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묵상하는 빌레몬서 1장1~25절 말씀 중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회개하고 복음으로 구원받아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아깝거나 후회하기보다 너무나 감사하고 귀중한 절대 불가능의 과정을 통과한 충격적인 변화요 감동임을 잘 알아
그렇게 됨으로 여호와께서 주신 자유의지인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를 이루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확인하고 신나게 누리는 행복한 삶을 위하여 서로 발을 씻기며 서로 사랑하는 구원받은 천국증인들이 어떻게 신기루인 이세상을 살아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이미 묵상한 것처럼 복음의 무지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예수를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따라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예수의 종이 되어 여호와로 착각한 도덕천과 표적인 예수의 은혜에 비는 평강의 복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가 아니라 신기루인 이 세상이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주겠다는 신기루 평안인 구속임에도 복음의 무지로 복으로 착각하여 스스로를 속이며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결국 바울 자신을 표적으로 구하게 함으로 초대 이단인 초대 교회가 되어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판단한 자신의 이성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걸림돌이 되는 여호와께서 주신 자유의지인 감성을 소멸하려는 불가능에 도전함으로 결국 온전한 복음을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바로 알고 어제 묵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바울이 말한 바른 교훈으로 결국 여호와께서 주신 자유의지인 감성을 소멸하려는 불가능의 도전으로 구하고 있는 표적을 위하여 순종을 강요하는 것이고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는 그림은 여호와께서 주신 자유의지인 이성과 감성이 온전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우리 피조물의 실상이고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복음을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이성적으로 판단한 것이기에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에 있지 않다고 하면서 바른 교훈에 따른 선한 일을 강요하는 모순의 모습을 주장함으로 불가능의 도전인 표적을 구하게 할 뿐 아니라 빚진 자니, 상속자니, 중보 자니, 대죄사장이니, 죄 씻음이니,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면서 복음의 본질을 미혹함으로 초대 이단인 초대 기독교가 된 것으로 바로 알 때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는 그림은
복음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미쁘지도 않고 선한 일이 아니라 온전한 복음을 가로 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로 결국 복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빙자하여 구하고 있는 표적을 따른 자신들이 주창하는 종교만이 정답으로 미혹하기 위하여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는 자신이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아 확증하려는 것으로 결국 신기루를 잡으려는 불가능의 도전이고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는 그림도 복음이 아니라 신기루를 잡기 위한 불가능의 도전으로 바울이 구하고 있는 표적을 따른 자신들의 종교를 보호하기 위한 불안함과 두려움을 스스로 속이며 교묘하게 미혹하는 것이고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고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는 그림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는 모습이 아니라 이 세상이 주는 평안을 누리기 위하여 신기루인 표적에 매달리는 불안한 모습으로 결국 서로 경계하여 감성을 소멸하기 위한 발악으로 온전한 복음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로 복음에 올인 하는 것이 아니라 표적으로 구하는 자신의 종교를 위하여 디모데와 디도에게 바울 자신을 올인 하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보여주시는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는 그림은 이미 묵상한 것처럼 복음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자신의 이성으로 판단한 표적을 구하기 위한 것으로 결국 바울의 투옥을 비롯하여 당한 고난은 복음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 구하고 있는 표적인 종교를 위하여 자초한 것으로 바로 알 때
4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는 그림은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달콤한 명분의 유혹으로 순종을 강요하기 위하여 재갈을 물리는 것으로 온전한 복음에 똥칠을 하는 실상으로 신기루를 잡으려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현실 종교와 교회의 발악하는 모습이고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는 그림은 현실의 종교에서 목사를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빙자하여 표적을 위한 사랑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헌금과 헌신을 강요하는 것처럼 바울이 주창하는 종교에 미혹된 빌레몬에게 표적을 빙자하여 사랑의 이름으로 무단 이탈을 한 오네시모라는 빌레몬의 종에 대하여 바울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불의와 불법이고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라는 그림은 현실 교회의 모습처럼 복음의 무지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바울 자신의 이성으로 판단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비도덕적인 판단이 됨을 알지 못하고 주인의 명령 없이 스스로 무단 이탈을 한 종을 무익하다고 멋대로 판단하여 주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무단 이탈로 불법을 행한 종이 바울이 주창하는 종교에 미혹되어 바울의 심복이 되자 표적을 빙자하여 의미를 부여하여 이를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표적을 구하고 있는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위하여 미혹함으로 자신의 이성에 따라 복음에 똥칠하며 도덕천에도 반한 판단을 정답처럼 미혹하여 강요하면서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고 강요가 아닌 것처럼 교묘하게 쇼를 하며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21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는 그림은
무단 이탈로 불법을 행한 종의 행위에 바울의 심복이 된 결과로 의미를 부여하여 당연히 받아야 할 벌 대신에 오히려 감사하며 형제로 대하라고 강요함으로 스스로 도덕천에 반하는 불의의 짓을 자신의 기득권을 남용함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미혹하는 것은 복음의 무지에 따른 불의와 불법으로 온전한 복음에 똥칠을 하는 종교의 한계이고 실상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스스로 부모와 대단한 선생이 되어 목숨을 담보로 구원의 길로 안내하겠다는 대단한 대의 명분의 발로로 종교 지도자는 물로 세상의 부모나 지도자들도 서로 이 길이 정답으로 착각하여 가겠다고 발악을 하면서 자신을 불사르고 있지만
문제는 자신도 소유하지 못해 알지 못하는 구원이나 행복을 주겠다는 명분만 있지 참 구원이나 행복을 알지 못하기에 그 실상은 장님이 장님을 안내하는 짓이 됨에도 불구하고 보여주는 그림처럼 정답처럼 미혹함으로 이단이 되어 지금까지 수많은 이단들이 구원과 행복을 소유하기 위하여 계속 일어나 발악을 할뿐 아니라
부모들도 자신도 소유하지 못한 구원이나 행복을 자녀에게 주기 위하여 발악하는 불나비 사랑을 계속함으로 구원과 행복을 소유하기 보다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어 서로 사랑을 하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표적을 구하며 선생이 되는 것은 자신은 물론 자녀를 비롯하여 타인도 구원과 행복을 소유하지 못하게 가로 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소망인 참이고 진리인 영생과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위하여 철학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찾지 못하였고 또 모든 종교는 그 원본인 이데아를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으로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사라질 신기루인 헛되고 헛된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과 천국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하시며
이런 사실을 바로 깨달아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그리스도 예수를 비롯하여 모든 도구인 몽학 선생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인 자기를 부인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여호와께서 그렇게 회개함으로 빈 우리의 잔에 영생과 천국을 깨달아 소유할 수 있는 성령을 채워주실 뿐 아니라 영생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이 되는 복음으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고 하시며
이를 위하여 우리 피조물이 해야 할 것은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며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나 반대로 너무나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을 비롯하여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이를 비우는 회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깨닫도록 주신 자유의지와 지혜인 선악과 즉 몽학 선생으로 바로 깨달아 회개를 하기보다 오히려 각자의 잔에 찬 것을 표적으로 삼아 자신의 잔을 채우는 정답을 찾기 위하여 발악한 그 자체를 원죄라고 엉터리 정의를 할 뿐 아니라
에덴 동산에서 퇴출된 후 자유의지를 따라 스스로 영생인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에 도덕천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몽학 선생을 표적으로 구하므로 그것이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복음을 가리고 있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임으로 바로 알 때
표적은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것으로 우상이나 음란이나 악한 것을 비롯하여 갈5장의 성령의 열매나,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요일2장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는 것이 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한편으로 몽학 선생이 되어 복음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양면성이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종교란 자신의 잔을 채우는 표적으로 도덕천을 구하는 것으로 그 외모는 참으로 멋이고 대단하여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야 하는 올바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루인 헛된 길임을 온 성경을 비롯하여 베드로의 통곡이나 가룟 유다의 자살 등으로 보여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구약은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의 잔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는 길을 주겠다는 것임에도 이를 바로 깨닫기보다 피조물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라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오히려 피조물 스스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의 도전임을 스스로 반증하게 되었고
회개란 구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움이 절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잔을 완전히 비우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덕천을 따라 잘못된 것만 비우는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란 회개함으로 자신의 잔을 완전히 비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인 살아있는 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님으로도 표현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그 빈 잔을 가득 채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피조물의 잔을 가득 채우신 그 무엇인 성령님께서 피조물 스스로 진리와 생명인 영생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게 함으로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신약이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누리므로 타인에게 예수처럼 복음의 증인과 몽학 선생이 되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서로 사랑함이란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있는 길로 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증인이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 신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하므로 타인에게 선생이 아니라 몽학 선생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 회개를 도와 줄뿐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생인 진리와 천국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영으로 이를 요한복음16장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 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령 훼방이란 증인의 삶을 서로 사랑함으로 누리기 보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천국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피조물이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그 영생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복음은 구약의 묵시를 따른 십자가의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처럼 온전함 그 자체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있던 없던 어떤 방법이나 모양에 관계없이 그리스도 예수가 복음의 증인과 몽학 선생이 되어 가르치는 그 무엇으로만 가능하기에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도 표현할 수 없는 없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어떠한 수고나 노력을 비롯하여 재물인 희생양이 절대로 필요치 않기에 어떤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거나 분별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또 복음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 사함의 회개에 합당한 도덕천을 따른 선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므로 복음으로 복음인 된 새로운 피조물이 하는 일인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합당한 일이 되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지금까지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예수를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율법,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기도, 예배, 제자, 찬양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모두 벗는 천국을 소망하므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표적을 구하므로 성령훼방을 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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