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역대상23장1-23절의 말씀은
어제 하나님께서 주신 “다윗이 가로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어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라는 말씀은
목교세들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한없는 자유와 평강의 복을 교묘하게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다시 죄의 멍에를 메고 힘들게 살아가게 하면서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신의 야욕을 채우고 있는 것처럼
목교세들이 그렇게 존경하고 앙망하는 다윗 왕도 하나님의 말씀에 교묘하게 자신의 생각을 첨가 함으로 결국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있는 피조물의 한계를 보여 주시며
에베소서 4장에 말하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깨어 천제 증인의 삶을 누리기 위하여 사랑의 속삭임을 멈추지 않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해 지는 길이라고 하신 후
오늘은 다윗이 나이 많아 늙으매 아들 솔로몬에게 왕권을 이양하기 위한 준비 과정의 모습을 통하여 목교세들이 그렇게 앙망하는 다윗도 결국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피조물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하시고 우리 인생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분명하게 고백하게 하시며
이를 위하여 오늘 주시는 “다윗이 나이 많아 늙으매 아들 솔로몬으로 이스라엘 왕을 삼고 이스라엘 모든 방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모았더라” 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아들들은 레위 지파 중에 기록되었으니 모세의 아들은 게르솜과 엘리에셀이라” 라는 말씀을 묵상해 보자
목교세들은 오늘 보여주는 말씀을 다윗이 다음 세대를 위한 지혜로운 행보라 말 할 뿐만이 아니라 1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그 옛날 제사장이나 서기관 그리고 바리세인들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외식하는 자로 평가 받은 그 경건한 것 같은 수도자의 삶을 부각함으로
하나님을 빙자하고 교인들의 미혹함으로 착취하며 외식하는 더러운 목사들의 삶을 성직자의 삶이라 세뇌시켜 거룩한 삶인 것처럼 불의와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 따라서 이 땅에서 진짜로 땀 흘리며 열심히 노력하는 당당한 삶을 오히려 죄악 속에 방황하는 잘 못된 삶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도록 미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묵상해보자
하나님께서 이미 다윗에게 미래에 대하여 보장한다고 한 약속을 진짜로 믿는다면 지금 다윗이 하고 있는 행동은 결과를 통하여 알고 있는 것처럼 대세에는 전혀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어제 보여준 모습처럼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억지로 일치 시키고 있는 불신앙의 모습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식구들은 깨어 이런 미혹에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태초부터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불가능을 가능함으로 해결해 주신 부활 이전 까지와 또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이 영원히 살수 있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신 그때부터 이 세상의 끝날까지
피조물인 우리 인생이 스스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고 또 온전히 믿은 인생이 있었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사치임을 알아야 한다.
어제는 오래 만에 성터교회에서 일요일 설교로 사도신경을 강해 한다고 하여 인터넷으로 들어보았다.
사도신경 자체가 어제의 다윗처럼 목교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교회를 살짝 첨가한 것으로 본질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라 궁금하여 들어가 보았지만 결과는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편리에 따라 페이팅하는 수준 이하였다.
어떻게 목사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설명도 할 수 없다고 할 뿐 아니라 그냥 믿으면 된다고 하면서 본인이 경험했지만 신앙 생활에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은 지금 어떤 하나님을 믿고 또 어떤 하나님을 증거하려고 목사가 되었는지 궁금해 졌다.
그리고 사도 신경을 신앙의 본질이고 핵심처럼 강해를 하는데 무엇을 얻기 위해서 신앙 생활을 하는지 정말 질문하고 싶어졌다.
교회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그런 복 때문이라면 오히려 무당에게 가는 것이 더 빠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무당의 간증을 들어보면 자신들의 말을 듣고 복 받아 잘된 사람이 교회에서 목사 말 듣고 잘된 사람보다 많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러는 교회와 무당을 은밀하고 교묘하게 왜곡 변질하여 함께 섬기는 지혜와 기지를 발휘하여 양다리 걸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본분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증인이란 것이 한편으로 답답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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