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역대상12장23-40절의 말씀은
어제 하나님께서 주신 “만일 너희가 평화로이 내게 와서 나를 돕고자 하면 내 마음이 너희 마음과 하나가 되려니와 만일 너희가 나를 속여 내 대적에게 넘기고자 하면 내 손에 불의함이 없으니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감찰하시고 책망하시기를 원하노라” 와 “그 때에 성령이 삼십 명의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싸시니 이르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라는 말씀은
목교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윗의 성공한 것 같은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려고 하기보다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다윗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 인생의 살 수 있는 유일하고 온전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해야 한다고 하신 후
오늘도 다윗 왕으로 모여 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천하는 다윗 왕도 절대로 피조물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 우리 인생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고백하게 하시며
이를 위하여 주신 “싸움을 예비한 군대 장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저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 그 수효가 이러하였더라” 와 “이 모든 군사가 항오를 정제히 하고 다 성심으로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으로 온 이스라엘 왕을 삼고자 하고 또 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다 일심으로 다윗으로 왕을 삼고자 하여” 그리고 “과자와 무화과병과 건포도와 포도주와 기름이요 소와 양도 많이 가져왔으니 이스라엘 가운데 희락이 있음이었더라” 라는 말씀을 묵상해 보자
목교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윗 왕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로 생각하면 말씀처럼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미리 준비된 막강한 전투력을 갖춘 군사들이 모여들고 있으니 다윗의 길을 평탄하게 하기 위한 여호와 이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군사가 항오를 정제히 하고 다 성심으로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으로 온 이스라엘 왕을 삼고자 하고 또 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다 일심으로 다윗으로 왕을 삼고자 하여 … 이스라엘 가운데 희락이 있음이었더라” 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윗도 결국 실패 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교세들은 오늘 보여지는 모습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여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복이라고 그 복을 위하여 예수를 믿고 있으니 결국 예수를 무당의 부적으로 폄훼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목교세들은 가족 중에 누가 성경책을 태우며 교회 가는 것을 방해하다 발암하여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나온 것을 기도 응답이라며 승리자가 된 것처럼 모두들 얼마나 좋아하는가 “이스라엘 가운데 희락이 있음이었더라” 라고 하는 말씀처럼
하지만 그들이 지푸라기라도 잡은 절박한 심정이야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그 잡는 목적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사명인지를 깊이 묵상하고 점검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이스라엘처럼 본질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잡는다고 하면서 피조물을 잡고 저렇게 방황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교세들이 자신들의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교회라는 건물의 괴물을 유지하기 위하여 세상과 연합하여 그들이 앞장서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사명인 우리 인생의 목적을 왜곡 변질하여 미혹함으로 실족하게 있다는 것을 정말 회개해야 하는데
하나님과는 이미 계산이 끝난 것으로 우리 인생의 목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 세상의 삶에서 일어나는 잘못을 다시 하나님께로 끌어와 회게 하라며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하고 숭고하신 사역을 폄훼하는 짓들을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조각바람 지체들은 천제증인의 삶을 누리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이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평가하기보다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우리 인생의 목적을 일치 시키는 삶으로 주어진 모든 것을 신나게 누리는 오늘이 되길 소망하며
나도 오늘 있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교회를 쪼개어 나간 목사가 주례를 하고 또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교회를 쪼갠 장로가 있는 그들과 그들의 부모가 속한 교회에서 하객으로 참석해야 하는 그 어색한 자리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참석을 하지 아니 하려면 부조라도 보내자고 했으나 거절을 하였다. 왜냐하면 나의 체면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지도자라고 하는 목사와 장로들의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억지로 인정하는 척 하거나 우회하여 나를 표현하기보다 보다 오히려 비난을 한다면 받는 것이 더 당당하게 천제증인의 삶을 누리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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