또는 사도로 미혹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으로 이는 복음의 무지로 택한 그들에게 천국을 보여주고 또 증거하도록 예수께서 주신 권능과 오순절 날 오신 성령을 분별하지 못한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복음으로 말하고 있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령의 역사는 오직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것으로 그렇게 되면 너무나 대단하게 보이는 모든 권능의 역사들이 바로 천국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인 신기루임을 바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수께서 주신 권능은 성경 기자들이 말하는 성령 충만이나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로 표현된 것으로 결국 오순절 날 보여준 그림은 회개 없이 성령을 받으려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현장이고, 또 종말과 심판의 분위기로 주신 권능을 역동적으로 역사한 현장으로 바로 알아야
우리 모두는 그런 몽학 선생을 표적으로 구하기보다 몽학 선생의 옷을 벗으므로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로 예수처럼 이 세상이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는 증인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명심하고 어제 묵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바울을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 앞에 세우니라”는 어제 보여준 마지막 그림처럼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의 체포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천부장이 고발인과 피고발인을 모두 세우고 심문을 하려고 하는데 자신의 처지를 착각한 바울이 절차를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만 하자 이를 제지하는 대제사장의 경고를 율법을 어기는 것으로 말하므로 결국 무리가 보기에는 오히려 바울이 계속하여 신성을 모독하는 것임에도
자신을 처지와 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착각한 바울이 출애굽기 22장28절의 말씀을 빙자하여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고 하면서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의 관리인 대제사장을 비방하며 인정하지 않는 웃기는 모습이 바로 오늘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착각하여 그 예수의 이름으로 관리를 비방하며 개혁을 부르짖는 복음에 무지한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고
복음의 무지로 개혁을 본질로 착각한 종교인들이 정치적이 이슈를 등에 업고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이 세상의 지혜가 출중한 바울이 본질인 복음이 아니라 도구인 부활을 이슈로 교묘하게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을 이간하는 여론 몰이를 하며 핵심을 흐려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며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는 그림은 결과를 두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표적으로 하는 종교인 바울교를 합리화하는 것일 뿐 복음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그렇게 복음의 무지로 바울 자신만이 정의처럼 참담하게도 예수를 빙자하여 신성을 모독하며 현행 질서를 무시하는 바울을 기득권을 가진 종교인들은 실정법이 아니라 당연히 종교법으로 다스리려고 하는 것이고
그런 사실을 알게 된 바울의 생질이라는 사람이 바울에게 알려주고 백부장을 통하여 관리 책임자인 천부장에게 밀고하자 지혜로운 관리인 천부장이 기록된 그림처럼
그들의 종교문제와 정치문제를 분별하여 정확하고 공평한 판단을 위하여 상급기관인 총독으로 이송하는 것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나 사역인 복음이 아니라 그냥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일상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보여주시는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6하반-8상반 없음) 7 (없음) 8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는 그림은
천부장이 총독에게 이송한 바울은 신성을 모독하는 이단의 우두머리로 사회 기강인 기존 종교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체포했다고 정식으로 벨릭스 총독에게 고발장을 접수하는 것이고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는 그림은 고발장의 내용을 고발된 바울에게 확인하려고 신문하는 것이고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 이틀밖에 안 되었고 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는 그림은 고발인들은 바울의 전체 행실을 두고 고발을 하였음에도 바울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야보고야 야합한 12일간의 예루살렘에서 만의 행동으로 무고함을 주장하며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는 그림처럼 사실은 바울 자신도 그들과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그 종교의 열매가 부활임에도 그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면서
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는 그림처럼
그래서 자신은 그들보다 더 도덕적으로 청렴결백하고 구제를 비롯하여 종교가 추구하는 바를 따라 좋고 선한 일을 많이 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종교의 결례를 지켰고 또 이에 반하는 어떠한 모임이나 소동이 없었다고 자신의 무고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라는 그림처럼 그 종교의 핵심이요 열매는 오직 부활뿐임을 알려주기 위하여 주장했다고 하자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는 그림은
총독 벨릭스도 이 사건이 종교의 문제일 뿐 일반 사건이 아님을 알고 미숙한 판단으로 문제를 확대하기보다 지혜롭게 스스로 알아서 합의로 해결되길 기다리며 적당한 선에서 지연하고 있는 것을 바로 깨닫기보다
오히려 벨릭스 총독을 비겁하고 야비한 공무원으로 왜곡함으로 바울의 정당성을 주장하려고 하지만 보여준 모든 그림은 그냥 이세상의 일상일 뿐 복음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소망인 참이고 진리인 영생과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위하여 철학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찾지 못하였고 또 모든 종교는 그 원본인 이데아를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으로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사라질 신기루인 헛되고 헛된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과 천국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하시며
그러나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 보다 보여주시는 예수를 비롯하여 모든 도구인 몽학 선생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를 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빈 잔에 영생과 천국을 알 수 있는 성령을 채워줄 뿐 아니라
영생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이 되는 복음으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기 위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나 반대로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이나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그것으로는 절대로 영생을 소유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깨닫도록 주신 지혜인 선악과 즉 몽학 선생으로 바로 깨달아 회개하기보다
오히려 각자의 잔을 가득 채우는 표적으로 삼아 정답을 찾기 위하여 그 자체를 원죄라고 정의하고 에덴 동산에서 퇴출된 후 스스로 영생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에 도덕천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므로 그것이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복음을 가리고 있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임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표적이란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것으로 우상이나 음란이나 악한 것을 비롯하여 갈5장의 성령의 열매나,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요일2장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는 것이 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한편으로 몽학 선생이 되어 복음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양면성이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종교란 자신의 잔을 채우는 표적으로 도덕천을 구하는 것으로 그 외모는 참으로 멋이고 대단하여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야 하는 올바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루인 헛된 길임을 온 성경을 비롯하여 베드로의 통곡이나 가룟 유다의 자살 등으로 보여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구약은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의 잔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는 길을 주겠다는 것임에도 이를 바로 깨닫기보다 피조물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라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오히려 스스로 그 사실을 반증하게 되었고
회개란 구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움이 절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잔을 완전히 비우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덕천을 따라 잘못된 것만 비우는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란 회개함으로 자신의 잔을 완전히 비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님으로도 표현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그 빈 잔을 가득 채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피조물의 잔을 가득 채우신 그 무엇인 성령님께서 피조물 스스로 진리와 생명인 영생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게 함으로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신약이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누리므로 타인에게 예수처럼 복음과 증인의 몽학 선생이 되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서로 사랑함이란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있는 길로 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증인이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 신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하므로 타인에게 선생이 아니라 몽학 선생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 회개를 도와줄 뿐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생인 진리와 천국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영으로 이를 요한복음16장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 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령 훼방이란 증인의 삶을 서로 사랑함으로 누리기보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천국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피조물이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그 영생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복음은 구약의 묵시를 따른 십자가의 사건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처럼 온전함 그 자체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있던 없던 어떤 방법이나 모양에 관계없이 인자로 오신 예수가 복음과 증인의 몽학 선생이되어 가르치는 그 무엇으로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도 표현할 수 없는 없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어떠한 수고나 노력을 비롯하여 재물인 희생양이 절대로 필요치 않기에 어떤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거나 분별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지금까지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예수를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율법,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기도, 예배, 제자, 찬양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모두 벗는 천국을 소망하며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표적을 구하므로 성령훼방을 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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