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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실체

패스라 2013. 5. 31. 08:51

우리 인생들은 온전하지 못한 피조물의 본질인 한계를 극복하여 여호와처럼 영생불멸을 소유함으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나 천국, 불국정토나, 파라다이스로 명명한 표적을 구하기 위하여 자녀를 낳아 대를 잇게 하게나, 부귀 영화를 쫓거나, 종교 생활을 하는 등 지금까지 보여준 이런 저런 모양의 삶들을 살아왔다.

 

그런데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를 따라 판단해보면 그 중에 최고의 삶처럼 보이는 종교가 종교란 글자의 의미를 따라 정답처럼 우리 인생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지만 문제는 정답처럼 보이는 종교가 너무 많아 과연 어떤 종교가 정답인지 혼미할 뿐 아니라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인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상생이니, 화평이니, 사랑이니 하는 명분을 따라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는 종교 화합을 정답처럼 말하고 있으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는 말은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또한 그런 종교 생활의 실상을 보면 성경이나 각종의 경에 등장하는 인물을 비롯하여 그것을 따라 종교 생활을 해온 대단한 신앙의 선조들이나 우리 모두는 유형무형의 힘이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충성과 순종이란 이름으로 강한 믿음을 강요당할 뿐 아니라 스스로 강요하며 그것이 정답이고 바른 신앙의 모습으로 착각함으로 결국 스스로를 속고 속이며 정답처럼 소망하고 갈망하며 살아왔지만

 

우리들이 정답처럼 말하고 있는 믿음의 실체인, 신뢰도나 확신도로 표현되는 믿음의 정도는 참인 것으로 추정되거나 그 결과를 알지 못하는 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불확실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기루인 헛된 이 세상에서는 그런 불확실한 믿음과 신뢰 없이는 단 일초도 마음 놓고 바로 서 있거나 살수가 없는 한계를 지닌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믿음과 신뢰에서 믿음은 우리의 감성을 따른 마음이고, 신뢰는 우리의 이성을 따른 의지로 결국 이 세상의 종교와 우리들은 어느 사이 자신들이 추구하고 있는 표적이나 주장은 참인 것으로 추정되거나 결과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실체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믿음과 신뢰를 위하여 강요하는 충성과 순종에 의하여 강압적으로 세뇌된 확신을 진짜로 확인된 참인 것처럼 착각함으로 오히려 참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인 나팔과 꽹과리 소리가 되고 있음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하면서 그래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기록하여 이를 우리는 정답인 참으로 알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믿음의 실상도 참인 것으로 추정되거나 결과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것이기에 그 믿음을 빼고 보면 결국 성경에 기록된 천지 창조의 기록이나 선진들이 증거로 삼았다는 것은 사실로 확인된 실상인 참이 아니라 사람들이 한번도 본적이 없는 용을 그리듯이 부족한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의 논리로 판단한 불확실한 믿음과 확신을 따라 기록된 신기루임을 스스로 반증하고 있는 것일 뿐 아니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아니라 부족한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한 것으로 결국 참인 것으로 추정되거나 결과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유혹과 협박으로 강요하는 충성과 순종으로 확신하도록 세뇌한 것으로 결국 온전함의 논리인 공의로 판단한 정답인 참이 아니라 정답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인 나팔과 꽹과리 소리가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고 하면서 그래서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고 신기루인 불확실한 믿음을 정답처럼 강요할 뿐 아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고 잘 말해놓고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는 것처럼

 

불확실한 믿음을 정답처럼 미혹하여 온전함의 논리는 물론 공평 타당함의 논리인 법에도 맞지 않는 사실을 믿음이란 억지 주장으로 복음과도 전혀 무관한 아브람을 모든 사람의 조상이란 억지를 참이고 정답처럼 주장하고 있으며

 

창세기에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아브람에도 했다는 언약도

 

온전함의 논리를 따른 여호와의 진짜 언약이나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를 따른 율법이 아니라 불확실한 믿음을 따른 스스로의 착각에 의한 주장이나 고백을 참인 것으로 확신하도록 미혹하기 위하여 달콤한 유혹과 협박으로 강요하는 충성과 순종으로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라는 헛되고 헛된 짓일 뿐 아니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를 따라 판단한 율법도 정답이 아니기에 유구무언을 하기보다 이성과 감성을 따른 자신의 주장하기 위하여 당연히 진노를 내지만 정답도 아닌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라는 믿음으로 충성과 순종을 강요하여 불확실한 믿음에 강압적으로 유구무언을 강요하는 것은

 

창세기부터 지금까지 우리 믿음의 신앙생활을 성경을 통하여 끝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모두를 죄인으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당연히 일어나는 진노를 나타내지도 못하고 모두가 겉 다르고 속 다른 온전하지 못한 표리부동의 위선자 모습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고

 

데살로니가후서3장에서도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는 이유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고 하면서 결국 믿고 기도를 하면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고 기록하여 신기루인 믿음을 정답인 참으로 미혹하고 있지만

 

믿음이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결국 정답이 아니라 참인 것으로 추정되거나 결과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구하고 있는 표적을 빙자하여 달콤한 유혹과 협박으로 충성과 순종을 강요하기 위하여 기도를 강요하는 것은

 

온전함의 논리를 따라 공의로 판단한 정답인 복음 즉 태초부터 감추인 것처럼 보이는 신비인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로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서로 사랑함으로 확인하고 영원히 누리기보다

 

부족한 피조물의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거나, 참인 것으로 추정되거나 결과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믿음을 강요하는 충성과 순종으로 확신하게 하는 것은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헛되고 헛된 짓으로 참을 가리며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인 나팔과 꽹과리 소리가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