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을 두고 의인과, 악인과, 죄인으로 분별하는 것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는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스스로 만든 신기루 도덕천을 온전하신 여호와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정답으로 착각하여 표적으로 구하려고 만든 신기루 법이나 도덕으로 판단함에 따른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의인란 도덕천을 따라 사람이 반드시 지키고, 행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착각하여 만든 신기루 법과 도덕을 따른 도리를 잘 지키고 행하는 사람이고, 죄인은 법과 도덕을 따른 도리나 양심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고, 악인은 죄인 중에서 남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사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함으로 의인과 악인의 분별이 없는 이상한 논리를 정답처럼 주장하여 미혹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함으로
피조물의 구원은 이미 예정된 것으로 소명-중생–칭의–성화–영화 등의 단계로 설명하는 것처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이 우선으로 결국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어 의인이란 실제로는 의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의롭다고 즉 죄 없다고 인정하는 칭의의 신기루 의인과, 실삶으로 의롭게 만들어 간다는 성의 즉 성화의 신기루 의인으로 분별하며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고 실삶의 의인을 요구하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강요함으로 결국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이 되게 할뿐 아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복음의 무지로 헛되고 헛된 신기루 구원을 정답으로 미혹하여 오히려 참인 복음을 가리고 가로 막는 똥칠을 하며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고 하거나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고 하거나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스스로 만든 율법의 문제점과 한계점을 스스로 반증하면서도 회개를 하기보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고 그림처럼
피조물의 한계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외모를 따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신기루인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정답이 없는 절대 불가능의 논리를 정답처럼 미혹하여 강요하기 위하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하며 구하고 있는 자신들의 신기루 표적과 신기루 주장을 합리화하는 것은
피조물을 피조물의 부족한 이성과 감성을 따라 외모인 공평 타당함의 논리로 판단하여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의인과, 악인과, 죄인으로 분별하는 것으로 이는 성철 스님의 중도 논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잡한 논리로 오히려 참을 가리고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 나팔과 꽹과리 소리로 됨으로 바로 알 때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회개함으로 피조물이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변화의 신비인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온전한 편안인 자유와 행복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여호와처럼 서로 사랑함으로 실삶으로 확인하며 영원히 누리는 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믿음이나, 교육, 훈련 등으로 미혹하여 세뇌함으로 죽음에 대한 억울함이나 두려움을 따른 불안함인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피조물을 의인과, 악인과, 죄인으로 분별하며 복음의 본질을 왜곡 변질하는 온갖 감언이설과 권수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그렇게 갈망하며 찾고 또 찾으려고 발악한 정답으로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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