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잠언21장16-31절의 말씀은
어제 하나님께서 목교세들에 의하여 심하게 본질이 변질 왜곡된 말씀 중에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와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라는 말씀은
정말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하면 상대적 공의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하여 제사를 드리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어져 가면 되고 이를 위하여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잣대는 세상의 것이 아니라 천국의 것을 적용해야 한다고 하신 후
오늘도 주시는 말씀도 말씀대로만 살면 예수 없이 스스로 의로워져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삶의 모형들을 보여 주시지만 결과는 우리들의 문제로 인하여 더욱더 예수 밖에 다른 길이 없음을 고백하게 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오늘주신 말씀 중에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와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는 말씀은 좀더 깊이 묵상을 해 보자
먼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주시는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는 말씀이 자꾸만 목교세들처럼 나 중심으로 해석하고 적용하고 싶은 유혹이 밀려온다.
사건의 내용은 개인 사생활이라 우리 식구들과 별도로 말하겠지만 오늘 아침 잘못한 것보다 더 비겁한 모습으로 인정보다 변명으로 무리수를 두고 있는 뉴스엔죠이 같은 아내의 모습에 화가 난다.
그런데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고 하시면서 상대적 의나 공의를 비롯하여 그 무엇이든지 스스로의 힘으로 천국 소유는 절대 불가능함을 알게 하시고 나 중심의 말씀 왜곡을 못하게 하신다.
그래서 돌아본다 반복하여 주시는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는 말씀은 자신의 비겁함을 감추며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로 약용하기 좋은 말로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살 것 같으면 헤어져도 좋다고 면죄부를 주었지만 불쌍해서 참고 살아준다고 하는 그런 의미의 말이 아니라고 하시며
또한 부부도 이 세상의 것을 더 소유하려고 서로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다투며 화내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공동 목표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인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하여 지어져 가야 하는 동역자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고 하신다.
그래서 말씀으로 돌아보면 우리인생의 목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목교세들이나 이 세상이 말하는 복 아닌 복을 쫓아가는 동역자가 아님을 우리 모두가 분명하게 안다면 이 세상을 살기 얼마나 쉬울까?
정말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목사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고 오직 천국의 제자된 증인이 필요하다고 하시며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음성이 다시 한번 더 모두에게 들려졌으면 좋겠다.
따라서 우리조각바람 식구들은 이 땅의 혈연 관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식구들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아가도록 허락해 주신 오늘을 신나게 누리므로 천제증인의 삶을 맛보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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