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묵상하는 로마서 15장1~33절 말씀 중에서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허락된 구원이 얼마나 귀하고 충격적인 감동임을 잘 알아 감사하므로 소유하여 누리는 천국의 증인들이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는 바울의 착각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복음의 본질이 아니라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기에 당신의 종이나 당신을 표적으로 가르치는 선생인 사도가 아니라 모두가 당신처럼 복음으로 복음이 되어 서로 사랑함으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는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것임에도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만난 복음과 상관없는 환상과 함께 이상현상으로 바울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은 모습이 되므로 결국 바울 자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문제가 되자 이에 유대교에서 예수교로 회심함으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여 자칭 예수의 종과 사도가 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여
이런 자신의 주장을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의 최고 법정인 로마법정에서 인정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이 아닌 바울 자신이 가진 이 세상의 자랑인 외모를 힘 입어 로마에 도착하여 2년을 대기 중에 로마에 살고 있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것으로
이는 복음의 본질이 아닌 복음을 가르치는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예수를 복음으로 착각하여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는 악하고 음란한 생각으로 결국 종교가 되고 있음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고 어제 묵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는 그림도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이 세상과 종교를 위한 멋있는 도구일 뿐 온전하신 복음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바로 알 때
멋있게 포장하여 장황하게 보여주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선생이 되어 서로 분별하지 말라고 하는 그 자체가 분별이고, 또 피조물이 감히 여호와를 분별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고 하는 것이나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라고 하면서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어떠한 물로도 피조된 바다 물의 본질을 바꿀 수 없었고 바다 물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스스로 혹은 깨끗한 물이 혹은 더러운 물이 되어 바다 물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참으로 어리석은 우스운 모습인데
하물며 온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비롯하여 영광에 감히 피조물이 영향을 미치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하고 허망한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알지 못하고 도전을 강요하는 것은 종교로 온전하신 복음에 똥칠을 하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보여주시는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는 그림은 복음과는 상관없이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종교를 위한 것으로 바로 알 때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는 그림도 복음이 아니라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한 것이고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는 그림이나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는 그림이나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는 그림도 복음이 아니라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한 것으로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는 그림을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해 보면 피조물의 궁극적인 바램처럼 아주 달콤하고 대단히 멋있는 말 같지만 그 본질은 온전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 사역인 복음의 무지에 따른 똥칠이 됨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29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이라는 그림도
복음의 무지에 따른 착각으로 복음과 상관없는 바울의 똥칠로 바로 알아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임이 된 새로운 피조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즉 우리가 알거나 계산할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소망인 참이고 진리인 영생과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위하여 철학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찾지 못하였고 또 모든 종교는 그 원본인 이데아를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으로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사라질 신기루인 헛되고 헛된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과 천국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하시며
그러나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 보다 보여주시는 예수를 비롯하여 모든 도구인 몽학 선생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를 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빈 잔에 영생과 천국을 알 수 있는 성령을 채워줄 뿐 아니라
영생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이 되는 복음으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기 위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나 반대로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이나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그것으로는 절대로 영생을 소유할 수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임을 깨닫도록 주신 지혜인 선악과 즉 몽학 선생으로 바로 깨달아 회개하기보다
오히려 각자의 잔에 찬 것을 표적으로 삼아 잔을 채우는 정답을 찾기 위하여 부족한 그 자체를 원죄라고 정의하고 에덴 동산에서 퇴출된 후 스스로 영생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에 도덕천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므로 그것이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복음을 가리고 있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임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표적이란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것으로 우상이나 음란이나 악한 것을 비롯하여 갈5장의 성령의 열매나,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요일2장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는 것이 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한편으로 몽학 선생이 되어 복음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양면성이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종교란 자신의 잔을 채우는 표적으로 도덕천을 구하는 것으로 그 외모는 참으로 멋이고 대단하여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야 하는 올바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루인 헛된 길임을 온 성경을 비롯하여 베드로의 통곡이나 가룟 유다의 자살 등으로 보여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구약은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의 잔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는 길을 주겠다는 것임에도 이를 바로 깨닫기보다 피조물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라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오히려 스스로 그 사실을 반증하게 되었고
회개란 구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움이 절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잔을 완전히 비우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덕천을 따라 잘못된 것만 비우는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란 회개함으로 자신의 잔을 완전히 비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님으로도 표현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그 빈 잔을 가득 채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피조물의 잔을 가득 채우신 그 무엇인 성령님께서 피조물 스스로 진리와 생명인 영생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게 함으로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신약이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누리므로 타인에게 예수처럼 복음과 증인의 몽학 선생이 되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서로 사랑함이란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있는 길로 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증인이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 신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하므로 타인에게 선생이 아니라 몽학 선생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 회개를 도와 줄뿐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생인 진리와 천국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영으로 이를 요한복음16장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 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령 훼방이란 증인의 삶을 서로 사랑함으로 누리기 보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천국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피조물이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그 영생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복음은 구약의 묵시를 따른 십자가의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처럼 온전함 그 자체 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있던 없던 어떤 방법이나 모양에 관계 없이 인자로 오신 예수가 복음과 증인의 몽학선생이 되어 가르치는 그 무엇으로만 가능하기에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도 표현할 수 없는 없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어떠한 수고나 노력을 비롯하여 재물인 희생양이 절대로 필요치 않기에 어떤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거나 분별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또 복음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 사함의 회개에 합당한 도덕천을 따른 선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므로 복음으로 복음인 된 새로운 피조물이 하는 일인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합당한 일이 되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지금까지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예수를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율법,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기도, 예배, 제자, 찬양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모두 벗는 천국을 소망하므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표적을 구하므로 성령훼방을 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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