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럼 지금까지 우리들이
사랑의 속삭임이 필요함을 인정한다면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지금까지 세뇌된 몇 가지 고정 관념을 내려 놓아야 한다.
1.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밭에 씨앗을 뿌린 것과 같다. 따라서 그 씨앗에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어 수확을 거두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이를 위하여 수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말씀을 듣고 인정을 한다고 하여 바로 상대방에게 열매를 기대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누구라도 불가능한 그런 착각을 기대하기 보다 오히려 더 많은 수고와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열매를 허락할 때까지
2. 한 몸의 경우에는 내가 이 만큼 했으니 네가 이만큼 하라는 식으로 접근하여 어떤 사안에 대하여 한쪽은 잘한 것이 되고 또 한쪽은 잘못한 것이 되면 안 된다. 즉 한 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일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 것은 공동의 결과가 되어야 한다. 절대로 구별하여 개인 평가를 하면 안 된다.
3.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것을 찾아 헤매거나 지키기 보다 현재 주어진 것을 누리는 것에 최고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누리기 보다 찾다가,지키다가 지쳐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이나 사랑이나 건강이나 그 무엇이든지 자신의 욕망이나 쾌락의 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불가능의 도전인 찾거나 지키기 보다 누려야 한다.
4.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남을 위하여 한다는 봉사와 섬김의 개념도 남을 위하여 하는 희생으로 접근하기보다 오히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나 물질이나 건강들을 누리는 것으로 개념을 바로잡이 상대편에 대하여 주장하고 행사하기 보다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5.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부족한 것은 내가 원하는 목적으로 상대방을 이끌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을 위하여 함께 지어져 가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끊어지지 아니하고 날마다 새로운 소망의 새 날을 맞이 할 수 있다.
6. 토론이나 의견 교환을 통하여 상대편을 자신의 목적으로 이끌기 위한 개인적은 지적이나 또는 공적으로 논의된 것을 자신을 정당화 주장하는데 사용하거나 지금까지 참아 준 것임을 내세우는데 사용하면 절대로 안 된다. 즉 사랑의 속삭임에 도전을 결단한 순간 지금까지 지나온 모든 과거의 평가는 공적으로나 자신만이 하도록 해야하고 우리 모두는 지금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을 뿐이다.
7. 똑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각 가정마다 개인마다 다른 모양으로 사랑의 속삭임이 시작된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가야 한다. 따라서 한 목적(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어져 가기 위함)을 바라보고 가는 각각의 지체임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8. 그러나 우리는 개개의 가정으로서는 불가능 함으로 서로에게 위로와 교훈을 주고 받는 유기체의 조각바람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꼬옥 명심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소그룹 교회의 이론에 나오는 양 날개 이론의 실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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