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출애굽기 4장 1-17절의 말씀을 통하여 야곱이 살기 위하여 하나님과 씨름하여 환도뼈가 위골되면서 까지하여 승리한 것이나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기 위하여 50명에서 10명으로 낮춘 것이나 사사기에 나오는 기드온 처럼 모세 또한 최선의 길을 선택하기 위하여 하나님과의 한판 승부의 모습을 보여 주신다.
우리들이 자녀가 하기 싫어하는 공부나 그 어떤 일을 시키기 위하여 얼래고 달래듯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로 뱀도 만들고 손에 나병이 생기게도 하여 확신을 주려고 하신다. 뿐만 아니라 길러온 나일 강 물이 피로 변화게 해 주겠다고 까지 하신다.
이에 모세가 굴하지 않고 다시 의의를 제기한다. 즉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고 해도 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하니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라고 하면서 버틴다.
이에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을 들어주고 말 잘하는 그의 형 아론을 동역자로 주시어 허락하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좀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14절에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고 하신 말씀을 두고 이를 모세의 불신앙 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일까?
서두에서 말한 야곱, 아브라람, 기드온을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바로 예! 라고 말하지 않는 경우에 우리들이 자녀를 비롯하여 손 아래 사람에게 지시를 했을 때 바로 예! 라고 하지 않는 경우처럼 하나님의 안색이 변하신 것으로 성경 기자들은 기록을 하고 있다.
이를 먼저 인간 쪽에서 살펴보면 어느 정도 존경을 받을 만한 어른의 경우에는 당장은 안색이 변화더라도 바로 예! 라고 하지 않는 이유를 듣고 타당한 것이면 그 이유를 감안하여 합당한 지시를 다시 내리며 결코 상대방을 불순종하는 사람으로 보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면을 가지고 있는 더 좋은 쪽으로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존경 받을 만한 어른이 그 정도인데 과연 하나님께서 그런 모세를 불순종하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었을까? 사실이면 왜 그런 불순종하는 사람을 최고의 선지자로 기적과 이적을 행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했을까?
하나님의 얼굴색이 잠시 변화도록 최선의 길을 선택한 그들을 하나님께서 더욱더 귀한 도구로 사용한 것을 보면 이를 불순종으로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를 불순종으로 해석하는 것은 크리스천들이 선택해야 할 오직 한길인 최선의 길보다 차선을 길을 선택하게 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이 땅의 야욕을 채우기 위한 목사와 교회의 지도자 그리고 신학자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아닐까?
이 땅의 제도권 교회를 하나님의 몸된 교회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그들에게 맞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최선의 길을 선택하여 가기 위해서는 오늘 모세가 하나님께 질문하여 하나님의 얼굴색을 변화게 하듯이
삯꾼 목사와 지도자들의 말에 무조건 순종하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그들의 요구에 일일이 점검하고 또 확인하여 그들이 자신의 오류와 착각에서 벗어나도록 모두 깨어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라는 배짱과 당당함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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