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묵상하는 히브리서 9장1~28절 말씀 중에서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회개하고 복음으로 구원받아 복음으로 복음이 되므로 신기루 피조물에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아깝거나 후회하기보다 너무나 감사한 절대 불가능의 과정을 통과한 충격적인 변화요 감동임을 잘 알아
그렇게 됨으로 여호와께서 주신 자유의지인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를 이루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확인하고 신나게 누리는 행복한 삶을 위하여 서로 발을 씻기며 서로 사랑하는 구원받은 천국증인들이 어떻게 신기루인 이세상을 살아야 하는지가 더욱더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이미 묵상한 것처럼 복음의 무지로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기보다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이성으로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 영생을 소유하기 위하여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며 스스로 예수의 종이 되어 여호와로 착각한 도덕천과 표적인 예수의 은혜에 복과 평강을 비는 것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가 아니라 신기루인 이 세상이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주겠다는 신기루 평안인 불안과 구속임에도 복음의 무지로 복으로 착각하여 스스로를 속이며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표적을 구하게 함으로 초대 이단인 초대 교회가 되어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이성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순종에 걸림돌이 되는 여호와께서 주신 자유의지인 감성을 소멸하려고 불가능에 도전함으로 결국 온전한 복음을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바로 알고 어제 묵상을 다시 정리해 보면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는 그림은 복음의 무지로 복음의 증인인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미혹하여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발악했음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으로 바로 알 때
구약시대에도 왕과 제사장이 따로 있었고 사울 왕이 제사장 역할을 하려고 하다가 혼이 난 것처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라는 하나님의 아들 직분과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는 제사장의 직분은 전혀 다른 직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제사장으로 미혹하여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고 복음의 무지로 용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용을 그리듯이 복음을 소유하지 못하여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복음을 그리기 위하여 발악함으로 이단이 됨을 알지 못하고
또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죄 사하심을 받기 위해서 예물은 죄인들이 준비하나 감히 제사를 드릴 자격이 없기에 제사장이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는 그림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참담한 헛소리로 똥칠을 할 뿐 아니라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는 그림처럼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주장하는 것이 스스로 모순이 됨을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기 위하여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는 그림처럼 하늘 어디에 천국이 있고 그 천국에 성소와 제사장이 있는 것처럼 미혹하여 이 땅의 성소나 제사장은 그림자인 가짜라고 미혹하여 주장하는 것이 사실처럼 그럴듯하지만
그들의 주장대로 온전한 의인들만 가는 천국에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그 자체가 지금까지의 주장이 엉터리일 뿐 아니라 복음의 무지로 상상의 용을 그리듯이 복음을 그리므로 오히려 온전한 복음을 가리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임을 바로 알 수 있고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는 그림도 복음의 무지에 따른 참담한 헛소리의 나팔과 꽹과리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는 그림이 바로 복음의 무지로 스스로 온전하지 못한 못난이 하나님을 반증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는 그림처럼
예수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로 복음의 증인이 되므로 이미 낡아지고 쇠하여 없어진 것처럼 처음부터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이성으로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앞을 가로막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바로 깨달을 때
회개하라, 서로 사랑하라, 증인이 되어라, 표적을 구하지 마라, 선생이 되지 마라, 외모가 아니라 공의로 판단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과 경고를 명심함으로 감성을 소멸하기보다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를 이루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보여주시는 1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고 복음의 무지로 그린 용을 진짜 용으로 착각하여 보여주는 2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5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는 그림이 복음의 무지로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표적을 구하는 이단의 모습으로 바로 알 때
6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7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라는 그림처럼 회개하기보다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른 자신의 이성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므로 불가능의 도전이 된 것을 8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고 표현했을 뿐 아니라
9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고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감성을 소멸하려고 발악한 것이 불가능의 도전이었음을 스스로 반증하고 있음도 모르고
11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고 복음에 무지로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됨으로 복음의 증인이 된 예수를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대제사장으로 미혹하는 참담한 헛소리를 하며
13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는 그림처럼
복음에 무지한 이런 엉터리 주장이 사실로 인정하여 지금까지의 죄는 사하심을 받는다고 하다면 그 후에 지은 죄는 어떻게 하며 만약 지금처럼 그 예수의 피로서 날마다 씻어야 한다면 첫 언약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따라서 결국 우리들이 표적을 구하듯이 "주안에" 라는 것처럼 예수의 보혈 안에 있어야 하니 이는 자유가 아니라 구속으로 첫 언약인 하나님 안에 있는 것과 같은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무지로 16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고 복음과 전혀 무관한 엉뚱한 소리로 스스로 말하고 있는 새 언약을 하나님 즉 예수의 유언으로 미혹하기 위하여 18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라고 피뿌림을 언약을 한 하나님의 죽음을 말하고 또 언약을 번복한 하나님으로 말하므로 결국 스스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은 온전하신 여호와가 아님을 스스로 반증하고 있음을 모르고
19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고 구약을 빙자하여 사실처럼 합리화할 뿐 아니라
22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고 복음의 무지로 신기루 외모인 도덕천을 따라 이번에는 피 흘림을 죄인들의 죄값인 죽음으로 미혹함으로 결국 이 제사를 받는 주체는 온전하신 여호와가 아니라 죄인들의 희망사항을 피조물의 이성을 따라 제물에 미혹되어 제주의 죄를 씻어주는 나의 하나님인 신기로 외모인 도덕천임을 스스로 반증하고 있음도 모르고
23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는 그림처럼
복음의 무지로 천국에서도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용을 그리듯이 천국을 그리므로 천국을 가로막아 자신은 물론 들어가고 싶어하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을 할 뿐 아니라
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는 그림처럼 복음의 무지로 최후 심판과 재림으로 온전한 복음에 똥칠을 하므로 회개를 가로막아 구원인 천국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을 하고 있음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피조물의 궁극적인 소망인 참이고 진리인 영생과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위하여 철학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요 원본인 이데아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찾지 못했으며 또 모든 종교는 그 원본인 이데아를 만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으로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상이 아니라 사라질 신기루인 헛되고 헛된 신기루 허상일 뿐 아니라 영생과 천국은 우리 피조물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피조물 스스로는 그 자체를 알 수도 없고 이해 할 수도 없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이라고 하시며
이런 사실을 바로 깨달아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기보다 복음의 최고 몽학 선생이요 증인인 그리스도 예수를 비롯하여 모든 도구인 몽학 선생을 통하여 피조물의 한계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깨달아 이를 인정하는 회개인 자기를 부인함으로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자신의 잔을 비우면
여호와께서 그렇게 회개함으로 빈 우리의 잔에 영생과 천국을 깨달아 소유할 수 있는 성령을 채워주실 뿐 아니라 영생의 실체인 진리와 생명이 되는 복음으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인 복음이 되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고 하시며
이를 위하여 우리 피조물이 해야 할 것은 스스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며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채운 너무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자랑스런 자신의 잔이나 반대로 너무나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잔을 비롯하여 어떤 모양이고 조건이든지 신기루인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피조물의 잔은 신기루인 헛된 것으로 이를 비우는 회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깨닫도록 주신 자유의지와 지혜인 선악과 즉 몽학 선생으로 바로 깨달아 회개를 하기보다 오히려 각자의 잔에 찬 것을 표적으로 삼아 자신의 잔을 채우는 정답을 찾기 위하여 발악한 그 자체를 원죄라고 엉터리 정의를 할 뿐 아니라
에덴 동산에서 퇴출된 후 자유의지를 따라 스스로 영생인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에 도덕천을 하나님이라 부르며 몽학 선생을 표적으로 구하므로 그것이 종교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며 복음을 가리고 있기에 표적을 구하는 것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생각임으로 바로 알 때
표적은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것으로 우상이나 음란이나 악한 것을 비롯하여 갈5장의 성령의 열매나,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요일2장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는 것이 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한편으로 몽학 선생이 되어 복음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역할을 하는 양면성이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종교란 자신의 잔을 채우는 표적으로 도덕천을 구하는 것으로 그 외모는 참으로 멋이고 대단하여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야 하는 올바른 길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절대 불가능의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루인 헛된 길임을 온 성경을 비롯하여 베드로의 통곡이나 가룟 유다의 자살 등으로 보여주고 있음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구약은 피조물 스스로는 절대로 자신의 잔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는 길을 주겠다는 것임에도 이를 바로 깨닫기보다 피조물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라 자신의 잔을 채우기 위하여 몽학 선생으로 표적을 구하며 발악함으로 오히려 피조물 스스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의 도전임을 스스로 반증하게 되었고
회개란 구약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움이 절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잔을 완전히 비우므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도덕천을 따라 잘못된 것만 비우는 세례 요한이 말하는 회개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복음이란 회개함으로 자신의 잔을 완전히 비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인 살아있는 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님으로도 표현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그 빈 잔을 가득 채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주겠다는 것이고
구원이란 피조물의 잔을 가득 채우신 그 무엇인 성령님께서 피조물 스스로 진리와 생명인 영생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게 함으로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이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안을 선물로 받는다
신약이란 복음으로 복음이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누리므로 타인에게 예수처럼 복음의 증인과 몽학 선생이 되면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서로 사랑함이란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표적을 구하는 고전13장의 사랑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처럼 살아있는 길로 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증인이란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는 구원을 받아 신약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연수까지 이 세상에서 표적을 구하기보다 서로 사랑하므로 타인에게 선생이 아니라 몽학 선생이 되는 것이다.
성령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의 한계를 깨닫게 함으로 회개를 도와 줄뿐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생인 진리와 천국을 알게 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영으로 이를 요한복음16장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려 준다고 기록하고 있고 성령 훼방이란 증인의 삶을 서로 사랑함으로 누리기 보다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천국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피조물이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된 영생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이 그 영생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복음은 구약의 묵시를 따른 십자가의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처럼 온전함 그 자체이기에 십자가 사건이 있던 없던 어떤 방법이나 모양에 관계없이 그리스도 예수가 복음의 증인과 몽학 선생이 되어 가르치는 그 무엇으로만 가능하기에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도 표현할 수 없는 없을 뿐 아니라 피조물의 어떠한 수고나 노력을 비롯하여 재물인 희생양이 절대로 필요치 않기에 어떤 누구도 죄인으로 만들거나 분별하지 않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하고
또 복음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 사함의 회개에 합당한 도덕천을 따른 선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으로 복음이 되므로 복음으로 복음인 된 새로운 피조물이 하는 일인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합당한 일이 되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조각바람 지체들은 지금까지 몽학 선생이 되어 한편으로는 복음으로 안내하고 또 한편으로는 표적을 구하게 하는 예수를 비롯하여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삼위 일체, 율법, 십자가, 성찬, 세례, 동정녀, 성령잉태, 원죄, 기도, 예배, 제자, 찬양 등을 비롯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표적이 되는 몽학 선생의 옷을 한 겹씩 모두 벗는 천국을 소망하므로 이 세상의 유혹과 위협이 태산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라 표적을 구하므로 성령훼방을 하기보다 서로 사랑함으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고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신나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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