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열왕기하 22장 1-11절 말씀으로 먼저 어제 주신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라는 말씀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것이 다 악이요 오물로 그렇게 씻어 버리지 않고는 절대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그것을 고백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이미 선포하신 종말을 향하여 므낫세나 아몬처럼 목교세들이 앞장서서 그 역활을 하려고 달려가고 있다고 하시며
이런 한계에 있는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대신하여 율법으로 의롭고 순결하고 착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모습이 되신 후 그것을 믿음과 은혜로 받아 누리면 그것을 우리의 의와 순결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이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그 고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사역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온 땅에 사랑이 넘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죽여 그저 온 땅에 사랑의 시체들로 인하여 악취와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만 진동을 하고 있으며
정말 말세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죄의 권세 속에서 위로를 받으며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견디어 최후 승리를 소유할 수 있도록 주신 지침서인 요한 계시록의 말씀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금기하던지 아니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말씀의 본질을 왜곡 변질할 뿐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우리 스스로 통과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로 주셨지만 이제는 이미 빈 껍질이 되어버린 제사(형식적인 예배), 성전(교회), 제사장(목사), 십일조, 율법(착하고, 구별된 순결한 삶)을 비롯하여 이 세상이 요구하는 섬김과 나눔과 사랑에 매달리는 고난을 요구하는 삶은 오히려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역을 폄하하는 것으로
에베소서 4장에 말하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절대로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이 말세의 기간을 견디어 승리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불가능의 도전으로 이를 극복하는 비밀이 바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천국과 이 세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 누리며 서로 사랑하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오늘도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말씀 중에서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자
수많은 이스라엘의 왕 중에서 그래도 하나님으로부터 정직하다고 칭찬을 받은 왕은 다윗과 그리고 4대인 여호사밧, 12대인 히스기야, 15대인 요시아, 뿐이다.
그런데 그 요시아 왕이 그 동안 방치한 성전을 수리하며 발견된 율법책의 내용을 듣고는 옷을 찢으며 회개를 했는데 왜 그 결과는 그래도 멸망일까?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고 하는 것처럼 누구보다 바로 가려고 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목교세들 역시 그 길을 가자고 미혹하여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있음에도 모두들 그 길을 따라 가려고 할까?
이는 바로 말씀을 착각하도록 왜곡하고 있기 때문인데
첫째, 하나님께서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인정하신 4명의 왕이나 악으로 평가한 다른 왕이나 이 세상의 관점에서는 크게 구별이 되지 않음에도 하나님의 평가를 이 세상의 평가처럼 착각하게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아무리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려고 해도 절대로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손을 들어야 함에도 오히려 정직에 도전하라고 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요시야도 회개를 하여 손을 들기보다 분명하게 다시 정직에 도전하자고 앞장서 갔을 것이며 그것은 곧 불가능의 불필요한 자기 자랑인 도전만 될 뿐이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이 천국을 소유하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확실하게 믿어 자신의 편의에 따라 본질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하고 있는 불의와 불법의 목교세들과 연합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아무리 사실과 현실처럼 그리고 태산처럼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또 아무리 진짜라고 큰소리 쳐도 죽음 앞에는 무용지물인 부부나 자식이나 부모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특별한 관계인 또 다른 나 인 지체들과 이미 혼인잔치의 주인공으로 확정되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나를 바라보고
종말을 소망하며 담대하게 누리고 즐기는 천제증인의 삶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확인하고 감사하며 사랑함으로 행복해 하는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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