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패스라 2008. 9. 20. 07:24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역대상2115-30절의 말씀은

 

어제 하나님께서 주신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그리고요압이 왕의 명령을 밉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라는 말씀은

 

목교세들의 말과는 달리 하나님과 다윗왕 그리고 신하 사이에 사랑의 속삭임이 일어나지 않음으로 인하여 서로 죽은 관계로 각자 좋을 대로 행하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게 되었다고 하신 후

 

오늘은 벌을 받는 과정을 통하여 다윗 역시 결국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피조물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하시고 우리 인생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분명하게 고백하게 하시며

 

이를 위하여 오늘 보여 주시는 하나님께 아뢰되 명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내니이다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이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29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그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으나 30 다윗이 여호와의 사자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에 가서 하나님께 묻지 못함이라라는 말씀을 묵상해 보자

 

다윗왕이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하는 것을 선택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다윗의 고백처럼 범죄한 자는 다윗인데 그로 인하여 죽은 칠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옛적에 모세가 세운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은 것은 문제가 없는 것일까?

 

목교세들은 이런 의문은 외면하며 진정한 회개와 정당한 대가에 초점을 맞추어 실패한 다윗을 성공한 다윗으로 왜곡하고 있음으로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어제 다시 또 한판을 한 아내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다 그런 목교세들의 피해자이다.

 

따라서 에베소서 4장에 말하는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는 말씀처럼

 

아직 구원 못한 나와 이미 구원받은 내가 하나가 되지 못하여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함으로 날마다 넘어지는 나 이지만

 

제사를 지내거나 자살을 하더라도 이미 구원받은 나를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는 그 이유와 결과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보여지는 사건으로 진짜 본질을 놓치지 않는 우리들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구원받는 나를 소유하지 못한 자가 제사를 드리는 이유와 목적은 그것으로 인하여 혹시 조상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이며 자살을 하는 이유와 목적은 더 이상 피난처가 없어 인생을 도전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나를 소유한 자는 제사를 드리는 이유와 목적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위해서이고 자살을 하는 이유와 목적은 살아있는 주변 지체들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또 믿게 하기 위한 최고의 선택으로 순교가 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식구들은 예를 든 똑 같은 제사와 자살도 그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사건 그 자체에 빠져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사랑의 속삭임으로 희노애락을 편식하지 말고 누려야 한다.

 

그리고 앞에 한 질문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다윗도 이를 모르고 반문을 했지만 죽은 칠만이나 은자나 다윗이나 그 전체를 한 몸의 개념으로 보아야 설명이 가능하다. 그리고 기억할 것은 시차만 있을 뿐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율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율법의 목적을 알면 해결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자유로워 질 것이다.어찌 되었던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신나게 누리는 천제증인의 삶에 도전하는 소망의 오늘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